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총리, 獨 총리에 항의서한까지
북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불법 이주민들이 18일(현지 시각) 보트를 타고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에 도착한 모습.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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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아프리카·중동 출신 불법 이민자들이 폭증하면서 유럽 국가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특히 유럽의 화합과 단결을 이끌어왔던 서유럽 4대 주요국(빅4, 독일·영국·이탈리아·프랑스)끼리 노골적으로 반목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25일(현지 시각)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독일 정부가 이탈리아 정부와 상의 없이 지중해에서 불법 이민자 구조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NGO)에 자금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경악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 간에 이렇게 날이 잔뜩 선 메시지가 적나라하게 전달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앞서 이탈리아 매체들은 전날 독일 정부가 지중해에서 난민 구조선을 운영하는 독일 구호단체 ‘SOS 휴머니티’에 79만유로(약 11억4000만원)를 지원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정부는 또 이탈리아 내에서 이주민을 돕는 가톨릭 자선단체에도 40만유로(약 5억7000만원)의 자금 지원을 할 예정이다. 이탈리아가 불법 이주민 문제로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독일이 이런 조치를 취하자 멜로니는 격분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최근 주민이 6000명에 불과한 자국 최남단 람페두사섬으로 12만명이 넘는 이민자들이 몰려들자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전후 역대 이탈리아 총리 중 가장 극우 노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멜로니는 지난해 10월 ‘불법 이민 근절’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했지만 이주민 문제가 정권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 됐다. 멜로니는 서한에서 “(지중해의) 구호 단체 선박은 난파로 인한 사상자를 부르는 이주민 항해를 부추긴다”며 “이탈리아를 도우려면 (불법) 이주에 대한 구조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독일을 성토했다. 니콜라 몰테니 이탈리아 내무부 차관도 “독일 정부의 심각한 내정 간섭”이라고 비난했다.
그래픽=김현국 |
독일 외무부는 24일 이탈리아 안사 통신에 “바다에서 표류하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은 법적, 인도적, 도덕적 의무”라며 “(난민 구조선) 자금 지원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정부를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멜로니 행정부를 ‘자기 나라만 챙기는 이기적 집단’으로 나무라는 모양새다.
유럽의 이민자 문제는 해묵은 문제다. 2011년 시작된 아랍의 봄(아랍권 국가들의 민주화 시위)의 여파로 내전이 벌어지고 테러가 빈발하자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주민들의 유럽 유입이 폭증했다. 지중해는 그 핵심 루트였다. 유럽 국가들도 처음에는 이들에 대해 온정적이었다. 하지만 난민과 불법 이민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이민자 폭증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면서 입장을 달리하는 국가 간 갈등이 불거졌다.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 섬에서 15일(현지 시각) 경찰이 이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전 경계를 서고 있다./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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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 지중해와 바로 면한 이탈리아가 있다. 이탈리아는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난민구조선이 “불법 이민자를 실어나르는 왕복 택시 역할을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탈리아는 독일과 갈등하기 전에는 프랑스와도 난민 구조선 입항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11월 프랑스의 해상 구조단체 ‘SOS 메디테라네’가 운영하는 난민 구조선 ‘오션 바이킹’의 입항을 거부해 프랑스와 심각한 외교 갈등을 벌였다. 프랑스 정부는 이에 “자기 영해의 구조선을 받지 않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이탈리아로부터 이주민 3500명을 받는 계획을 취소하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프랑스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23일 “유럽이 난민에게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프랑스 역시 이주민 문제로 영국과 갈등을 빚었다. 두 나라는 영불해협을 무단으로 건너 영국으로 가는 불법 이민자 문제를 놓고 20년 이상 분쟁을 겪었다. 영국은 “프랑스가 (난민의 자국 정착을 막기 위해) 영국으로 불법 이민을 조장·방치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프랑스는 “불법 이민자를 저임금 노동자로 활용하는 영국의 노동 시장이 근본 문제”라며 맞받아쳤다. 지난해 여름 영불해협에서 밀항선이 뒤집혀 여성과 어린이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르자, 양국은 서로를 비난하고 자국 영해에서 상대국 어선의 조업권을 제한하는 등 갈등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 문제는 간신히 봉합됐다. 지난 3월 마크롱 대통령과 리시 수낙 영국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영국이 프랑스의 순찰과 단속 강화를 위해 4억8000만 파운드(약 7896억원)를 지원하는 방안이 타결됐다.
이민자 문제로 ‘빅4′ 국가 간 갈등이 불거지고 가까스로 봉합하면 다시 새로운 갈등이 표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이민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서유럽은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이후 최대의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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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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