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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생물학 종에 비유한다면 이미 멸종의 길에 들어섰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한 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78로 떨어졌다. 그중에서도 서울시는 0.59를 기록했다. 두 명이 결혼해 0.5명을 낳는다는 뜻으로, 이렇게 간다면 멸종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고 한다.
조 교수는 “전 세계의 출산율이 다 떨어지는 추세지만, 그럼에도 한국의 출산율이 유독 떨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엄청난 집중”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청년들에게는 인생의 모든 것이 다 경쟁”이라며 “동년배만이 아니라 윗세대와도 계속해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사는 게 중요한가, 후손을 낳는 게 중요할까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도 못 살겠는데 무슨 애를 낳아. 나부터 살아야지’라는 입장이 된다고 했다.
조 교수는 “저는 지금 50세가 넘었는데, 저희 연령대는 대학에 35% 정도만 진학했다”고 말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당시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대부분 취업할 수 있었고, 굳이 서울에 올 필요 없이 지방 거점 국립대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80년대생 이후 한국 사회가 서울 중심으로 성장했고,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어서면서 서울 집중 현상이 심화됐다. 아파트값은 너무 비싸고, 사교육도 힘들어졌다.
조 교수는 “심리적인 불안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경쟁감이 해소돼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모든 생명체가 너무 빽빽하게 들어서 있으면 내 생존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내가 더 크려고 노력한다”며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밀도 못지않게 심리적인 밀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합계출산율 추이. /조선DB |
조 교수는 특히 여성의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된 점도 저출산의 원인으로 꼽았다. 지방은 대부분 제조업 중심이기에 남성들만 있게 되고, 결혼이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그런데 지방의 국회의원들이나 지자체장들은 여전히 제조업 중심으로만 (일자리를) 말한다”고 했다.
진행자는 “50~60년대 전쟁통에도 아이들은 많이 낳았고, 어르신 중에 우리 때가 훨씬 힘들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에 조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금 청년들, 아이를 안 낳는 30대 초중반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경쟁이 심한 삶을 살아왔다”고 했다.
조 교수는 “어르신들은 열심히 하면 됐던, 오히려 쉬운 때를 사셨다”며 “지금은 열심히만 해서 될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 “아무것도 없는 사회에서 0에서 1을 가는 것과 100에서 101을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고 했다.
조 교수는 저출산 정책의 대상은 2000년대 이후 출생자가 되어야 한다고 봤다. 이때부터 출산율이 떨어져 한 해에 50만명 이상 태어난 적이 없기에 자연적으로 경쟁이 덜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그런데도 사회 구조가 경쟁감을 계속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는 입시 제도로 여전히 줄을 세운다”고 했다. 이어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친구들은 분명히 경쟁감이 덜하게 자라나야 하는데, 윗세대를 보면서 똑같이 경쟁할 거라고 심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똑같이 아이를 안 낳을 것”이라며 “그러면 우리나라는 정말 미래가 없다”고 경고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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