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원, 국립5·18민주묘지서 참배…전두환 일가 중 처음
고(故)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씨가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했다.
전씨는 31일 오전 광주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5·18 단체장과 유족, 공로자 등을 만난 직후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았다. 그는 김범태 국립5·18 민주묘지 관리소장의 안내를 받아 방명록을 작성하고 충혼탑 앞에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전씨는 방명록에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 계신 모든 분들이다"라고 썼다.
이어 전씨는 5·18 최초 희생자인 김경철 열사와 공식 사망자 중 가장 어린 전재수군 묘소를 참배했다. 전재수군은 사망당시 11세로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전씨는 김 열사와 전군 묘소에 들러 입고 온 검은 코트를 벗어 묘비석을 닦고 묵념했다.
이어 문재학 열사의 모친 김길자 여사가 전씨를 아들의 묘역 앞으로 안내했다. 김 여사는 "여기 있는 우리 아들을 너희 할아버지가 죽였다 이 어린 학생이 무슨 죄가 있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학아 전두환 손자가 와서 사과한단다"고 말했다.
전씨는 묘소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 코트를 벗어 문재학 열사의 묘비를 닦고 묵념했다. 김 여사는 묵념을 마친 전씨에게 "그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 와서 사과한다니 마음이 풀린다"며 "위로받았고 광주를 올 때 얼마나 마음속으로 두려웠겠어"라고 말했다.
참배를 마친 전씨는 취재진과 만나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고 창피하다"며 "이제 오니 죄가 뚜렷이 보이고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이어 "앞으로도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27)가 오월 영령에 참배하고 있다./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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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다시 한번 전 씨를 안아주며 "내 아들 안은 것 같이 안아주겠다. 진심으로 고맙고 너무 너무 고맙다"며 전씨의 등을 토닥였다.
앞서 이날 오전 전씨는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저의 할아버지 전두환씨는 5·18 앞에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죄인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오래 아픔의 역사를 겪었음에도 전두환씨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꾸로 흐르게 했다"고 밝혔다.
전씨는 또 "군부독재 두려움 속에서 용기로 독재에 맞섰던 광주시민 여러분들이 영웅"이라며 "저희 가족뿐 아니라 저 또한 너무 추악한 죄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시민 여러분들이 저를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하다. 죽어 마땅한 저에게 이렇게 사죄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사과의 발언을 마친 뒤에는 무릎을 꿇고 절했다.
전씨의 절을 받은 김경철 열사의 어머니 임금단씨(92)는 "오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데 화해의 눈물이며 정말 찾아와줘서 얼마나 힘이 되나"라며 "내 아들이, 하늘이, 땅이 알고 40여 년 동안 살아왔는데 일생을 진실도 못 밝히고 생각만 하면 한이 맺힌다. 진실을 앞장서서 밝혀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철 열사(사망 당시 24세)는 5·18 당시 1980년 5월 18일 옛 도청 앞 금남로에서 계엄군의 곤봉에 맞아 사망한 5·18의 첫 희생자다.
참배를 마친 전씨는 이날 오후 5·18 당시 계엄군이 쏜 총탄 흔적이 남아 있는 전일빌딩과 옛 전남도청을 방문한다.
고(故)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27)씨가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참배를 마친 뒤 문재학군 모친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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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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