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그간 ‘IAEA 못 믿겠다’ 정쟁화
정부, 日에 ‘오염수 특단대책’ 요구
라파엘 그로시(왼쪽)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지난해 5월 일본 후쿠시마현 오쿠마에 있는 다이치 원자력발전소를 시찰하는 모습. IAEA는 10국 이상의 국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일본 정부의 원전 오염 처리수 배출 계획의 안전성을 검토해 왔다. /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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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 처리수 방류에 관한 ‘공동 검증’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5일 알려졌다. 오염수 처리 과정을 검증 중인 국제원자력기구(IAEA)와는 별도로 정부가 일본에 대표단을 파견해 한일 양자 차원의 조사와 검증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특정 국가에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공동 검증을 허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외교 소식통은 5일 “정부가 일본 당국과의 과학 조사 협의를 위해 범부처 실무자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현지에 파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방일(訪日) 시기는 이달 7~8일 예정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방한 직후가 유력하다. 대표단에는 국무조정실·외교부·해양수산부·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관련 부처의 국·과장급들이 두루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한일이 양자 검증 방법과 협의체 구성 같은 세부 사항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오염 처리수 문제는 7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도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이르면 올해 여름 오염 처리수 방류를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한일 최고위급이 이 문제를 공식 논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AEA가 한국 전문가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외교 당국도 일본과의 협의에서 이 같은 국내 여론을 지속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IAEA는 그동안 TF를 구성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해양 배출 계획의 안전성을 검토해 왔다. 여기에는 IAEA 사무국 직원과 한국을 비롯한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 등 11국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정부 대표단 파견을 계기로 공동 검증이 실제로 이뤄지면 한국은 IAEA와는 별도의 트랙으로 이 문제에 대해 검증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된다. IAEA는 지난해 4월부터 5차례 중간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현재까지는 일본 당국의 관리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다.
◇ 한국, IAEA와 별도 검증하는 유일한 나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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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은 5일 “IAEA가 국제 검증단을 구성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과학적 검증을 맡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윤 대통령은 해양 방류를 전제한 IAEA의 검증 결과만을 기다리며 국민 안전과 대한민국 바다, 수산업을 벼랑 끝에 내몰 생각인가”라고 비판했다. “IAEA의 검증이 과학적이라고 믿는 것이 선동이고 괴담”이라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일본이 IAEA 기준에 맞는 절차를 따른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정의용 외교부 장관)고 했는데, 정권 교체 뒤 입장이 180도 바뀐 것이다.
야당은 일본이 IAEA에 상당한 분담금을 내고 있는 것을 이유로 들며 ‘독립적 국제 공조 기구’를 통한 검증이나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제소를 통한 방류 저지 등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ITLOS 제소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내부 검토를 했지만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은 이를 야당의 정치 쟁점화나 ‘괴담 선동’이라 규정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대응 방법과 수위를 고민해 왔다. 여권 관계자는 “국민 건강과 직결된 민감한 사안이라 내년 총선에서 불리한 이슈로 작용할 수 있고, 실제로 어업 종사자가 많은 부산·경남에서 민심이 악화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여당은 2일 ‘우리 바다 지키기 검증 TF’를 발족해 “과학적 사실과 명확한 팩트에 기반한 국민 건강 안전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 등도 이런 여론을 감안해 일본과의 협의 때마다 전향적인 조치를 요구해 왔고, 결국 한일 양국이 ‘공동 검증’이라는 특단의 대책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에선 중국·독일 등이 일본에 검증과 관련해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지만, IAEA와 별개인 검증에 합의한 사례는 현재까지 없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달 일본을 방문해 도쿄전력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이원영의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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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문제는 외교·감정이 아닌 과학의 문제”라며 “현미경 검증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치권이 괴담을 퍼뜨리고 정쟁화에 몰두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당 TF에 참여하는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IAEA 조사 결과는 과학에 근거한 결과라 신뢰해야 한다”며 “과학적 사실을 먼저 보고 국민 감정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강건욱 서울대 의학연구원 방사선의학연구소장도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년간 정화 처리가 되지 않은 방류수가 바다에 흘러갔지만, 태평양 해류를 돌며 모두 정화돼 우리 해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했다. 강 소장은 “지금 중국 원전은 삼중수소(방사성 물질) 농도가 일본의 10배나 되는 방류수를 서해에 내보내지만 우리나라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TF 위원장인 성일종 의원은 “우리가 일본 입장을 두둔할 필요가 없지만, 일본이 과학적 기준과 국제법을 지켰는데도 이를 외교·정치 문제로 비화하면 국익에 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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