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분야 제외 양국관계 낮은 수준"…군사분야 협력 확대 관심
무기 확보·인도적 지원 등 동기 충분…예상 못 한 급격한 관계 변화 전망도
악수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최수호 특파원 = 지난달 28일 러시아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후 3년 6개월 만에 제한적으로 국경을 개방한 북한이 그간 러시아에 남아있던 자국민 노동자 등을 데려가기 위해 3일 전에 이어 두 번째로 고려항공 여객기를 보낸 날이다.
오전 11시 5분(현지시각)에 도착한 여객기가 2시간여 정도 머물다 평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공항 청사 안팎에는 북한 감시 요원 수십명이 배치돼 북한 주민 등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며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최근 고려항공 여객기의 평양∼블라디보스토크 노선 비행이 2차례 이뤄지는 동안 북측 요원의 날카로운 눈매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것은 주민 귀환 현장의 외부 노출을 최대한 막으려는 북한 입장에 보조를 맞춰주는 듯했던 러시아의 대응이었다.
공항 청사 내부에는 러시아 경찰 등이 다수 배치돼 북측 요원 활동을 지원했으며, 공항 관계자들은 북한 주민 귀환 질문에 함구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도 러시아로 들어오는 고려항공 여객기의 세부 비행 일정을 홈페이지 노선표에 공개하지 않았고, 이 기간 북한 항공기 도착 소식을 전하는 러시아 현지 매체 역시 많지 않았다.
북, 3년 6개월 만에 러 블라디보스토크 운항 재개 |
고려항공 여객기 운항을 시작으로 북한 국경이 점진적으로 열리면 북한과 러시아가 이번처럼 손발을 맞추는 협력 범위도 확대될 게 자명하다.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북한과 국경이 맞닿은 극동 연해주는 작년 하반기부터 이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해주 정부는 작년 11월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연해주 하산역∼북한 두만강역 간 국경 철도 화물 운송이 재개되자 이후 북측과 관광 분야 협력을 위한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지난 6월 지역에 러시아·중국·북한 등 3개 국가 생산품을 한곳에서 거래할 수 있는 상공업 단지 조성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국경 개방 후 이뤄질 경제교류 복원보다는 양국의 군사 분야 협력이 어디까지 확대될지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북한이 대외 무역의 90% 이상을 또 다른 우방인 중국에 의존하고 있고, 러시아는 1년 6개월 넘게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작전을 지속하는 까닭이다.
최근 들어 북중러 3국은 한국과 미국, 일본의 안보협력 강화에 대응해 결속을 다지고 있지만, 북한과 중국, 북한과 러시아의 그간 관계는 서로 결이 다르다.
러시아 매체 RTVI와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 등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북한과 군사적 동맹 관계가 아니다.
1961년 북한은 중국·옛소련과 상호 방위조약을 체결했지만, 현재 이는 북중 간에만 유효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0년 북한과 기존 조약을 대신하는 '우호·선린·협력 조약'을 체결했으나, 상호 방위에 관한 내용은 빠졌다.
이 조약은 체결 후 10년간 유효하며 상대국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연장된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최근 수십년간 대북 외교정책에서도 북한과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보다는 중국과 보조를 맞추는 것에 무게를 두는 행보를 보였다고 진단한다.
북한 핵실험 등에 따른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나 북한 핵미사일 개발 등을 두고 러시아가 대부분 중국과 뜻을 같이하며 찬반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북한 또한 대외적으로 보인 외교적 수사와 달리 내부적으로는 러시아와 다소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은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후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북한의 이 같은 러시아 지지 발언은 외국 독자를 대상으로 한 북한 매체에서만 볼 수 있었고, 북한 주민만을 상대로 한 매체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북한과 러시아 사이를 반영하듯 러시아 현지 전문가도 양국의 실제 관계가 정치적 분야를 제외하고는 현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보고 있다.
일리야 디야치코프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MGIMO) 동양학부 부교수는 "정치 관계·외교 분야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러시아와 북한 간의 실제적인 협력 결과물은 매우 적다"며 "이는 비정상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작전에 쓸 무기 확보가 필요한 러시아와 코로나19에 따른 오랜 봉쇄로 인도적 지원이 절실한 북한의 현재 상황은 향후 국경 전면 개방 후 양국이 실질적 협력 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는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 북한 스스로가 자국을 미국 패권에 대항하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고, 러시아 역시 북한과의 관계 강화가 미국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까닭에 양국 간 협력은 특히 군사 분야에서 두드러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7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의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기념일) 70주년 행사 참석을 위해 방북한 이후 러시아도 양국의 이익을 위해 북한과 군사협력에 나설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식량 지원을 대가로 북한에서 무기를 공급받을 것이란 서방 전망에는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사태가 지속하는 와중에 시작된 북한의 국경 개방으로 러시아와 북한 관계가 다시 주목받자 양국 관계가 예상을 뛰어넘는 급격한 변화를 맞을 수 있다는 '다소 섣부른' 전망도 나온다.
이전과 달리 북한과 러시아 모두 서로 협력할 동기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 출신 학자 표도르 테르티츠키는 지난달 CEIP에 기고한 '쇼이구 방문 후 북한은 러시아와 동맹국이 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현재로서는 자신감 있게 어떤 것도 예측하기 어렵다. 사건 전개에 영향을 줄 요소가 너무 많다"며 "하지만 역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때때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항상 보여줬다"고 말했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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