'정의' 언급하며 대(對) 군부 보복 예고했다 경고에 놀라 화해 제스처 '돌변'
수 차례 권력 쥔 군부 눈 밖에 나면 집권 불가…'부활은 하지만 기적은 없다?'
2023년 10월 21일 귀국 환영행사장에 선 샤리프 전 총리 |
(뉴델리=연합뉴스) 유창엽 특파원 = 파키스탄 정치를 이해하려면 '기적과 부활'을 믿어야 한다고 한 현지 작가가 최근 언론 기고에서 말했다.
그의 말에 꼭 들어맞는 사례가 나와즈 샤리프(73) 전 파키스탄 총리의 경우라고 본다.
샤리프 전 총리는 1990년 처음으로 총리가 됐다가 3년을 못 채우고 물러났다.
그 후 1997년 두 번째로 총리가 됐지만 역시 3년도 안돼 퇴진한다.
이후 2013년 다시 총리에 올랐다가 4년여만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총리직 기준으로 두 번이나 '부활'했다.
1947년 건국 이후 파키스탄 총리로서 5년 임기를 다 채운 이는 없다고 한다.
세 번 총리를 지낸 바 있는 샤리프 전 총리가 지난달 21일 다시 '큰 꿈'을 안고 귀국했다.
그는 세 번째 총리 재임 때 부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물러난 뒤 신병 치료차 2019년 11월 영국 런던으로 갔다.
법원이 보석 조건으로 내건 귀국을 미룬 채 자칭 망명 생활을 하다가 약 4년 만에 귀국한 것이다.
귀국 당일 정치적 거점인 동부도시 라호르에서는 성대한 환영 행사가 열렸다.
그가 '최고 지도자'로 있는 정당 파키스탄 무슬림연맹(PML-N) 지지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대형 버스를 빌려 행사장에 집결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장시간 연설하며 사실상 내년 1월 총선 출마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군부를 직접 거명하지는 않은 채 군부에 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파키스탄에서는 건국 이래 여러 번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적이 있는 군부가 '막후 실세'라는 점은 이제 변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상수'다.
파키스탄 |
샤리프 전 총리가 군부에 화해 메시지를 던진 것은 앞으로 군부 뜻을 잘 헤아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으니 도와달라는 뜻으로 읽혔다.
사실 그는 귀국하기 얼마 전 파키스탄에서 열린 자당 정치 행사에서 영상 연설을 통해 네 번째로 집권하면 직전 총리직에서 자신을 밀어낸 것으로 의심되는 군부와 사법부 관계자들을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했다.
보복을 예고한 것이다.
그 후 군부에서 샤리프 전 총리를 상대로 경고했다는 현지 매체 보도가 나왔다.
이러다 보니 '정치 9단'이랄 수 있는 그가 군부와 더 이상 각을 세웠다가는 네번째 집권 꿈은 물건너갈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샤리프 전 총리는 내년 1월 총선 이전에 자신에게 내려진 유죄 선고를 뒤집든지 유죄 선고가 출마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놔야 한다.
파키스탄 사법부는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한 듯 그에게 협조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파키스탄 정국은 이제 샤리프 전 총리 '독무대'다.
정치적 경쟁자인 임란 칸(71) 전 총리가 제거된 상태기 때문이다.
'국민 스포츠' 크리켓 스타 출신인 칸 전 총리는 지난해 4월 의회 불신임으로 물러났다. 이후 자신의 축출 배경에 군부가 있다고 비판해오다가 현재 부패 혐의 유죄선고로 수감돼 있다.
칸 전 총리는 무려 150여개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으로 모든 사건이 언제 마무리될 지 모르지만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게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옥중 출마를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군부가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아 칸 전 총리를 쫓아냈다는 해석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군부는 샤리프 전 총리에게 총리직을 다시 한번 맡기기로 작정한 듯하다.
다만 칸 전 총리 지지자들이 시국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파키스탄 정치와 민주주의는 모두 군부가 좌우한다. 군부 영향력을 뒤집을 '기적'이 일어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자못 궁금하다.
2023년 5월 18일 라호르 자택서 취재진에 이야기하는 임란 칸 전 파키스탄 총리 |
yct94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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