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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우리에게 8·15는 탈레반에 나라 뺏긴 날” 아프간인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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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살이 2년... 아프간인들이 기억하는 그날

조선일보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탈레반을 피해 2년 전 한국에 도착해 울산에서 살고 있는 가브리안 마흐무다(오른쪽)가 남편 카리미 가니쉬가, 곰 인형을 안고 있는 아들 터렉과 단란한 포즈를 취했다.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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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인 가브리안 마흐무다(24)에게 2021년 8월 15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오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탈레반이 수도 카불까지 들이닥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남편(카리미 가니쉬가·40), 두 살배기 아들과 탈출을 결심했다. 남편이 아프간 한국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 특별기여자(한국 정부와 일한 경력을 인정받아 정식 체류 자격을 얻은 사람)로 선발됐고, 가족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남편이 취업한 HD현대중공업 사택에 살림집을 차리고,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는 그는 “2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기억은 평생 갈 것”이라고 했다. “탈레반이 돌아와 평화롭고 행복했던 아프간과 이별한 날이거든요.”

자리프 사이예디(40) 역시 그날을 잊지 않는다.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아내와 함께 세 딸과 아들 하나를 키워온 그도 탈레반의 카불 재장악 소식을 듣고 탈출을 결심했다. 한국 병원 근무 인연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HD현대중공업에 몸담은 뒤 최근 인천으로 이사해 새 직장을 찾고 있는 그는 “한국에 와서 정말 다행인 건 시각장애인 첫째를 비롯해 딸들이 모두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BTS의 음악을 들으며 공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은 아프간에 남았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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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철수로 탈레반 정권이 다시 들어선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 활동을 지원해온 아프간 현지인 직원 및 배우자 ,미성년 자녀, 부모 등 378여 명이 2021년 8월 26일 오후 인천 국제공항 통해 입국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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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이들 가족을 포함해 아프간 특별기여자 391명이 긴급 수송 작전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미군이 9·11 테러 이후 21년 동안 이어졌던 전쟁을 접고 아프간에서 철수하고 직후에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후의 일이다. 이들은 현재 울산·김포·인천 등 전국 여러 곳에 정착해 살고 있다. 한국이 8월 15일을 패망했던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로 기리는 동안, 재한(在韓) 아프간인들은 망국(亡國)의 기억을 떠올린다. 사이예디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독립기념일인 이날, 우린 나라를 잃고 평생의 터전을 두고 탈출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 병원에서 약사로 일한 경력 덕에 아내, 두 딸(7세·5세) 및 세 살배기 아들과 한국에 와 김포에 살고 있는 누룰라 사데키(36)는 “내가 경험했던 세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아프간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중학생 시절 탈레반이 처음 집권했을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TV에서 음악 프로와 예능 프로가 모두 사라지더니 총으로 사람을 쏴서 사형을 집행하는 장면을 중계하더군요. 아이들이 그런 일을 겪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한 구호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탈레반은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전격 침공하자 이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였던 반군 조직에 뿌리를 둔다. 내전을 평정하고 1996년 집권한 뒤 이슬람 극단주의 이념을 앞세워 오락·예술 활동을 죄악시했다. 여성들에겐 전신 가리개인 부르카를 착용하고 집에만 머물 것을 강요했다. 여성의 학교 등교나 사회 활동도 이들은 금지한다. 탈레반은 2001년 9·11 테러의 주동자 오사마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줬다 미국 주도 국제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그해 10월 축출됐다. 이후 서방의 도움으로 민주 정부가 설립됐지만 탈레반의 지속적 공격과 내부 분열을 이겨내지 못하고 20년 만에 붕괴됐다.

비행기에 오를 때 배 속에 있었던 막내아들이 태어나면서 누룰라의 식구는 여섯 명으로 불었다. 카불에 남은 부모·형제와 일주일에 한 번씩 메신저로 안부를 나눈다. 가장 눈에 밟히는 게 여동생이다. 교사였던 여동생은 탈레반 집권 후 학교에서 쫓겨났고, 지금은 역시 학습권을 박탈당한 여학생들을 몰래 가르친다.

재집권한 탈레반은 과거 집권기 때와 같은 여성 탄압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었다. 하지만 집권 한 달 뒤 대학에서 여학생 등교와 여교수 강의를 금지한 것을 시작으로, 여학생의 중학교 진학 금지(2022년 3월), 여성 대학 교육 금지(2022년 12월), 여성의 유엔 산하 기구 근무 금지(올해 4월) 등을 연쇄적으로 취했다. 지난달에는 여성들이 가족을 먹여살리는 중요한 일터였던 전국의 미용실에 대한 폐쇄 명령까지 내렸다. 특별기여자로 아내와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파리드 아마드(36)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고향에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고 슬프다”고 했다.

아프간의 경제 상황은 탈레반 집권 후 악화일로다. 유엔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은 2년 사이 28% 감소했다. 아프간 전체 인구의 85%(3400만여 명)가 빈곤층이다. 여기에 지난해 2월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되면서 아프간 문제는 현안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 때문에 카불 함락 뒤 외국으로 탈출한 160만명(유엔난민기구 추산) 대부분은 무관심 속에 경계인으로 살아간다.

한국에 둥지를 튼 이들은 커뮤니티를 조직해 서로 안부를 물으며 위로한다. 마음 한편에는 두려움도 있다. 특별비자가 2025년 1월에 만료되는데, 이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누룰라는 “아프간이 더 나은 세상이 됐을 때 딸들이 학교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열심히 살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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