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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트스위스發 ‘본드런’ 공포 확산…“국내 영향은 제한적”

조선비즈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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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트스위스發 ‘본드런’ 공포 확산…“국내 영향은 제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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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유동성 위기에 휩싸였던 크레디트스위스(CS)가 스위스 최대 금융기관인 UBS에 인수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이번 사태의 충격이 채권시장으로 옮겨 붙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CS가 발행한 일부 채권의 가치가 휴지조각이 되면서 글로벌 채권시장에 불안감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CS발(發) 위기가 ‘본드런’(연쇄 채권매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 코코본드 22兆 하루 아침만에 휴지조각

22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UBS가 CS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160억 스위스프랑(약 22조5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AT1·additional tier 1 bonds) 가치가 순식간에 제로(0)가 됐다.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은 “CS의 채권 가운데 약 22조5000억원 규모 AT1을 모두 상각 처리했다”고 밝혔다.

스위스 최대 금융기관 UBS가 지난 19일(현지시각) 스위스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했다. / 연합뉴스

스위스 최대 금융기관 UBS가 지난 19일(현지시각) 스위스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했다. / 연합뉴스



일명 ‘코코본드’라고 불리는 AT1은 금융회사나 은행이 위기에 처했을 때 투자자 동의 없이 상각하거나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AT1은 채권 중에서 가장 위험한 형태로 분류되며, 일반 채권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공한다. 은행에 문제가 없을 때는 고수익을 보장하지만, 이번처럼 은행이 위험에 처했을 경우 투자자들은 손실을 입게 된다.

다만 그간 관례적으로 채권 투자자에 대한 보호가 주주들보다 우선시됐는데 이번에는 CS의 모둔 주주가 22.48주당 UBS 1주를 받게 된 반면,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채권 가치는 소멸되면서 채권 투자자들이 충격에 빠졌다.

일반적으로 은행이 파산할 때 은행 자본 구조상 코코본드 보유자가 주식 보유자보다 우선권을 갖지만, 이번 합병에서는 CS 주주만 32억3000만달러(약 4조2281억원)를 받게 됐다. 위험자산인 주식은 가치가 인정되고 채권 가치는 휴지조각이 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UBS가 CS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160억 스위스프랑(약 22조5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AT1·additional tier 1 bonds) 가치가 순식간에 제로(0)가 됐다. /연합뉴스

UBS가 CS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160억 스위스프랑(약 22조5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AT1·additional tier 1 bonds) 가치가 순식간에 제로(0)가 됐다. /연합뉴스



◇ 뱅크런 이어 본드런 우려 부상

CS의 코코본드를 대량 보유한 글로벌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들도 이번 상각으로 타격을 받으면서 글로벌 채권시장이 충격에 빠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핌코, 인베스코, 라자드 프레르, GAM 인베스트먼트 등이 CS 코코본드에 투자한 상태다.


이영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번 AT1 상각 사태는 고요했던 AT1 시장을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당연히 유럽 AT1 시장에서 나타나겠지만, 전 세계 AT1 시장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에 상각된 AT1 규모는 유럽 AT1 시장 역사상 최대 수준이다. 앞서 2017년에도 스페인 포풀라르 은행이 산탄데르에 인수되면서 13억5000만 유로(약 1조8900억원) 규모의 AT1이 상각된 바 있다. 이번에 상각된 AT1 규모는 포풀라르 은행의 10배가 넘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 세계 AT1 시장 규모는 2750억달러(약 357조8850억원)에 달한다. 이번 사태로 AT1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AT1의 대량 투매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채권시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번 사태로 AT1과 같은 유형의 채권에 대한 수요는 점차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영주 연구원은 “AT1 같은 위험 채권, 일명 하이일드 채권 시장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고위험군 회사에 대한 투자는 더 빠르게 축소될 수 있다”고 했다.

DS투자증권에 따르면 실제 지난 9일 SVB가 파산한 이후 미국과 유럽의 고수익 채권 투자 심리를 보여주는 하이일드 스프레드(투기등급 이하 채권 수익률에서 국채 수익률을 차감한 지표)는 각각 92bp, 143bp로 확대됐다. 이들 기업의 조달 금리는 현재 8~9% 대로 높은 수준이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올림픽파크포레온)의 모습. /뉴스1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올림픽파크포레온)의 모습. /뉴스1



◇ “韓 직접 피해는 적지만, 심리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한편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는 코코본드를 비롯한 신종자본증권 발행량 자체가 선진국에 비해 적고 국내 은행의 건전성과 유동성에 아직 문제가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금융회사들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은 약 5조원 수준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글로벌 채권시장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채권 투자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채권시장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 은행들이 달러로 발행한 코코본드 가격이 하락하고 향후 채권 투자 심리에 소폭 부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AT1 손실로 채권시장 불안이 증폭될 경우 전반적인 발행 여건이 나빠지면서 자금시장이 경색될 수 있다”며 “유동성 위기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문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jaeeu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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