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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교황은 왜 푸틴을 규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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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외하고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논란에 자주 휘말린 지도자도 드물다.

교황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화상 연설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모인 러시아 청년 신자들에게 "여러분의 유산을 잊지 말라. 여러분은 위대한 러시아의 후예"라고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비난을 샀다.

교황은 당시 연설에서 러시아 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표트르 대제와 마지막 여제 예카테리나 2세를 언급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신제국주의적 전쟁을 일으킨 상황에서 교황이 과거 러시아 제국주의 역사를 치켜세우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서방은 발칵 뒤집혔다. 교황청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교황이 러시아 제국주의를 미화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교황은 이외에도 러시아에 우호적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 논란을 빚었다.

교황은 전쟁 발발 두 달여 뒤인 지난해 5월 3일 이탈리아 일간지 '라스탐파'에 전쟁을 유발한 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라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이 됐다

교황은 "러시아 문 앞에서 나토가 짖은 게 어쩌면 푸틴의 행동을 촉발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에는 차량 폭탄에 의해 숨진 러시아의 극우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 다리야 두기나에 대해 "무고한 전쟁의 희생자"라고 말해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샀다.

교황청은 성명을 통해 교황의 말씀을 정치적으로 재단하지 말라고 당부한 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연방에 의해 시작됐다"며 우크라이나를 다독였다.

교황청이 전쟁을 일으킨 주체를 언급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식 석상에서 줄곧 전쟁의 참혹함을 규탄했지만, 푸틴 대통령을 지목해 비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민간인들이 잔혹하게 살해된 우크라이나 부차 학살과 마리우폴의 참상으로 러시아의 '제노사이드'(집단학살)가 국제적으로 비난받을 때도 교황은 그 책임이 푸틴 대통령에게 있음을 명시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다.

서방 지도자들이 거의 예외 없이 방문한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교황은 아직 방문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꾸준히 교황을 초청했지만, 교황은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이 가능할 때만 키이우를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교황의 태도가 서방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당연했다. 서방 정부 관계자들이 교황에게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언론매체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 CBS 뉴스는 지난달 29일 교황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연설 내용을 소개하며 "교황이 러시아에 대한 발언으로 또다시 비판받고 있다"며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물론 교황이 러시아 편인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접근 방식이 서방과 다른 것뿐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서방 진영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반면 교황은 서로 무기를 거두고 즉각적으로 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황은 더 큰 살상과 갈등을 부를 서방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도 반대한다. 교황은 대화만이 전쟁을 평화적으로 끝낼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또한 그 대화를 위해서는 상호 존중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교황청 외무장관 폴 갤러거 대주교의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갤러거 대주교는 "교황은 대화와 평화라는 근본적인 목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는 건 쉬운 일이고, 서방 진영에서도 반기겠지만 그렇게 할 경우 대화와 평화의 다리가 무너질 것을 교황이 염려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교황이 한쪽 편, 더욱 정확하게는 서방의 편에 서지 않고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왔기에 역설적으로 교황은 평화 중재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교황이 임명한 평화 특사인 마테오 주피 추기경은 지난 6월 키이우에 이어 모스크바를 차례로 방문했다. 그는 뒤이어 7월 중순에는 미국 워싱턴을 찾아 교황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직 전쟁 당사자들에게서 큰 응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교황은 만약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비난했다면 차단됐을 대화와 평화의 끈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어느 쪽이 진정으로 평화를 위한 길일까. 끝없이 길어지는 이 전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방의 관점에 길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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