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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1조원 배상 합의로… 美 ‘언론자유의 보루’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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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뉴스Q] 폭스뉴스 ‘대선 개표기 조작’ 보도

역대 최고 명예훼손 소송의 이면

조선일보

폭스뉴스를 비난하는 시위대가 25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의 폭스뉴스 본사 앞에서 ‘폭스=공화당TV’ 등 팻말을 들고 집회를 열고 있다. 앞서 폭스뉴스는 2020년 미국 대선에서 개표기 조작이 있었다는 가짜 뉴스를 보도해 투·개표기 제조업체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에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고, 이 업체에 약 1조원을 물어주기로 지난 18일 합의했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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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미국 대선 당시 거짓 뉴스를 보도한 폭스뉴스가 지난 18일(현지 시각) 약 1조원을 합의금으로 지급하기로 한 결정을 두고 후폭풍이 확산하고 있다. 폭스뉴스는 당시 대선 개표가 조작됐다는 거짓뉴스를 반복적으로 보도했다가 투·개표기 제조 업체 ‘도미니언’에 소송당했고, 결국 판결 전 막대한 배상금 지급에 합의했다. 명예훼손 관련 가장 큰 합의금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절대 가치로 신봉하는 미국에선 이번 결정이 언론사의 자유로운 보도를 제약할 전례로 남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대로 폭스가 소송을 끝까지 끌고 가지 않음으로써 보도와 관련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판례를 남기지 않은 것을 오히려 ‘언론 자유의 승리’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 주요 언론은 이번 소송이 미국의 건국 정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호해온 ‘방어벽’이 무너질 뻔한 큰 사건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폭스뉴스 배상의 역사적 배경과 남은 쟁점을 ‘글로벌 뉴스Q’에서 점검했다.

◇쟁점 1: 60년 된 ‘설리번 판결’이 재소환된 이유는

폭스사(社)의 결정은 미 수정 헌법 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국가의 최우선 가치로 삼는 미국에서 언론 보도 관련 재판이 거액 합의금으로 마무리된 이례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한편에선 폭스의 합의가 결과적으론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재판을 끝까지 끌고 가 폭스가 유죄판결을 받고 배상금을 물어줘야 할 경우 언론 자유를 보호하는 데 기여한 1964년 ‘뉴욕타임스(NYT) 대 설리번’ 판결(이하 ‘설리번 판결’)을 뒤집는 새로운 판례로 기록될 위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폭스뉴스 로고와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의 미니어처 투표 기기/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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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번 판결’은 미 수정 헌법 1조와 함께 언론 역사상 매우 중요한 결정 중 하나로 꼽힌다. 1960년 NYT는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지지하는 흑인 인권 단체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경찰을 비판하는 전면 광고를 실었다. 광고엔 킹 목사의 체포 횟수 등 틀리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었다. 당시 몽고메리시 경찰서장 L.B. 설리번이 NYT에 3억달러대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1심에서 앨라배마 법원은 설리번의 손을 들어주며 NYT에 50만달러를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고, 앨라배마주 대법원도 인용(認容)했다.

그러나 1964년 미 연방 대법원은 앨라배마 법원의 판결이 수정 헌법 제1조를 위반했다며 9대0 만장일치로 NYT 손을 들어줬다. 당시 판결문은 언론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한 상징적 표현으로 유명하다. “오류가 있는 표현은 자유로운 토론을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 이러한 오류는 표현의 자유에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보호해야 한다.”

◇쟁점 2: ‘실질적 악의’ 조항, 언론의 ‘프리 패스’?

설리번 판결의 핵심은 여기에 처음 도입된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라는 개념이다. 공인에 대한 비판적 보도, 나아가 오보로 명예를 훼손당하지 않도록 언론사를 광범위하게 보호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실질적 악의’란 언론사가 보도 내용이 허위임을 미리 알았거나, 허위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사실을 원고가 밝혀내야 한다는 개념이다. 언론사 내부 인사들의 대화 내용 등을 입수해야 하기 때문에 ‘의도성’을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폭스뉴스 사건의 경우 이례적으로 재판부가 내부 인사들의 문자·이메일 등을 공개하도록 명령했다. 때문에 ‘실질적 악의’가 어느 정도 증명된 상태였다. 소송이 계속됐다면 폭스가 패배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폭스는 어쩔 수 없이 합의금 지급을 결정해 결과적으로 판례가 뒤집어지는 일이 없었다. NYT는 “재판이 대법원까지 갔다면 ‘실질적 악의’ 조항이 언론에 과도한 자유를 준다는 논의로 이어지고 결국 설리번 판결을 뒤집는 판례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결국 합의로 사건이 일단락됐다”며 “폭스뉴스 사건은 때로는 나쁜 팩트가 좋은 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됨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쟁점 3: 설리번 판결에 대한 염증 확산 계속될 듯

미 언론들이 ‘설리번 판결’ 무효화를 우려하는 이유는 최근 미 사법부에서 이 판결을 수정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법관인 클래런스 토머스, 닐 고서치 등이 최근 설리번 판결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왔다. 특히 토머스 대법관은 “설리번 판결과 이 판례에 따른 재판 결과는 헌법의 탈을 쓴 정치적 결정일 뿐”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이 법을 싫어한다고 알려졌다.

이번에 도미니언 변호를 맡은 엘리자베스 로크 변호사도 설리번 판결을 뒤집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대표적 인사다. 그는 폭스의 합의금 지급 결정 직후 “폭스뉴스 건은 미 언론이 거짓 뉴스 보도를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지를 드러냈다. 대법원이 설리번 판결을 뒤집을 때가 됐다는 뜻”이라고 했다. NYT는 “설리번 판결의 뿌리는 영국 왕(王)에 대한 비판에 과도한 명예훼손 배상금을 부과한 영국에 대한 미 건국자들의 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하지만 이 판결이 거짓 뉴스에 면죄부를 준다는 불만이 커지면서 판결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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