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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오타니의 계획표와 클린스만·안익수의 도전 [김창금의 무회전 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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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대표팀의 오타니 쇼헤이.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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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인물’ 같은 야구 천재 오타니 쇼헤이(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일본 대표팀을 세계야구클래식(WBC) 정상에 올리고, 최우수선수상까지 거머쥔 그는 자기관리의 대명사다. 고교 시절부터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단계별 과제를 써넣은 그의 만다라트 계획표는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투수와 타자의 ‘두 길’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그의 재능과 노력이 놀랍지만, “남이 버린 행운”이라며 쓰레기를 줍는 겸허한 자세는 큰 울림을 준다.

오타니의 모습과 대비해 한국 스포츠 문화의 경직성을 생각해 본다. 울리 슈틸리케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최근 외신에서 한반도 분단과 남북대치 상황을 한국 선수들의 공격 시 창의성 부족 요인과 연결해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는 비약이 있지만, 그가 한국 생활을 하면서 지도자들의 경직성이나 수동적인 선수의 자세 등을 느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선수들이 규율과 통제, 결과 중심주의 문화 속에서 성장하면서, 한국 스포츠가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성적을 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스포츠 선수들의 망탈리테(사고방식)는 바뀌고 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 가운데 “외국 감독이 좋다”라며 솔직하게 선호를 드러내는 이도 있다. 이를 ‘건방지다’라고 여긴다면, 그는 구시대 인물을 뜻하는 ‘라떼’ 취급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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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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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의 부임도 외부 충격의 효과를 주고 있다. 그는 사령탑 취임 뒤 대표팀 소집 훈련의 방식을 바꿨다. 기존 오후 훈련을 오전으로 돌렸고, 선수들에게 오후의 자유를 허용했다. “프로는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규정된 시간 엄수 등 최소한의 규범만을 선수들에게 요구한다. 대표팀 감독을 꿈꾸는 국내 축구 지도자들도 선수 관리나 소통 측면에서 한 번쯤 고민해볼 대목이다.

카리스마 강한 안익수 FC서울 감독도 올해 팀 문화를 바꾸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처럼 선수들에게 홈 경기 때 개별 출퇴근하도록 했다. 경기장에 일찍 도착한 선수는 구단이 마련한 라운지에서 쉬다가 라커룸으로 이동한다. 경기 뒤에는 자기 차 타고 귀가한다. FC서울 관계자는 “프로 선수들은 알아서 자기 몸을 준비해야 한다. 정신적으로 편안한 가운데 선수들이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빌드업과 공격, 압박 축구의 모형을 선보였던 서울은 올해는 패스의 강도와 속도, 수비 안정성을 끌어올리면서 시즌 초반 선두권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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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서울의 안익수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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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프로야구 엘지(LG) 트윈스가 시도한 자율야구는 성패 여부를 떠나 국내 스포츠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당시 ‘성선설’에 근거한 ‘자율’과 ‘재미’의 야구가 ‘성악설’에 기초한 ‘강제’와 ‘타율’의 코칭 철학보다 스포츠의 확장성에 더 적합하다는 게 현재 시점에서의 대체적인 평가로 보인다.

스타 선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화산업의 아이돌처럼 빨리빨리 대체될 수 없다. 축구의 손흥민이나 수영의 박태환, 빙상의 이승훈을 보면 그렇다. 슈퍼스타가 오랜 기간 활동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주도적 사고와 생활 습관은 더 중요한 덕목이 돼가고 있다. 갈수록 선수 자원이 줄어드는 환경에서, 오타니의 성취가 더욱 빛나는 이유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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