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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연기보다 깜깜한 전기차 화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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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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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요즘 ‘전기차 이슈’라고 하면 화재를 빼놓을 수 없다. 구조상 배터리 열폭주 현상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아 화재 진압이 어렵고 피해 규모도 커 세간의 주목도가 높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불이 났다는 소식은 많아도, 왜 불이 났고 어떤 후속 조치가 이뤄졌다는 내용이 전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때로는 전기차 화재 사건이 현장을 메우는 검은 연기보다 깜깜하단 생각이 들곤 한다.

하나씩 짚어보자. 우선 전기차 화재는 ‘비정상’이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전기차는 전동화 부품 비중이 높고 전기적 문제는 어디서든 화재로 이어지기 쉽다. 무엇보다 전기차는 휘발유만큼이나 불에 취약하면서 불길의 좋은 ‘영양 공급원’인 배터리도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기차 화재를 100% 막는 일은 앞으로도 어려울지 모른다. 지금 당장은 전기차와 배터리 제조 업계가 화재를 미연에 방지하고 피해는 최소화하는 연구에서 하루 빨리 좋은 성과를 가져오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화재 내성이 뛰어난 배터리 기술 연구는 지금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외부 충격에 취약한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바꾼 전고체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모두 몇년 후의 얘기다. 지금은 화재의 앞과 뒤에도 주목해야 한다. 불이 난 사실이 대중의 이목을 끌 순 있어도 양양가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고에만 이목이 집중될수록 ‘전기차는 불이 잘 난다’는 오해만 늘어갈 뿐이다. 실제로 소방청이 조사한 2022년 통계에 따르면 당해 내연기관차 화재 발생 비율은 0.019%, 전기차는 0.011%로 집계됐다. 화재 건수가 아니라 보급 대수와 화재 비중을 보면 오히려 전기차가 더 안전하단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 운전자와 내연기관차 운전자 간 갈등은 커지고 있다. 공동주택에서 전기차 충전소 설치 문제는 어느덧 입주민 간 첨예한 대립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관련해 기자와 만난 업계 관계자는 “요즘 전기차 주차를 금지하는 아파트도 있고, 지하 주차장뿐인 신축 건물에 지상 도로를 주차장으로 용도 변경해 충전기를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등 시민들 사이에서 공포 심리가 만연한 상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는 전기차 시대를 맞아 전기차와 충전기 보급을 적극 확대하겠다고 연일 말하지만 그것이 더 많은 지역사회 갈등을 만들고 있다면 참 아이러니다.

공포를 키우는 건 대부분 ‘무지’다. 사람은 잘 모르는 일에 막연한 불안 혹은 우려를 느끼며 회피하려 한다. 자연스러운 생존본능이다. 그리고 이 같은 공포를 해소하는 열쇠 중 하나는 ‘지식’이다.

예컨대 고대와 달리 일식의 원리가 널리 알려진 지금은 누구도 해가 어두워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회적 혼란도 없다. 또 일본 국민들은 지진이 잦은 나라에 살면서 지진에 그 어떤 나라보다 의연하게 대처한다. 지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대처법에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화재도 비슷한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화재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왜 불이 났는지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져야 한다. 원인 조사가 수주일 이상 걸린다고 해도 결과가 나오면 정부든 기업이든 이를 국민들에게 공표해야 한다. 그렇게 전기차 화재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가 쌓여야 불필요한 오해가 줄고, 대응 방안도 더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깜깜이’다. 전기차 제조사, 배터리 제조사, 충전기 사업자 등 모두가 화재 원인에 대해선 쉬쉬하려 한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

취재 중 행태를 살펴보면 충전기 업체는 “충전기에선 불이 거의 안 난다”고 말하고, 배터리 업체는 “충전기에서 불이 나는 경우도 많다”고 말하곤 한다. 화재 직후 민관에서 면밀한 조사에 나서지만 결과는 대부분 기업과 정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만 돈다. 그들은 어떤 원인과 결과도 사업이나 주가, 평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결국 지금 원인조차 잘 드러나지 않는 전기차 화재는 차주가 대부분의 비난과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전기차를 열심히 판 업체나 이해관계사들은 입을 닫는다. 그 사이에서 늘어가는 건 서로 간의 불필요한 오해다. 오해가 편견이 되고 편견은 갈등으로 비화된다. 모두들 전기차 시대가 온다, 관련 산업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당면한 화재 문제를 사회적 이해와 합의, 공동의 해결 과제로 만드는 일에는 고개를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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