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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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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의 MLB스코프] '상식 파괴' 블레이크 스넬, 사이영상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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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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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블레이크 스넬은 좋은 투수다. 이번 시즌 31경기 등판,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하고 있다. 평균자책점 양대 리그 통합 1위다. 174이닝 동안 잡아낸 삼진 227개 역시 스넬이 좋은 투수라는 걸 알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넬은 좋은 투수와 거리가 멀다. 좋은 투수의 조건인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던지지 못한다. 제구력이 경기마다, 아니 이닝마다 편차가 컸다. 지켜보는 내내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다. 올해도 97볼넷 13폭투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다.

그야말로 양 극단을 넘나드는 투수가 바로 스넬이다. 그리고 스넬은 올해 메이저리그 역사상 7번째 양대 리그 사이영상에 도전한다.

역대 양대 리그 사이영상 투수

1. 게일로드 페리
2. 로저 클레멘스
3. 랜디 존슨
4. 페드로 마르티네스
5. 로이 할러데이
6. 맥스 슈어저


출발은 험난했다. 시즌 첫 9경기 성적이 1승6패 평균자책점 5.04에 불과했다. 상대 타자와 정면 승부를 하기도 전에 자기 스스로 쓰러진 시기였다. 45이닝 27볼넷으로, 9이닝 당 기준 5.4볼넷을 내줬다. 일반적으로 제구가 나쁜 투수는 루상에 주자가 있을 때 제구가 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즌 초반 스넬은 이 일반적인 영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스넬은 주저앉지 않았다. 5월 26일 이후 완전히 달라진 투수가 됐다. 포심 패스트볼 비중을 줄이고 커브와 체인지업, 슬라이더 비중을 높인 것이 주효했다. 특히 체인지업의 부활이 결정적이었다. 덕분에 스넬은 이후 22경기에서 13승3패 평균자책점 1.26을 질주하고 있다. 같은 기간 스넬의 자책점별 등판은 아래와 같다.

0자책 - 12경기
1자책 - 4경기
2자책 - 4경기
3자책 - 2경기


스넬은 최근 22경기 동안 단 한 번도 5이닝 등판을 실패한 적이 없다. 5월 26일 이후 스넬이 던진 129이닝은 로건 웹(136이닝) 잭 갤런(131이닝) 루이스 카스티요(130⅔이닝)에 이은 메이저리그 최다이닝 4위에 해당했다. 적은 이닝으로 평균자책점 관리를 한 것이 아니었다. 이 기간 '팬그래프닷컴' 투수 승리기여도 역시 1위 투수는 스넬이었다.

5/26일 이후 투수 승리기여도

4.0 - 블레이크 스넬
3.6 - 잭 에플린
3.5 - 잭 윌러
3.2 - 로건 웹
3.2 - 스펜서 스트라이더


물론, 스넬은 리그 최정상급 투수가 되고 나서도 볼넷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29이닝 70볼넷으로, 9이닝 당 4.9볼넷을 허용했다. 볼넷으로 주자를 내보내는 건 같지만, 그 주자들을 루상에 묶어두는 모습이 달라졌다. 실제로 스넬은 루상에 주자를 남기고 내려오는 '잔루율'에서 이 기간 91.9%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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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콜로라도 로키스전은 올해 스넬이 어떤 투수인지 보여주는 경기였다. 스넬은 7이닝 동안 탈삼진 10개를 더한 노히트 피칭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처럼 압도적인 경기에서도 볼넷은 포기하지 못했다. 볼넷 4개와 폭투 1개를 범했다. 홈런 타자에게 삼진을 세금으로 여기는 것처럼, 스넬에게 볼넷은 피칭을 위해 지불하는 세금과 같았다.

그러면서 스넬은 단일 시즌 100볼넷을 앞두고 있다. 단 3개만이 남았다. 향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시카고 화이트삭스 상대 등판이 남아 있고, 스넬은 이 일정을 다 소화할 계획임을 알렸다. 스넬이 두 경기 도합 볼넷 두 개로 100볼넷을 피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스넬은 직전 9월 3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도 6이닝 4볼넷을 기록했다. 참고로 메이저리그는 2012년 에딘손 볼케스와 리키 로메로 이후 100볼넷 투수가 없었다(볼케스 & 로메로 105볼넷). 이 가운데 볼케스는 공교롭게도 샌디에이고 투수였다.

지난해 내셔널리그는 마이애미 말린스 샌디 알칸타라가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1위표 30장을 독차지한 만장일치 수상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만장일치 사이영상은 탄생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스넬을 비롯해 확실하게 치고 올라선 후보가 없다.

14승9패 2.33 174.0이닝 227삼진 - 스넬
16승5패 3.00 168.0이닝 170삼진 - 스틸
16승8패 3.60 197⅔이닝 205삼진 - 갤런
12승6패 3.63 181.0이닝 201삼진 - 윌러
18승5패 3.73 176.0이닝 270삼진 - 스트라이더


현지에서 언급되는 후보는 5명이다. 이러한 살얼음판 경쟁은 한 경기만 삐끗해도 타격이 크다. 9월 첫 두 경기 힘을 내는 듯 했던 저스틴 스틸은, 그러나 최근 두 경기 6이닝 6실점, 3이닝 7실점으로 무너졌다. 시즌 중반 부상으로 이닝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스틸로서는 평균자책점 타이틀은 반드시 사수해야 했다. 이 임무에 실패한 스틸은 사실상 탈락이다.

과거에는 다승과 이닝이 선발투수의 덕목이었다. 심지어 다승은 사이영상 수상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비슷한 성적이면 승수가 더 많은 투수가 유리했다. 2005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 바톨로 콜론이 요한 산타나를 꺾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21승8패 3.48 222⅔이닝 157삼진 - 콜론
16승7패 2.87 231⅔이닝 238삼진 - 산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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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점은 세이버 지표가 발달하면서 바뀌었다. 최고의 투수를 가리는만큼 투수 개인 능력에 치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어났다. 이에 2010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13승에 불과했던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21승의 CC 사바시아와 19승의 데이빗 프라이스를 제치고 사이영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에르난데스는 승수를 제외한 평균자책점(2.27)과 이닝(249⅔)은 1위, 탈삼진(232)은 2위였다.

다승에 이어 이닝도 갈수록 지배력이 약해졌다. 불펜 야구가 대두되면서 선발 투수 비중이 줄어듦에 따라 선발 투수가 많이 던져야 한다는 인식이 완화됐다. 이닝 소화력보다 경기 소화력이 중시됐다.

이 변화로 혜택을 본 선수가 2018년 스넬이다. 2018년 스넬은 180⅔이닝만을 던졌지만, 같은 해 200이닝을 넘긴 게릿 콜(200⅓)과 저스틴 벌랜더(214) 코리 클루버(215)를 따돌렸다. 2021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잭 윌러보다 46⅓이닝을 적게 던진 코빈 번스가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번스 167이닝, 윌러 213⅓이닝). 이 결과는 이닝의 가치를 지나치게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꽤 논란이 됐다.

2018년 스넬과 2021년 번스의 공통점은 모두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스넬은 1.89, 번스는 2.43이었다. 이는 평균자책점이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재 스넬이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히는 이유다.

스넬의 볼넷은 분명 결격 사유다. 다만 스넬은 볼넷을 주면서도 다른 부분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본인이 자초한 위기를 본인 스스로 해결했다. 볼넷 때문에 WHIP는 다소 높지만(1.20) 피안타율(0.180)과 피OPS(0.582)는 역시 전체 1위에 올라 있다. 볼넷은 문제지만, 볼넷 때문에 나머지 대단한 기록들이 폄하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볼넷이 많은 건 불리하다. 그러나 볼넷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투수는 아니었다. 명예의 전당 투수 밥 펠러와 놀란 라이언도 커리어 내내 볼넷이 약점이었다. 펠러의 통산 9이닝 당 볼넷 수는 4.1개, 라이언은 4.7개다(스넬 통산 4.1개).

통산 300승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얼리 윈도 볼넷이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윈은 1959년 리그 최다 119볼넷을 주고도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리그 최다 볼넷 투수가 사이영상을 따낸 유일한 시즌이었다. 올해 스넬은 윈에 이어 두 번째 최다 볼넷 사이영상 투수를 노린다.

한편, 샌디에이고 루벤 니에블라 투수 코치는 볼넷으로 주눅이 들어있던 스넬에게 용기를 주는 격려를 해줬다. 스넬은 이 말을 듣고 볼넷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았다.

"볼넷은 타자들이 너의 공을 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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