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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85㎝ 분묘 속 치아와 단추…가장 추악한 아동착취 ‘선감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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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선감동 37-1서 유해발굴 설명회 “국가와 경기도가 전면적 조사 나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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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생존자 곽은수씨가 25일 오전 경기 안산시 선감동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관련 유해발굴(시굴) 현장 언론설명회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인권침해 사건으로는 첫 유해발굴(시굴) 현장으로 지난해 1차에 이어 이번 결과를 담아 연말 2차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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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온달’이라고 별명이 온달, 바보온달인데, 시체를 식당 앞에다 놔뒀어요. 식당 밥 먹으러 들어가는 입구 앞 거기다가, 시체를. 밥 먹고 나오니 형들이 메고 나가 가지고 어디 묻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묻었는지. 갖다 버렸는지 그건 모르고.”

“이분은 어떻게 돌아가신 건가요?”

“도망가다, 물살에 휩쓸려서 도망가다가.”

1964년께 10살이었던 유아무개씨가 2017년 경기도가 시행한 유해발굴 기초조사 때 인터뷰한 내용이다. 죽음이 너무 흔해 밥 먹으러 드나드는 식당 앞에 주검을 방치할 정도였다.

이곳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이가 총 834명이라고 한다. 당시 탈출을 시도한 이들은 조수간만 차가 큰 서해안의 긴 갯벌 지역을 지나는 경로를 주로 이용했다. 밀물을 만나 수심이 깊은 곳에서 익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몇명이 탈출에 성공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한 탈출이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5일 오전 경기 안산 선감도 선감동 37-1 지점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 공개설명회를 열었다. 탈출을 하다 익사하거나 병사하거나 맞아 죽은 아이들이 묻힌 곳이다. 매장기록도 전혀 남기지 않은 암매장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추악했던 아동 인권착취의 생생한 현장을 드러낸 이번 유해발굴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 사건이 아닌 인권침해 사례로서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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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시굴) 일부 현장의 분묘(구덩이) 모습. 진실화해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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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발굴을 주관한 선사문화연구원 우종윤 원장은 “지난 9월21일부터 10월24일까지 한달여간 인근 150기 중 40기 분묘를 대상으로 발굴을 진행했으며, 15기에서 치아 210점과 금속고리 단추, 직물 끈, 그리고 굴 따는 칼 등 유품 27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치아는 13개 분묘에서, 유품은 8개 분묘에서 수습됐으며, 치아와 유품이 함께 발굴된 분묘는 6기다. 140호 분묘에서는 이번 발굴에서 가장 많은 치아 29점이 수습됐고, 이 분묘에서는 금속고리 단추 2점도 확인했다. 6호 분묘에서도 치아 25점과 금속고리 단추 4점, 금속 똑딱이 단추 4점 등 가장 많은 유품을 발굴했다.

감식을 담당한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현재까지 나온 치아를 분석해 봤을 때 치아 윗부분인 크라운의 발달 정도, 마모 정도를 보면 12~15살로 추정된다”며 “2016년 및 지난해 발굴 때보다 유해의 치아 윗부분 부식 상태가 심해져 몇년 뒤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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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경기 안산시 선감동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관련 유해발굴(시굴) 현장 언론설명회에서 공개된 유품. 어린이의 것으로 보이는 치아와 단추 등이 발견됐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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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는 2022년 9월26일에서 30일까지 같은 지역에서 5일간 시굴조사를 해 5개의 봉분에서 선감학원 수용 아동의 것으로 보이는 치아와 유품인 단추 등을 수습한 바 있다. 지난해와 올해 유해발굴을 합쳐 45기의 아동 암매장 묘와 유해인 치아, 유품이 수습되면서 선감학원의 공식 사망자는 지금까지 공식 기록된 24명을 훨씬 넘어섰다.

40여기의 분묘는 길이가 대부분 110~150㎝ 깊이도 50㎝ 미만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장 작은 것은 92호 분묘로 길이가 85㎝에 불과했다. 몸집이 작은 아동들을 가매장 형태로 땅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 우종윤 선사문화연구원 원장은 “이번에 발굴된 분묘 규모와 조성방법을 볼때, 길이가 1m 전후에서 150㎝ 이하가 대부분이고 모든 분묘 형태도 정상적 매장에 의해 묻은 게 아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매장한 것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발굴을 담당한 선사문화연구원은 대부분의 묘에서 머리뼈와 사지뼈가 전혀 나오지 않고, 일부 분묘에서는 치아조차 발굴되지 않은 이유로 △선감학원 아동이 7~18세로 어리다는 점 △암매장 이후 최소 40년이 흘렀다는 점 △토양 산성도가 높고 습하다는 점 △가매장 형태라는 점을 들었다.

원생들이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한 선감학원은 뭍에서 고립된 지옥이었다. 1942년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동원할 인력양성을 위해 설립돼(1차 수용인원 195명) 해방 뒤인 1946년 2월부터 1982년 9월까지는 경기도가 서울의 부랑아들을 수용하는 기관으로서 운영했다. 원장은 경기도 5급사무관들이 돌아가며 맡았으며, 경기도 6·7급 직원 5~7명이 파견을 나와 관리직으로 일했다. 선감학원이 운영될 당시 선감도는 외딴 섬이었으나 1988년 5월 선감도와 대부도를 잇는 대선 방조제, 불도와 탄도를 거쳐 화성시 전곡항으로 이어지는 불도·탄도 방조제가 완공되어 육지와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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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관계자들이 25일 오전 경기 안산시 선감동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한 유해발굴(시굴) 현장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인권침해 사건으로는 첫 유해발굴(시굴) 현장으로 지난해 1차에 이어 이번 결과를 담아 연말 2차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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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살의 아동 및 청소년들은 부랑아 일소 및 갱생을 명분으로 이곳에 갇혀 굶주림과 강제노역, 폭언·폭행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다. 수용인원이 가장 많았던 해는 1956년으로 407명이었고, 입소자가 가장 많았던 해는 1962년으로 558명이었다. 선감학원 전체 수용아동 규모는 경기도가 제출한 원아대장에 따르면 총 4689건이었으나 1982년 7월29일 경기도 부녀아동과가 작성한 자료에는 5759명으로 나왔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10월 선감학원 진실규명 당시 원아대장을 확보하여 진실규명 신청인 166명뿐 아니라 선감학원 수용자 전원을 피해자로 인정한 바 있다.

이번에 발굴된 선감동 37-1 지점 말고도 △선감동 산 130-11 일원 △선감동 산 54번지 일원 △선감동 산 58-1 일원 △선감동 산1-1 일원 △선감도 북동쪽 능선사면 하단부지역 등도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 매장지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까지 유해를 발굴한 지역은 전체 매장지의 4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이번 시굴을 계기로 국가와 지방정부가 신속히 나서서 선감학원 아동들이 묻혀있는 선감학원 일대의 전면적 유해발굴을 시급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이상훈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도 “진실화해위원회가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한 국가의 사과와 실질적인 책임 이행이 따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유해발굴에 이어 12월에는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2차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선감학원을 조사한 진실화해위 김진희 조사관은 “2차 진실규명 때는 누가 암매장을 지휘하거나 명령했는지 책임자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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