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日, 美에 원폭 사과 요구했다? 일부 보도 팩트체크 해보니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원문보기

日, 美에 원폭 사과 요구했다? 일부 보도 팩트체크 해보니

서울맑음 / -3.9 °
전문가들 “거꾸로 해석이거나
반일 선동 위한 악의적 오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부터)이 19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의 일환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해 원폭 희생자들을 위한 헌화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부터)이 19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의 일환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해 원폭 희생자들을 위한 헌화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참상이 기록된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을 방문하자 일각에선 “일본이 미국에 원폭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원폭 피해 부각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MBC는 “일본은 자신들도 ‘2차대전의 피해자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분위기” “일 우익 진영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에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히로시마 한 방송사’나 산케이신문, ‘일 원로 정치인’ 등의 입장이라며 이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히로시마에 집중된 상황에서 일본은 원폭의 피해자였다는 점을 성공적으로 부각시켰다”면서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은 최대한 가리고 덮으려는 외교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했다.

지난 19일 MBC 보도 장면.

지난 19일 MBC 보도 장면.


하지만 미·일 정부 공식 발표문 등에 따르면, 일본은 이번 평화기념자료관 방문 등 G7 정상회의 기간 미측에 78년 원폭 피해 관련 사과 요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시다 후미오 일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과 양자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과거 원폭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도 회담 외 다른 자리에도 관련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일본 전문가인 조진구 경남대 교수는 “일본이 미국에 원폭 사과를 요구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면서 “일본 일각의 목소리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의 정치와 일본·미국 양국 동맹의 발전사, 또는 2차 세계대전의 배경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원폭 사과’ 관련 이슈를 무리해서 띄우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전문가 조진구 경남대 교수. /경남대 제공

일본 전문가 조진구 경남대 교수. /경남대 제공

미 대통령의 원폭 피폭지 관련 시설 방문은 이번 바이든 대통령이 처음도 아니다. 7년 전인 2016년 5월 27일 당시 G7정상회의도 일본에서 열렸는데,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회의를 마치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히로시마를 미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찾았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번 바이든 대통령처럼 원폭 관련 사죄 입장을 내지 않고, 평화기념사료관을 시찰하고 원폭사몰자위령비(原爆死沒者慰靈碑)에 헌화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원폭에 의해 일본인만이 아니라 한국인과 미국인 포로도 희생되었다고 언급했으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핵전쟁의 여명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도덕적 각성의 시작으로 알려진 미래”라면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용기를 강조했었다. 연설을 마친 오바마 대통령은 8살 때 피폭된 모리 시게아키씨를 껴안고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기도 했다.


2017년 5월 27일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피폭지인 히로시마의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에서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한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7년 5월 27일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피폭지인 히로시마의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에서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한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미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일본의 사과 요구 계기’로 연결 짓는 것은 실제 의도에서 벗어난 해석이라는 지적이다. 외교 소식통은 “미 대통령이 피폭지를 찾는 것은 당시 적대국인 일본에 전쟁과 관련해 사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도적 차원의 위로를 바탕으로 적대국에서 최대 우방으로 전환된 양국 동맹을 확대 발전시키자는 미래지향적 정치 행보”라고 말했다. 일본 내 ‘사과 요구’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를 확대 해석 보도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 국민의 미일 정세 해석을 오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6년 12월 26일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하와이 진주만에서 연설하고 있다. 바락 오바마 대통령이 두 손을 모으고 연설을 듣고 있다. 아베 총리는 당시 연설에서 하와이 진주만에 대한 일본의 공격으로 2400여 명의 미국인이 숨진 데 대해 애도를 표했다. 미 백악관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연설에서 전쟁의 참화를 결코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voa

2016년 12월 26일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하와이 진주만에서 연설하고 있다. 바락 오바마 대통령이 두 손을 모으고 연설을 듣고 있다. 아베 총리는 당시 연설에서 하와이 진주만에 대한 일본의 공격으로 2400여 명의 미국인이 숨진 데 대해 애도를 표했다. 미 백악관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연설에서 전쟁의 참화를 결코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voa


전직 외교부 차관은 “일본은 현재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 ‘올 인’하는 것”이라면서 “그런 일본이 자국 내에서도 과거 전쟁을 벌인 것에 대해 반성하자는 공기(空氣)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데, 이에 역행하는 사과를 요구한다는 건 상황을 정 반대로 읽는 것이거나 반일(反日) 선동을 하려는 악의적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 12월 26일(현지 시각)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하와이 주에 진주만을 방문, 2001년 하와이 주에서 발생한 에히메(愛媛)현립 우와지마(宇和島) 수산고 실습선 에히메마루호 침몰사고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헌화하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AP 연합뉴스

2016년 12월 26일(현지 시각)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하와이 주에 진주만을 방문, 2001년 하와이 주에서 발생한 에히메(愛媛)현립 우와지마(宇和島) 수산고 실습선 에히메마루호 침몰사고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헌화하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AP 연합뉴스


조 교수는 “오바마의 피폭지 방문지 이후 아베가 어디를 갔는지를 알면 양국 관계가 어떤 건지 분명해진다”면서 “아베는 7개월 뒤인 12월 27일 1941년 12월 일본의 기습 공격으로 침몰한 미 전함 애리조나 위에 건립된 하와이 진주만의 기념관을 방문해 헌화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시다 일 총리도 수개월 내에 진주만을 재방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평화기념자료관 방문도 서로 전쟁을 벌이던 미·일 두 나라가 서로에 대한 아픔을 감싸며 앞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취지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가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가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기시다 총리는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했다.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중 강제징용 한국인 피해자도 포함돼 있다. 한일 양국 정상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직 주일 대사는 “기시다 총리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강제징용 한국인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의미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정상이 한일 관계의 가슴 아픈 과거를 직시하고 치유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건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긍정 신호”라고 말했다.

[노석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