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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쏟아지는 국내 기업 주총 표 대결…‘캐스팅보트’는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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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작년 반대표 행사 16.1%…찬반 경합 땐 ‘쏠림’ 이끌어내기도

소액주주, 전자투표 활발해져…SM엔터 감사 선임 등 유의미한 결과

외국인 표심에 영향력 큰 자문기관…신한지주 회장 선임에 ‘찬성’ 권고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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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집중된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사내외 이사·감사위원 선임, 이익배당 규모 등 다양한 안건을 놓고 주주들 간 찬반 표 대결이 예상된다. 신한금융지주와 KT는 각각 진옥동 회장과 윤경림 대표 내정을 놓고 국민연금과 외국인·소액주주로 편이 나뉘어 힘겨루기 중이다. 또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 제안이 여느 때보다 활발한 가운데 KT&G, 남양유업, 광주신세계, JB금융지주에서도 사측과 일부 주주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회사 경영권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 속에 국민연금, 소액주주, 외국인 중 누가 ‘캐스팅 보트’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 그때그때 다른 국민연금 영향력

국민연금은 주총에서 특정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가 패배한 사례가 적지 않다.

LG화학은 2020년 10월3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배터리 사업부문의 물적분할 안건을 82.3%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당시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결과를 바꾸기에 역부족이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지난해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한 주총 안건을 조사한 결과, 반대표 행사 사례는 전체의 16.1%(265건)로 2년 전(9.2%, 148건)보다 6.9%포인트 상승했다. 하지만 반대 안건이 주총에서 부결로 연결된 비율은 2020년 5.4%(8건)에서 2022년 1.5%(4건)로 감소했다.

찬반 양측이 팽팽하게 경합하는 사안에서는 국민연금이 한쪽으로 쏠림 현상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지난해 3월25일 금호석유화학 내 삼촌과 조카의 주총 표 대결에서 삼촌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완승을 거뒀다. 박 회장은 주총에서 조카이자 금호석유화학 개인 최대주주인 박철완 전 상무와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 이익배당 규모 등을 두고 맞붙었다. 양측 간 지분율 차이는 5% 미만으로 미세했지만 박 회장은 40%포인트 격차로 가뿐하게 승리했다.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6.8% 보유한 국민연금이 박 회장 손을 들어준 영향이 컸다. 국민연금은 “중장기 투자계획 등을 고려할 때 박 회장 측이 낸 이익배당 안건이 더 적정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종종 국민연금이 중립을 지키는 사례도 있다. 2012년 2월13일 하이닉스는 진통 끝에 최태원 SK 회장을 사내이사에 선임했다. 일부에서 최 회장의 사법처리 전력을 들어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었다. 사측은 반도체 사업은 굉장히 치열한 영역으로 대규모 투자와 대주주의 적극적인 육성 의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들어 최 회장 선임을 주장했다. 당시 표결 결과 주주 출석 대비 찬성 61.81%와 반대 38.19%로 나뉘었는데, 하이닉스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지분 9.15%)은 중립 의견을 냈다. 중립은 의결정족수에는 포함되지만 출석주주들의 의결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행사 방식이다.

■ 점점 힘 커지는 소액주주

그간 주총에서 소액주주의 반란은 무산된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31일 SM엔터테인먼트 주총에서 소액주주가 최대 주주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일이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열린 주총에서 소액주주가 추천한 곽준호 감사 선임안이 가결된 것이다. 이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에 일감을 몰아줘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며 곽 감사 선임을 주장했고, 이 같은 논리가 다수의 주주를 설득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올해에도 소액주주 활동이 뜨거워지면서 전자투표 참여가 늘고 있다. 금융업계는 이달 정기 주총에서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기업 수가 2010년 전자투표제 도입 이래 가장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자투표제란 주주들이 PC나 스마트폰 등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온라인 투표다. 현재 기업들에 전자투표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예탁결제원과 삼성증권이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올해 전자투표제 도입을 위해 서비스 계약을 맺은 기업 수는 820곳으로 지난해(640곳)보다 크게 증가했다. KT의 경우 소액주주들이 집단으로 온라인 카페를 개설하고 사측이 제시한 안건에 전자투표 찬성 인증샷을 올리는 등 참여가 활발하다.

■ 의결권 자문기관 영향받는 외국인

외국인 표심에는 글로벌 주주 의결권 자문기관들이 영향력을 행사한다.

2019년 3월27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조 회장은 1999년 대한항공 수장이 된 지 20년 만에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해당 안건은 64.1%가 찬성했고, 35.9%가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대한항공은 정관에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66.6%)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표 대결에 앞서 세계 최대 자문사인 ISS가 조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반대를 권고한 게 결정적이었다. 그 여파로 플로리다연금 등 해외 연기금 3곳이 조 회장의 편을 들지 않고 돌아섰다.

최근 ISS는 신한금융지주 주주총회를 앞두고 진옥동 회장 선임 안건에 찬성을 권고했다. ISS는 “진 후보는 신한금융의 리스크 관리를 개선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며 “라임펀드 사건과 관련된 고객 보상과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 고위험 상품 판매 관련 직원의 핵심성과지표(KPI) 개편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진 후보가 내정되자 “기업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는 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반대를 공표한 국민연금의 행보와 다른 모습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신한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이 62.77%에 달해 이들이 ISS 의견을 참고한다면 진 회장이 선임되는 데 큰 지장이 없다고 본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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