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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건 ‘서부전선’ 뿐… 올해 美 오스카, OTT영화 실종 사건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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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건 ‘서부전선’ 뿐… 올해 美 오스카, OTT영화 실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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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미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등 9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넷플릭스 제작 독일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넷플릭스

2023년 미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등 9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넷플릭스 제작 독일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넷플릭스




오늘(13일) 올해의 미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가장 눈에 띄는 경향 중 하나는 수년간 “오스카를 점령했다”며 호들갑이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영화들의 뚜렷한 퇴조. 올해 오스카에는 OTT 작품이 총 19부문 후보에 올랐는데, 작품상 포함 9후보인 넷플릭스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제외하면 주요상 후보에는 남우조연상(애플tv+ ‘코즈웨이’)과 각색상(넷플릭스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오니언’) 정도 뿐이다.

넷플릭스는 2020년에 36개 부문 후보, 2022년 27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올해는 16개 부문 후보다. 올해는 넷플릭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애플tv+를 다 더해도 19개 부문 후보여서, 넷플릭스 2022년에 혼자 배출했던 후보보다 적은 셈이다.

◇잘 나가던 OTT 영화들, 전례 없는 ‘오스카 흉작’




2017년 넷플릭스의 ‘화이트 헬멧’이 단편 다큐상을 받으며 시작된 OTT플랫폼들의 오스카 레이스에서 올해 같은 흉작은 처음이다. 작년에는 애플tv+의 ‘코다’가 OTT 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받으며 새 역사를 썼다. 12부문에서 후보에 올라 감독상 하나를 받은 ‘파워 오브 도그’를 비롯해 작품상 후보만 세 편. 이런 식으로 OTT 영화들이 서로 다른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걸 모두 더하면 후보수는 총 37건에 달했다. ‘돈룩업’과 ‘추적자’(이상 넷플릭스) 등이 주·조연 연기 부문과 촬영 각색 등 주요 부문 후보였다.

2021년엔 OTT 영화가 총 47후보로 정점을 찍었던 해. 10후보로 촬영상과 미술상을 받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맹크’에다 6후보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 5후보 ‘마 레이니 블랙 바텀’ 등 넷플릭스 영화들, 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사운드 오브 메탈’ 등이 주목 받았다. 2020년엔 10부문 후보였으나 상은 하나도 못 받은 넷플릭스 ‘아이리시맨’이 있었다. 이 해 ‘아이리시맨’ 대신 주인공이 된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우리 영화 ‘기생충’이었다.

2019년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넷플릭스 영화로 10후보에 올라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OTT영화가 받은 최초의 아카데미 감독상이었다.

◇플랫폼들 “영화는 흥행될 것만… 시리즈에 집중”

첫번째 이유는 이제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 팬데믹을 거치며 2019년 1억4900만 가구였던 넷플릭스 가입자수는 작년 마지막 분기 2억3000만 가구까지 늘었다. 팬데믹 기간에는 극장 개봉 영화의 숫자 자체가 적었고, OTT로 직행한 영화들도 극장 개봉 경력 없이 상대적으로 쉽게 아카데미상 후보작이 될 수 있었다. 극장 운영이 정상화된 이제는 어려운 일이다.


올해 오스카 작품상 등 10부문 11후보(여우조연상 후보가 두 명)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주인공 ‘에블린’(미셸 여)의 남편 ‘웨이먼드’로 출연했던 배우 조너선 콴은 “이 영화의 제작사 A24도 코로나로 한참 힘들 때 넷플릭스나 아마존 같은 플랫폼 판매를 고려했으나 꾹 참았다. 만약 그 때 OTT에 팔고 극장 개봉을 못했다면 이 영화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실용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여러 외신들은 분석한다. 이름을 알리고 수상 실적으로 품질에 대한 평가를 높여야 했던 과거엔 OTT들이 의도적으로 영화제나 시상식을 겨냥한 거장들의 작품을 내놓았다. 이미 충분히 인지도를 높이고 작품성도 인정 받은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영화 최고 히트작인 ‘레드 노티스’는 첫 28일간 전세계 누적 3억6402만 시간을 기록했지만,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시즌4′는 첫 28일간 13억5209만 시간이었다. 자사 플랫폼에 오래 머물고 자꾸 방문하게 하는 데는 거장들의 예술성 높은 영화보다 시리즈가 훨씬 더 효과적인 것이 당연하다.


◇기대작 줄줄이 ‘폭망’… 일시적 현상? 흐름 변화?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 /넷플릭스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 /넷플릭스




다만 이런 현상은 OTT 영화들의 후퇴라기보다 ‘숨 고르기’에 가까울 수도 있다. 올해 넷플릭스의 경우 ‘버드맨’과 ‘레버넌트’로 2년 연속 오스카 감독상을 받았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가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모두 실패했고, 역시 오스카가 사랑하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의 음울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도 애니메이션 부문에만 이름을 올리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애플tv+ 역시 최고 기대작이었던 영화 ‘해방’이 하필 오스카 시상식 10년 출입금지된 윌 스미스 주연작이었을 뿐이다.

과연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까. OTT플랫폼 영화의 대표 선수로 체면 치레를 할 수 있을까. 올해 오스카의 관전 포인트가 하나 더 늘었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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