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표 구속영장 왜 기각됐나
서울구치소 나서며 “사법부에 깊은 감사”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새벽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모습. 이 대표는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해 주신 사법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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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27일 새벽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총 892자의 기각 사유를 제시했다. 이례적으로 긴 분량이었는데 이 사건에 쏠린 관심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각 사유를 요약하면, ‘위증교사 혐의’만 소명됐다고 봤고, 야당 대표는 공적 감시 대상이라서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법원 내부에서도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걸 자인하는 내용”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대장동 사건, 백현동 아파트 개발 특혜 사건, 쌍방울 대북 불법 송금 사건과 관련해 구속 기소된 사람은 최소 24명 정도다. 이 대표는 이들 사건에서 최종 결재권을 가진 성남시장 또는 경기지사였다. 검찰 관계자는 “단지 정당 대표 신분 때문에 증거 인멸이 없다고 적시한 건 사법에 정치적 고려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위증교사 혐의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 유 판사는 “혐의가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경기지사 선거 방송토론회에서 과거 자신이 ‘검사 사칭’으로 형사 처벌을 받았던 사안에 대해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허위 사실 공표(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이후 증인에게 거짓 재판 증언을 교사해 그 부분 무죄 판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혐의와 관련해 검찰은 이 대표가 증인 김모씨에게 위증을 시키는 육성 녹취록을 확보했다. 한 법조인은 “그 정도 물증이면 어떤 판사라도 혐의가 소명된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
◇백현동 특혜 제공 혐의
이 대표의 ‘백현동’ 관련 혐의에 대해 유 판사는 “이 대표의 (당시 성남시장으로서) 지위, 관련 결재 문건,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이 대표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직접 증거가 부족해 이 대표의 방어권이 배척될 정도에 이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인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이 대표가 용도 변경 등 관련 서류에 직접 결재하고, 이 대표의 지시가 있었다는 담당 공무원 진술과 법정 증언이 있는데도 이 대표가 관여한 직접 증거가 없다고 하는 법원 판단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 법조인은 “결재권자인 이 대표 지시 없이 용도변경 같은 특혜를 줄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했다.
◇쌍방울 대북 송금 관여 혐의
유 판사는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관련 혐의에 대해선 “핵심 관련자인 이화영(전 경기도 부지사)의 진술을 비롯해 현재까지 관련 자료에 의할 때 이 대표의 인식이나 공모 여부, 관여 정도 등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화영씨의 ‘300만 달러 방북비 대납 보고’ 진술, 이 대표가 경기지사로서 결재했던 대북사업 관련 서류,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이 대표의 통화 등의 관련 증거가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유 판사도 이화영씨 ‘방북비 보고’ 진술의 ‘임의성’은 인정했다. 그 진술을 할 때 검찰의 회유·압박은 없다는 것이다.
◇증거 인멸 우려
이 대표 영장실질심사의 핵심 쟁점은 증거 인멸이었다. 유 판사는 모두 이 대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단했다. ‘위증 교사’와 ‘백현동’에 대해 그는 “현재까지 확보된 인적·물적 자료에 비추어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한 법조인은 “더 이상 인멸할 증거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유 판사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진술과 관련해 이 대표 주변 인물에 의한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다”고 했다. 이는 이화영씨가 ‘이 대표에게 대북 송금을 보고했다’고 진술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난 7월 이후, 이 대표 측근 의원 등이 이씨 아내와 통화하거나 구치소로 이씨를 직접 찾아가 “허위 진술을 했다는 옥중 서신을 써 달라고 한다”고 했던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당시 구치소 대화가 녹음된 파일을 실질심사에서 재생했다.
하지만 유 판사는 “이 대표가 직접적으로 개입했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는 부족하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칼을 꼭 쥐여주고 살인을 지시해야 살해 지시인가”라며 “이화영씨의 진술을 회유해서 가장 이득을 얻은 건 이 대표 본인”이라고 했다.
[송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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