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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정재 “노무현 ‘대일 청구권 없다’ 발언” 주장···보수단체 성명문 인용[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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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민의힘 김정재 국회의원(경북 포항 북구)이 1월19일 포항시청 브리핑룸에서 신년 언론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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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윤석열계인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일제 강제동원(징용)과 관련해 “ ‘개인의 청구권은 없다’, ‘일본에 대한 대일 청구권은 없다’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직접 얘기했다”고 한 발언은 사실과 다른 보수단체의 성명문 내용을 인용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강제동원(징용) 피해자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안이 노무현 정부 방식과 유사하다고 여론전을 펼쳤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피해자에게 인도적 차원의 지원금을 지급한 것으로 일본 피고 기업을 대신해 한국이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과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당 관계자들이 노무현 정부의 강제징용 관련 정책을 왜곡 인용하고 있는 셈이다.

김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하면 1965년에 그 당시에 일본이 준 차관 등으로 인해 모든 청구권은 소멸한다라고 이미 결정을 했다”며 “노무현 정부 때 ‘개인의 청구권은 없다’ ‘일본에 대한 대일 청구권은 없다’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직접 얘기했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이 한·일 청구권 협정 취지를 수용해 강제징용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경향신문이 이날 대통령기록관과 언론 보도 등을 확인한 결과 김 의원이 주장하는 노 전 대통령 발언은 찾을 수 없었다. 김 의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노무현 (정부) 때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에 다시 배상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를 인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문장은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던 보수단체인 자유헌정포럼이 지난 7일 발표한 성명문에 나온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노 전 대통령 사례를 들어 윤 대통령의 방일 성과를 옹호했다.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이철규 사무총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2007년 노 전 대통령은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재정으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대위 배상했다”며 “(민주당 논리면) 노무현 대통령도 일본의 하수인이 되나”라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도 KBS라디오에서 “노무현 정부 때도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지만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권을 할 수 없다고 해서 2007년에 6500억원 가량을 강제징용 피해을 당한 분들한테 지급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재단이 국내 기업 출연을 받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이 노 전 대통령 정책과 유사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의 지원은 한국 정부 차원의 위로금이고, 배상금 지급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반박이 나왔다.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인 임재성 변호사는 지난 2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가짜뉴스도 아니고 무식뉴스”라며 “2007년 법률은 인도적 차원에서 위로금 등을 지원하는 것이라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소송의 근거인 손해배상채권을 소멸시키는 대위변제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노 전 대통령의 대일 외교를 설명하며 당시 상황과 맥락을 누락한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 원칙적인 태도를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3·1절 기념사에서 “두 나라 관계 발전에는 일본 정부와 국민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하고 그리고 화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 언론은 “과거 이승만 정부 이후 한·일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배상’이라는 용어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3월7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향후 대일 관계 4대 기조와 5대 대응방향을 담은 새로운 독트린을 발표했다.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정부는 개인 피해자 문제는 인권의 문제로 국가가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박탈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이해찬 전 총리를 중심으로 구성한 ‘한·일회담 문서 공개 민관공동위원회’는 2005년 8월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협정으로 종결됐다’는 일본 측 주장에 대해 처음으로 ‘일본의 법적 책임’을 거론했다. 당시 민관공동위는 “한·일 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이 아니며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4조에 기초한 한·일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백서도 “피해자 개인들이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1975년 대일민간청구권 보상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같은 한국 정부의 노력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2005년 “노무현 정권은 당시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개인 배상문제 등을 새 이슈로 제기할 방침”이라며 “외교 마찰을 각오하고 식민지 지배와 군사독재 등 과거와 씨름하는 한국과 회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일본 사이에 시각차가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은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학살, 40년간에 걸친 수탈과 고문·투옥·강제징용·심지어 ‘위안부’까지 동원했던 범죄의 역사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2006년 4월 특별담화), “너무도 늦었지만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진상조사를 2004년부터 시작했다”(2007년 현충일 기념사)고 밝히며 강제징용 문제에 원칙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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