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유가족 여러분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이 사건으로 정신적 피해를 본 모든 분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전우원씨가 광주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한 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와 인사하고 있다. 2023.3.29 연합뉴스 5·18민주묘지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가 5·18 희생자의 묘를 참배하고 있다. 2020.5.29 노재헌 씨 측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전두환(오른쪽) 전 대통령이 1996년 12·12 및 5·18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 노태우 전 대통령과 출석한 모습.1996.9.2.서울신문 DB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고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27)씨가 29일 광주를 찾았다. 전날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힌 그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 38시간 조사를 마치고 약속대로 광주로 향했다.
전우원씨는 입국 당시 “마음 다치신 분들에게 사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혜택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고, 5·18 단체는 “격하게 환영한다. 당당하게 용기를 잃지 말고 5·18 영령들과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달라”며 그의 손을 잡았다. 전씨는 고개를 숙이고 “감사하다”고 답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자 전두환심판국민행동의 상임고문 전태삼씨는 “지나간 잘못을 참회하고, 뉘우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를 고대했다. 응원하고 함께할 것이니 역사를 바로 세우고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전우원씨는 이날 ‘5월 광주 학살’을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5·18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추모승화공간으을 방문한 뒤, 낮 12시쯤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오월영령들에 참배할 예정이다.
5·18 당사자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 전두환(가운데)씨가 지난해 8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 출석해 25분 만에 건강 이상을 호소하며 퇴청하는 모습.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할아버지 전두환의 수많은 과오
전두환씨는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사건 재판의 피의자로서 반성은 물론 진실 고백도 거부했다. 또한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19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한 참회나 사죄도 하지 않았다. 언론 탄압을 비롯해 삼청교육대, 부산형제복지원 사건 등 민주주의 말살, 인권유린, 노동운동 탄압, 간첩단 조작 사건,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 등 수많은 과오에 대해 유감의 표시조차 없었다.
그는 1996년 군사반란 수괴죄, 반란 모의 참여죄, 내란 목적 살인죄 등으로 사형이 선고돼 헌정 질서 파괴와 무고한 시민 학살에 대한 법적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정치적 고려에 의한 대통령 사면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사면이 죄에 대한 판결을 없애는 것이 아님에도 광주의 피해자들과 국민들 앞에 한마디 반성도 참회도 없었다. 숨을 거둘 때까지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전 재산 29만원’을 운운하며 전체 2205억원의 추징금 중 956억원의 미납금을 남기고 갔다. 세금 체납액도 9억 7000만원에 이른다.
국가정보원이 5·18 민주화운동 관련 1242쪽 분량의 기록물 22건과 사진 204장을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추가 제출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차륜형 장갑차 사진은 “5·18 최초 발포가 차륜형 장갑차에서 이뤄졌다는 진술 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크다”는 게 진상규명위의 설명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현장에 차륜형 장갑차가 투입된 모습. 국가정보원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노태우 아들 “1000번이라도 사죄”
노 전 대통령이 떠나고 아들 재헌씨가 2019년 이후 여러 차례 광주를 찾아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사죄를 했다. 그는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가족분들에게 사죄드리며,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희생자 묘역에 하얀 국화를 헌화하고 묘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노재헌씨는 “(아버지는) 항상 5·18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부분에 대해 마음 아파하셨다”며 “치유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이제 됐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무릎을 꿇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에 대해 5·18 단체는 “몇 차례 참배가 5·18 학살의 책임을 용서받은 것처럼 평가받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사죄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5·18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만이 그의 죄업을 씻는 최소한의 길”이라는 성명을 냈다.
29일 오전 광주 북구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가 고(故) 이한열 열사의 묘를 참배하고 있다. 2020.5.29 노재헌 씨 측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마약 투약 혐의 관련 조사를 마치고 석방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씨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5·18 관련 단체(부상자회·공로자회) 회원들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2023.3.29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5·18 재단 “안쓰럽고 가슴 먹먹”
조진태 5·18재단 상임이사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죄를 사죄하는 손자의 모습이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며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조 이사는 “전두환은 사죄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지만 전두환의 죄과는 결코 사라지거나 덮어지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역사적 단죄를 받을 것이라고 믿어 왔다”며 “역사적 죗값을 치르지 않은 범죄자 후손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해서 지금 전우원 씨가 바로 적나라하게 입증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그 후손이 또 그런 무거운 죗값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조진태 이사는 “(전우원씨는) 본인이 처벌을 무릅쓰고 귀국까지 했다”며 “전두환 후손이라는 굴레, 그런 부분들을 한 청년이 감당하는 데 굉장히 힘들었겠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안쓰럽다”라며 “매우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해 유족과 피해 당사자 단체 대표들이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고 묘지 참배에 동행해서 전우원씨의 사과, 사죄, 참배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 밀리터리 인사이드
- 저작권자 ⓒ 서울신문사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