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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성필의 언중유향]정몽규 회장이 푼 도덕적 해이 빗장, 수렁에 빠진 축구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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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승부 조작에 무관용 원칙을 앞세워 도덕적 해이 발생을 막겠다던 대한축구협회의 기억 상실증일까.

축구협회는 지난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루과이와 평가전을 앞두고 이사회를 열어 2011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승부 조작 가담자 1백 명에 대한 사면을 의결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면서 축구계 화합, 새 출발을 위해 사면을 건의한 일선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것이 사면 취지다.

당사자인 프로축구연맹은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축구협회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다수 비상근 이사는 안건 자체를 몰랐다는 점에서 축구협회가 왜 무리수를 두면서 사면권을 행사했는지에 물음표가 붙었다.

2013년 8월 축구협회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의결한 승부 조작 가담 선수 징계 경감안을 부결하면서 "승부 조작처럼 도덕적 해이가 재발할 여지를 남기는 것은 절대 불가하다는 것이 축구협회의 입장이다"라고 정리했다. 자신들의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한 것이다.

사면권 행사는 공청회나 토론회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계자들의 의견 청취를 통한 결정이 일반적이지만, 축구협회는 '일선 현장'을 예로 들며 정당한 절차였음을 강조했다. 다른 스포츠 단체는 승부 조작에 대해서는 무관용을 고수하고 있지만, 축구는 무슨 배짱인지 몰라도 사면을 당당하게 시행했다. 우루과이전 기사에 덮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시작 직전 발표하는 무례함도 있었다.

이사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는 "승부 조작에 가담 정도가 깊은 인물들은 빠지지 않았나. 기본적으로 악질적인 일들을 벌인 가담자들에게는 무관용 원칙이 지켜졌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사회 안건에 올라오는 절차적 정당성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는 지적에는 말을 아끼며 "협회에서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으니 이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도 있었다"라며 태평한 반응을 보였다.

'일선 현장'에서 유소년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은 부끄럽다는 반응이다. 프로 출신의 초등학교 감독 A씨는 사견을 전제로 "예전에 승부 조작에 가담했던 선수들을 코치로 채용하되, 정식 대회에는 참가시키지 말라는 제안이 있었다. 하지만, 공정과 상식에 정정당당한 플레이를 가르쳐야 하는 축구인의 관점에서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고 거절했다. 지금 축구협회의 결정은 축구 꿈나무들에게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다"라며 개탄스럽다고 전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물음표를 찍는 의견도 있었다. 한 축구 원로는 "정 회장이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로 환상에 젖어 있다면 오산이다. 그간 수많은 정책 실패에 사과라도 했는가. 참모들을 질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뼈아픈 지적을 잊지 않았다.

실제로 정 회장은 2023 아시안컵 유치 실패,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 위원 낙선 등 외교 참사를 피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사과는 고사하고 대통령실이 주최한 월드컵 16강 진출 기념 만찬에 참석하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운영하는 현대산업개발의 연이은 문제가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를 이해하더라도 축구협회에서 일어난 문제들을 어물쩍 넘어가며 여론이 달래지기를 바랐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사실상 '정심(心)'이 영향을 끼쳤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 절차는 무용지물이었지만, 이 역시 성난 팬심을 달래주는 공식적인 의견이 없었다. 사과 대신 구구절절한 변명으로 매번 넘어가기 다반사였다.

K리그 B구단 고위 관계자는 "축구협회가 사면권을 행사했지만, 승부 조작 관계자들의 명예 회복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기장 출입도 엄격하게 막을 것이다. 무엇보다 축구협회가 사면권 행사 취지로 든 16강 진출과 축구계 화합에 절대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더 냉정하게 따지면 정 회장은 2025년 1월에 임기 만료로 물러난다. 왜 한국 축구의 미래를 흔드는지 이해 불능이다"라고 지적했다. 프로축구연맹이 징계를 풀 생각이 없고 상급 기관인 대한체육회도 사면 규정이 없음을 들어 의결 자체가 무효라 보고 있어 더 그렇다.

축구협회의 퇴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외화내빈이라고 천안에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를 조성하고 월드컵 16강 이상의 성적을 내기 위한 비책 마련에 돌입했다고는 하지만, 행정은 학점으로 따지면 F에 가깝다. 끝 모를 추락을 막을 비책은 정녕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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