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임 머신(캐시 오닐 지음, 흐름출판 펴냄)
좌절·불안·자기혐오 기반한 수치심
외모·인종·빈곤·정치적 성향 등서
낙인·마녀사냥 통해 확대 재생산
정부·기업은 통치·이윤 도구로 이용
존엄성 지키고 계급구조 탈피하려면
권력자들이 만든 틀 안서 벗어나야
수치심은 역사적으로 권력자들의 통치 도구로 이용돼 왔다. 고대 중국에서는 묵형(墨刑)을 시행했는데, 범죄자의 얼굴 등에 죄명을 새겨 넣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서양에서도 낙인 등을 통해 범죄자나 노예에게 징표를 남겨 수치심을 부여했다. 이를 본 피지배민들은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권력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묵형과 낙인 등 비인간적인 형벌은 사라졌지만, 수치심과 혐오의 양상은 더욱 거세졌다. 소셜미디어와 플랫폼, 알고리즘을 통해 혐오는 더욱 빨리 퍼져나가고 확대되고 재생산된다. 혐오의 범위 또한 늘어났다. 범죄자를 넘어서 젠더·인종·정치적 입장·가난에 대한 혐오가 더욱 잘 드러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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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셰임 머신’은 권력자들이 이러한 불안감·자기혐오에 기반한 수치심을 이용해 제도적·상업적 이윤을 취하는 시스템을 ‘수치심 머신’이라고 칭한다. 저자는 “수치심을 노리는 사업 기회는 늘 넘쳐흐른다”며 “자신의 어떤 점이 불만인지, 어떻게 하면 자기혐오가 줄어드는지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다이어트 사업모형을 예로 들며 “실패는 사업모형의 핵심으로, 수치심에 빠져 자기혐오를 반복하는 고객으로부터 이윤을 취한다”고 폭로한다.
이는 사업가 뿐 아니라 현대 권력자들도 마찬가지다. 기관과 정부는 약물 중독자들에게 낙인을 찍어 이들을 사회로 복귀하기 어렵게 만든다. 빈곤 정책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공공정책 중 상당수는 가난의 원인을 게으름에서 찾는다. 공무원들은 실업수당 신청자를 잠재적 사기꾼으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결국 이들의 사회적 갱생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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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혐오 문화가 만연해 있다. 디지털 업계는 온라인에서의 조롱을 바탕으로 트래픽을 창출해 이윤을 만들어낸다. 알고리즘은 이를 더욱 강화시키고, 사회적 집단의 분열을 야기한다. 자유라는 명목 하에 이뤄지는 혐오 표현들은 대부분 취약 계층을 향해 이뤄진다는 데에서 더욱 문제가 크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치심 머신을 없애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대신 수치심 머신을 역이용해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대중이 아닌 권력자에게 수치심을 줘 파급력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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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이러한 양상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란 원리주의를 뒤흔들고 있는 히잡 시위와 미투 운동,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등이 그 대표적 예시다. 책은 미투 운동의 예를 들며 “승승장구한 권력층 남성들이 마침내 본인의 행동에 책임져야 할 때가 왔다”며 “미투 운동으로 여성들은 권력층 범죄자들을 수치스럽게 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극단적 갈등이 퍼져 있는 사회 속에서 약자끼리의 비난과 혐오는 아무런 긍정적 효과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틀 안에 예속될 뿐이다.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또 계급 구조의 감옥을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수치심 머신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그 방향을 뒤바꿔야 할 것이다. 1만 8500원.
한순천 기자 soon100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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