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험지에서 열정, 총선 압승 큰 힘"....이재명 "민주당 승리 아냐, 엄중한 국민심판"
22대 총선 수도권 민심의 풍향계로 정치적 의미가 부여됐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정권 심판론'을 내세운 더불어민주당이 '힘 있는 일꾼론'의 국민의힘에 압승을 거뒀다. 여야 지도부가 총력전을 펼친 만큼 패배한 측의 충격은 더욱 크다.
예상보다 큰 차이의 패배로 '수도권 위기론'을 체감하게 된 여권은 내년 4월 총선까지 남은 6개월 동안 대대적인 전략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됐다. 오랜만에 승리를 거둔 민주당은 정국 주도권을 쥐고 기세를 총선까지 이어간다는 각오다.
오세훈 지지했던 강서구, 다시 민주당 품으로
정치권에서 강서구는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지역으로 분류됐지만, 지난해 3·9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46.5%)과 이재명 민주당 후보(48.7%)에게 비슷한 지지를 보냈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열린 6·1 지방선거에서는 국민의힘에 표를 몰아줬다.
당시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김태우 후보는 50.6%를 얻어 김승현 민주당 후보(48.1%)에게 2.5%포인트 차 승리를 거뒀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오세훈 현 시장은 56.1% 지지를 받았고 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42.1%에 그쳤다. 여권 내부에서 '해볼 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이유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보궐선거에서 진교훈 후보는 13만7065표(56.52%)를 얻어 9만5492표(39.37%)를 확보한 김 후보에게 크게 앞섰다. 권수정 정의당 후보와 권혜인 진보당 후보, 김유리 녹색당 후보, 고영일 자유통일당 후보는 1%대 득표율에 그쳤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 강서구 전체 유권자 50만603명 중 24만3663명이 투표해 최종 투표율은 48.7%로 집계됐다. 지난해 6·1 지방선거(51.7%)보다 3%포인트 낮지만, 평일에 치러진 선거로는 비교적 높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 6~7일 사전투표율은 22.64%를 기록, 역대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통틀어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이에 단순히 여야 조직표뿐만 아니라 중도층 표심도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받는다.
김기현 책임론 대두될까...대통령실 '기조 변화'에도 주목
이번 선거는 김태우 전 구청장이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으로 특감반의 감찰 무마 의혹을 폭로했다가 지난 5월 대법원으로부터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상실하면서 열린 선거다.
당초 국민의힘은 김 전 구청장이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만큼 ‘무공천’을 검토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8월 광복절 특사로 불과 3개월 만에 김 전 구청장을 사면‧복권했고, '윤심 논란'과 함께 국민의힘은 김 전 구청장을 재공천하게 됐다. 단순 일개 구청장 단위에서 끝날 수 있었던 선거가 '4월 총선 미리보기'로 판이 커지게 된 결정적 계기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결과적으로 공천을 최종 결정하고 선거를 진두지휘한 김기현 대표 책임론이 거론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수도권 위기론'을 확인하게 된 수도권 현역 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의 우려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야당과의 협치보다 정면 대결을 선호하는 대통령실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당장 김 대표가 물러나고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은 낮다. 김 대표를 향한 책임론은 결과적으로 용산 책임론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의원들이 소속된 단체 채팅방을 통해 강서구를 '어려운 험지'로 표현하고 "의원 여러분의 헌신적 지원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그 뜨거운 애당심이 우리 당의 내년 총선 압승에 큰 힘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참모진 인사개편으로 분위기 쇄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4월 총선 출마 희망자들이 있어 인사 요인은 충분하다. 여기에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임명 여부와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회동 등에 이번 선거 결과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표정관리...이재명 "더 겸허히 민심 받들겠다"
민주당은 예상 이상의 압승에 기뻐하면서도 표정 관리에 신경 쓰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의 승리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치의 각성과 민생 회복을 명하는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 대표는 "한때 집권당이던 민주당의 안일했음과 더 치열하지 못했음과 여전히 부족함을 다시 한번 성찰한다"며 "우리 안의 작은 차이를 넘어 단합하고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복원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당내 계파갈등 수습 의지를 밝혔다.
이번 선거 압승으로 '이재명 체제'가 공고해질 것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대표는 그간 '사법리스크'에 시달렸지만, 법원의 검찰 구속영장 기각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번 선거 승리까지 겹치면서 내년 총선 공천 작업 등에서 리더십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선 이번 승리가 본게임인 내년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권 심판론'에 안주해 '치열한 혁신'은 소홀히 하고, 여권 발목잡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자칫 보인다면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주경제=이성휘 기자 noirciel@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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