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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이슈 미술의 세계

[미술로 보는 세상] '빈산에 사람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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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널리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도 못했다.

조선 후기 화가 최북(崔北. 1712~1786) 얘기다. 중인 출신의 직업 화가였는데, 중인으로서는 드물게 시서화(詩書畵)에 능했다.

한 관리가 그림 그려주기를 강하게 요구하며 위협하자 스스로 자기 눈을 찔러 애꾸가 됐다는 사건과 기타 몇몇 일화 탓에 흔히 기인, 광인 화가로 알려졌지만, 그림에 대한 신념이 매우 강한 천재 화가였다.

여러 가지 호를 사용했는데 '호생관'(毫生館)과 '칠칠'(七七)이 대표적이다. '호생관'은 '붓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칠칠'은 이름의 '북'(北)을 둘로 분리한 것이다.

그의 그림 중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 연도 미상)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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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무인도
개인 소장


제목 그대로 사람이 없다. 텅 빈 산 속에 삘기로 엮은 소박한 정자만이 덩그러니 보인다. 주변의 자연도 특별할 게 없다.

그림 위쪽에 시가 적혀 있으며, 이 시로부터 그림의 제목이 만들어졌다.

'공산무인, 수류화개' (空山無人, 水流花開), '빈산에 사람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어려운 한자가 하나도 없는 여덟 글자는 당송팔대가의 한 명인 송나라 문인 소동파의 시로 알려져 있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겸손을 노래한 시다. 동양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라 할 만하다.

자연은 한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발길이나 손길과 관계없이 늘 그 자리에서 스스로 이치에 따라 '운행'한다.

한편으로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읊은 도가사상을 연상시킨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를 말한다. 존재의 역사를 둘러봐도 인간의 역사는 자연에 비해 짧기 그지없다.

소설가 김훈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통천문암도'(通川門岩圖, 연도 미상)를 본 감상으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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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문암도
간송미술관 소장


"여행에 나선 선비는 관찰자의 입장으로, 겸허함과 두려움에 처해 있다. 이는 도가가 아니라 유가의 모습이다.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고 건너가지 않는다."

이에 견주어 도가의 모습이란, 여행조차 나서지 않으며, 여행하더라도 자연을 대상으로 어떠한 감정도 품지 않는 일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최북은 공산무인도에서 중국 문인의 시를 인용했지만, 자연의 모습은 중국이 아닌 우리 산천을 그렸다. 그도 "조선 사람은 마땅히 조선의 산수를 그려야 한다."며 진경산수화의 사고를 이어받았다.

소동파의 시를 읽고 최북의 그림을 다시 본다.

거칠고 불분명한 먹의 흔적만 보이는가? 적막함을 초월하는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가?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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