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선택한 줄 알았던 伊 가장, 10년 뒤 그리스서 발견된 사연

2013년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편지를 남긴 뒤 10년간 자취를 감췄던 아다모 구에라. /팡페이지

2013년 7월 7일,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편지를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진 이탈리아 남성이 10년 뒤 그리스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어떻게 된 일일까.

22일(현지 시각)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등에 따르면, 사건은 가정용품 판매원이었던 아다모 구에라(당시 45세)가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 로마냐주의 이몰라에 있는 자택에 편지 3통을 남기고 돌연 자취를 감추면서 시작됐다. 편지들은 각각 아다모 구에라의 부모, 동료, 아내 앞으로 남겨졌다.

편지 3통의 내용은 비슷했다. 모두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것들이었다. “안타깝지만 이제는 끝낼 때가 왔다” “위험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렸는데, 상황이 나빠졌다. 가족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 등의 내용이 편지에 담겼다.

이후 구에라의 차가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주의 안코나 항구에서 발견되면서, 경찰은 그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바다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봤다. 그렇게 구에라 실종 사건은 2014년 자살로 종결됐다. 당시 구에라의 두 딸이 각각 12세, 16세밖에 되지 않을 때였다.

구에라가 살아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생긴 건 최근 아내 라피엘라 보르기가 구에라와의 이혼 절차를 밟으면서다. 변호사가 이혼 서류 작업 중 구에라가 지난해 2월 재외선거인 등록 신청을 한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구에라의 현재 거주지로 나오는 곳은 그리스 서부 도시 파트라스였다. 보르기는 평소 다정하고 세심했던 남편이 어린 두 딸을 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다 최근에서야 체념하고 이혼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고 한다.

방송 스튜디오에서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아내(왼쪽)과 과거 남편의 모습. /코리에레 델라 세라

아내 보르기는 처음에는 변호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탈리아 공영 방송 라이(Rai)의 실종자 찾기 프로그램에 남편을 찾아달라고 의뢰했다.

그리고 지난 20일, 방송에서 남편을 찾았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구에라는 그리스에서 직장까지 구해가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구에라는 자신을 찾아낸 제작진을 향해 카메라를 끄라고 소리치며 밖으로 쫓아냈다. “나를 찾았으니 저리 가. 여기서 끝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르기는 이 모든 장면을 스튜디오에서 지켜봤고, “그는 인간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니다. 그는 이제 할아버지인데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며 씁쓸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다모 구에라가 부모에게 남긴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편지. /라이

현재 보르기가 구에라를 상대로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할 지 등 추가적인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탈리아 형법 제570조에 따르면, 부모가 책임을 회피하고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않았을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대 1032유로(약 146만원)의 벌금형에 처한다.

형사사건 전문 프란체스카 테리빌레 변호사는 라 레푸블리카에 “보르기가 3개월 안에 고소장을 제출하면 형사소송과 별개로 민사소송이 진행될 것”이라며 “이 경우 종신 부양비 등 금전적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 경찰이 초기 수사 결과를 ‘자살’로 잘못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할 수는 있지만, 통상 승소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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