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HP프린팅코리아 대표 인터뷰
김광석 HP프린팅코리아 대표가 매경이코노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HPPK 제공) |
기업용 프린터(A3프린터) 시장은 흔히 ‘일본 기업의 놀이터’라 불린다. 매출 상위권을 전부 일본 기업이 꽉 잡고 있어서다. 캐논, 후지필름비즈니스이노베이션 등 일본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상당하다. 일본이 장악한 이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미국 기업 HP다. 후발 주자지만 일본 기업들 못지않은 점유율을 자랑한다. HP가 기업용 프린터 시장에서 존재감을 펼칠 수 있는 배경에는 HP프린팅코리아의 활약이 자리한다. HP프린팅코리아는 2017년 삼성전자의 프린팅솔루션사업부를 HP가 1조3000억원에 사들인 후 출범시킨 회사다. HP 기업용 프린터의 연구개발부터 제조까지 등의 사업을 도맡아한다. HP프린팅코리아의 기술과 생산력을 앞세워 HP는 일본 기업을 제치고 기업용 프린터 시장 최강자로 올라서겠다는 계획이다. 김광석 HP프린팅코리아 대표를 만나 현황과 향후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HP가 삼성전자로부터 HP프린팅코리아를 산 이유가 궁금하다.
A. 프린트 시장은 2가지로 나뉜다. 홈프린트(개인용)와 기업용이다. HP는 개인용 프린터의 최강자다. 반면 기업용에선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기업용 프린터는 일본 업체들의 전유물이었다. 상위 1~6등이 모두 일본 기업이었다. 문제는 인쇄 시장이 변했다는 것이다. IT화와 모바일화가 급속도록 진행되면서 인쇄 시장이 줄어드는 추세로 접어들었다. 특히 개인용 부문은 상당히 시장이 줄었다. 반면, 기업용 프린트 시장 규모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HP 입장에서는 개인용 프린트 외에 기업용 프린트로 사업 다각화에 나서야만 했다. 업계 최강자인 일본 기업들이 이를 달가워할 리 없었다. 굳이 시장에 HP라는 강자를 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기업용 프린트에서 경쟁력을 갖춘 곳이 일본 외에는 삼성이 유일했다. 때마침 삼성도 리더십 변화를 겪으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던 시기였다. 프린팅솔루션사업부 매출이 2조5000억원 수준이었다. 꽤 큰 규모지만 매출이 200조원에 달하는 삼성에서는 작은 사업부였다. 프린트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한 HP와, 사업부 교통 정리에 나선 삼성의 이해관계가 맞아 거래가 성사됐다. 중국 제조 공장부터, 해외 지점 연구소까지 1조3000억원에 HP가 인수했다.
Q. 해외 기업이 인수했는데 오히려 한국에 연구소를 직접 지으며 투자했다.
A. 주요 인력이 전부 한국에 있었다. 제품을 개발하려면 키가 연구 인력과 IP가 필수다. 연구 인력을 일일이 다른 나라로 이전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후발 주자인 만큼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했다. 이에 직접 HP가 직접 땅을 사고 연구소를 지었다. HP는 일반적으로 부동산과 건물을 잘 소유하지 않는다. 리스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HP프린팅코리아 판교 R&D센터는 HP가 전 세계에서 직접 소유한 건물 3개 중 하나다.
Q. 일본 기업의 아성을 뚫기 쉽지 않았을텐데.
A. 첫 A3프린터 제품(사무용 프린터)을 2017년에 공개했다. 당시에는 제품을 처음 만들었다는데 의미가 있었다. HP 브랜드 파워로 영업은 많이 했지만, 사실 품질 문제, 가격 경쟁력 문제도 있었다. 곧바로 후속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각종 문제를 해결하고 성능을 높인 2.0 제품 모델을 개발하고 선보였다. 이 제품이 현재 시장에서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제품의 활약으로 티어 2업체에서 티어 1업체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Q. 프린트 제작은 ‘공학의 종합 예술’이라고 들었다.
A. 기업용 프린터는 들어가는 부품이 1만여개가 된다. 내부 기계를 구성하는 기계 부품, 토너 등 화학 제품 개인의 PC 모바일과 연결시켜주는 소프트웨어 모두 들어간다. 사실상 공대에서 있는 전 학과의 기술이 다 들어간다. 그중에서도 많은 기업이 가장 어려워하고, 가장 신경쓰는 기술은 퓨즈의 열 전도 기술이다. 레이저 프린터라는 게 토너라고 하는 플라스틱 가루를 다림질해서 글을 인쇄한다. 이때 사용하는 퓨즈 부품은 열이 많은 상태에서 계속 움직인다. 내구성 확보가 필수다. 기술 전수도 어렵고 기술 확보도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처음 레이저 프린트 개발은 1987년도에 시작됐다. 35년이 지났다. 35년이 지난 지금에야, 안정적인 제품들이 나오는 수준이다. 기술의 복합성과 규모 때문에 A3 기술을 갖고 있는 곳은 일본밖에 없었다. 그나마 삼성전자였기에 인내심을 갖고 키워올 수 있었다.
Q. 현재 HP 프린터의 시장점유율은 어느 수준인가.
A. 전 세계 기업용 프린터 시장 규모는 약 45조원 수준이다. 이 중 HP의 점유율이 약 8%다. HP프린팅코리아 인수 전에 3%였다. 인수 후 한국 사업부의 활약에 힘입어 5년 동안 8%로 올랐다. 2027년까지 시장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Q. 프린터 사업이 사양 산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A. 프린터 산업은 사양 산업이 아니다. 중국의 채윤이 한나라 시절 종이를 발명한 이후부터 종이의 효용성을 대체한 물건은 아직 없었다. 비행기 1등석을 타보면 기업의 C급 임원들이 나중에 다 뭐하고 있는지 아나. 컴퓨터 두들기고, 스마트폰 만지다 결국에는 종이 보고서 꺼내서 줄치고 있다. 종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20년이 됐다. 현실화된 적이 없다. 1~2%의 하락하는 것은 있어도 확 줄어들지는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줄고 있는 것은 개발도상국에서 다시 채워준다. HP가 프린터 개발과 연구를 미국 서부에서 싱가포르나 한국으로 전진 배치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시장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 위주로 바뀌고 있을 뿐, 프린터 산업 전체가 위기라고 보기는 힘들다.
Q. HP프린팅코리아의 향후 목표가 궁금하다.
A. 기업용 프린터는 법인 자동차와 비슷하다. 리스 계약으로 사업장에 대량 납품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업으로 많은 수익을 낸다. 아직 HP는 이런 계약 관리에서 약한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게 단기적인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HP 글로벌 본사의 제품 개발 등 사업을 끌어와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회사로 성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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