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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동물원] 논란의 ‘인어공주’…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조선일보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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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동물원] 논란의 ‘인어공주’…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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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캐릭터 대거 교체 논란 속 주목받는 ‘스커틀’
원작선 갈매기, 실사판선 부비새
30m 높이서 시속 90㎞로 하강하는 수중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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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한참 전부터 시끌시끌, 개봉하고 나니 이러쿵 저러쿵, 박스오피스 발표될때마다 술렁술렁… 영화 한편이 이렇게 화제와 논란을 몰고 다니는 경우가 또 있었을까요? 만화 영화를 34년만에 실사판으로 만든 월트 디즈니의 ‘인어공주’ 말입니다. 다양성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작품으로서의 표현 방식 사이의 틈새에서 시작된 설전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어요. 특히 만화영화를 실사판으로 옮기는 과정엔서 벌어진 캐스팅이 적절했느냐가 논란의 핵심이죠. 개인적으로는 높은 기대치와 반비례한 몰입감에 조금 실망스러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허나 근본적인 미스 캐스팅 논란은 사람이 아닌, 짐승 문제라고 봅니다. 용궁의 인어들을 보좌하는 감초 짐승 캐릭터들이 만화에서 영화로 옮겨지면서 특유의 해맑고 발랄한 분위기를 확 잃어버렸거든요.

1990년대 초반 만화영화로 이 작품을 접했던 사람들에게, 세바스찬이 가재에서 게로 바뀌고, 형형색색의 물고기 캐릭터 ‘플라운더’가 실사판에서 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듯한 모습의 자리돔으로 등장하자 벙찐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도입부에 식인상어가 등장해서 에이리얼을 쫓아가는 장면도 좀 생뚱맞았어요. 만화영화가 기본인 스토리에 자연다큐멘터리의 서사를 도입하니 뭔가 뒤죽박죽 섞이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흰부비새는 특별한 일이 없는한 암수가 평생 짝을 짓는다. 암수 한쌍이 다정히 털을 골라주고 있다. /JASON HOSKING. Newzealand Geographic

흰부비새는 특별한 일이 없는한 암수가 평생 짝을 짓는다. 암수 한쌍이 다정히 털을 골라주고 있다. /JASON HOSKING. Newzealand Geographic


개인적으로 이번 실사판 인어공주에서 가장 충격적 장면이라면, 인어공주 에이리얼을 돕는 바닷새 스커틀이 물속으로 낙하해 물고기를 사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플라운더의 바로 옆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를 나꿔채 꿀꺽 삼킨 뒤 간식을 먹었다며 너스레를 떱니다. 아무 의미도 없어보이는 이 장면은 그러나 디즈니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계의 위력을 드러냅니다. 스커틀의 입장에서는 플라운더나 다른 물고기나 한입거리의 간식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스커틀과 아는 사이라는 이유로 플라운더는 먹히지 않고 목숨을 부지할 뿐이죠.

바닷가에 몰려와있는 흰부비새의 사체. JASON HOSKING. Newzealand Geographic

바닷가에 몰려와있는 흰부비새의 사체. JASON HOSKING. Newzealand Geographic


스커틀 역시 만화영화에서는 갈매기로 나왔지만, 실사판에서는 전혀 다른 생김새의 물새로 바뀌었죠. 오늘은 이 물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영어는 개닛(Gannet) 이지만, 우리말 이름은 여러 개입니다. 부비새의 한 종류인데, 상대적으로 깃털이 하얀 편이라서 흰부비새라고 부릅니다. 또 가다랭이잡이새라고도 하고, 가마우지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북양가마우지라고도 해요. 영화에서 스커틀은 바닷속 깊이 잠수해서 물고기를 나꿔챕니다. 실제로 사는 모습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이새가 속해있는 사다새목은 펠리컨, 가마우지, 갈색부비새 등이 속해있는데, 물고기들에겐 더없는 저승사자입니다. 방법은 조금씩 달라도 고기잡이 실력이 대단하거든요.

흰부비새가 먹이를 잡으러 자세를 가다듬고 고속으로 바닷속으로 낙하하고 있다. /Stuart Blackman. BBC Wildlife

흰부비새가 먹이를 잡으러 자세를 가다듬고 고속으로 바닷속으로 낙하하고 있다. /Stuart Blackman. BBC Wildlife


그중에 흰부비새는 영화에서처럼 다이빙 실력이 일품입니다. 수면위 30위 공중에서 날개를 뒤로 젖히고 기다란 목을 쭉 벋고 수직낙하할 때 시속은 최대 86㎞까지 치솟습니다. 이런 폭격 사냥술은 수리나 매 같은 맹금류의 전매특허처럼 보이지만, 흰부비새의 수중폭격 실력도 만만치 않죠. 이 새의 놀라운 다이빙 사냥 실력을 담은 BBC 어스 동영상입니다.

세상 모든 동식물들은 주어진 환경에 맞춰 진화합니다. 흰부비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중폭격은 자칫 감행할 경우 몸이 산산조각 날 수도 있는 위험한 동작입니다. 새도 기본적으로 물밖에서 숨쉬는 동물인만큼 익사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죠. 하지만, 흰부비새의 탄탄한 근육은 이론상으로 폭격시 시속 288㎞의 하강속도에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돼있습니다. 또 하나 생존의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콧구멍입니다. 이 새의 부리를 보면, 여느 새들의 부리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있어요. 바로 콧구멍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흰부비새를 비롯해 부비새, 가마우지, 사다새들의 공통점이기도 하죠. 이 새들의 콧구멍은 부리의 턱부분에 정말 보일랑말랑하게 숨어져있습니다. 이렇게 퇴화되다시피한 콧구멍은 잠수할 때 물이 기도 속으로 들이쳐 호흡곤란을 겪는 일을 애당초 막아주죠.


이렇게 날쌘 폭격비행으로 바다 생태계의 강자처럼 보이지만, 흰부비새 역시 덩치도 세고 힘도 센 다른 포식자들의 한낱 먹잇감일 뿐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한 집안 친척뻘인 사다새입니다. 사다새가 흰부비새의 새끼를 어미 아비새들앞에서 대놓고 사냥해 삼키는 장면을 담은 BBC 어스 동영상입니다.

서식지가 겹치는 두 새, 그러나 덩치와 힘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다보니, 흰부비새 새끼는 사다새가 좋아하는 먹잇감중의 하나입니다. 우악스럽게 흰부비새의 집단서식지를 휘뒤집고 다니면서 어미 새가 보는 눈앞에서 새끼를 포획해가는 모습에서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비정함이 느껴집니다. 뱃속으로 넘어가기전까지 사다새의 부리 안에서 발버둥치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기에 더욱 비극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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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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