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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승만 영문 타자기, 박정희 반려견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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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방 1년, 대통령들 소품展

조선일보

독립운동 시절부터 쓴 이승만 대통령의 영문 타자기,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키웠던 반려견을 스케치한 그림, 김영삼 대통령의 낡은 조깅화….

해방 이후 1948년 경무대라는 이름으로 처음 역사에 등장한 청와대는 작년 5월까지 74년간 12명의 역대 대통령이 거쳐갔다. 대통령이 거주하는 삶의 공간이기도 했던 청와대에 1일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역대 대통령 12인의 물건이 한자리에 모였다. 정부가 청와대 개방 1주년을 기념해 이날부터 8월 28일까지 개최하는 특별 전시 ‘여기 대통령들이 있었다’에서다. 학자와 가족 등 자문을 토대로 역대 대통령의 삶을 압축해 조명할 수 있는 물건들을 전시했다.

전시가 열린 청와대 본관의 세종실과 인왕실엔 12인 코너가 각각 마련됐고 유리 부스 안에 물건들이 전시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 코너의 전시품은 파란색의 낡은 ‘영문 타자기’.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엔 늘 그의 가방에 들어있었고, 대통령이 된 뒤엔 경무대 집무실에 놓였던 타자기로, 신생국가의 대외 전략 수립에 필수품이었다. 1953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때 78세였던 그는 이 타자기를 ‘독수리 타법’으로 쳐 직접 문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그린 강아지 스케치도 눈길을 끈다. 청와대에서 키웠던 반려견 방울이를 연필로 그리고 ‘방울’이라고 이름을 적었다. 군인이 되기 전 교사였던 그는 항상 드로잉 수첩을 가지고 다녔고 경부고속도로 계획안을 직접 그리기도 했다. 스피츠종인 방울이는 박 전 대통령 서거 후에도 본관 침실 문이 열리면 주인인 줄 알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갔다고 한다.

최규하 전 대통령 코너엔 검소함을 보여주는 ‘연탄 난로’가 전시됐다. 1979년 국무총리 시절 강원도 탄광에 가서 “여러분이 캔 탄을 애정을 갖고 끝까지 때겠다” 했는데 퇴임 이후에도 이 약속을 지켜 연탄 보일러를 땠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선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의 스포츠 사랑은 남달랐다”고 조명하며, 그가 서명한 축구공을 전시했다. 그는 대구공고를 다니던 시절 축구부 골키퍼였고 육사 축구부 주장이었다. 스포츠 활성화에 나서 그의 집권 당시 프로야구, 프로축구 리그가 출범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물품은 ‘퉁소’였다.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그는 퉁소 연주가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퉁소는 일곱 살 때 여읜 부친의 유품으로, 퉁소 연주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었다. 서울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했던 굴렁쇠도 함께 전시됐다. 군데군데 헐어버린 ‘조깅화’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소장품이었다. 청와대에서 새벽 조깅을 하곤 했던 그는 조깅을 하며 주요 정책을 결단했다.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했던 날엔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물품으로는 ‘원예 가위’가 나왔다. 1980년 신군부에 체포된 그는 독서와 꽃 가꾸기로 감옥 생활을 견뎠다. 그가 IMF 극복을 위한 조언을 구한 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삼성 휴대전화기도 등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74년 사법시험 준비 시절 누워서도 책을 볼 수 있게 만든 ‘개량 독서대’도 있었다. 이 독서대는 실용신안 특허를 받았다. 청와대 본관까지 자전거로 출근하기도 했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전거 헬멧’,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 완공식에서 기념 식수를 할 때 썼던 삽, 문재인 전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으로부터 선물 받은 앤디 워홀 판화 작품 ‘시베리아 호랑이’ 등도 전시됐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대통령들의 상징적인 소품을 통해 권력의 정상에서 고뇌하고 결단을 내리던 순간들을 보여줄 수 있도록 전시를 준비했다”고 했다. 과오를 미화한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그런 지적이 있을 수 있으나, 대통령의 공과를 다루는 기존의 전시 방식을 벗어나 스토리텔링을 통해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 대통령들을 접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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