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학대범들을 직접 추적해 온 김미나씨. 지난해 11월7일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왔다. 전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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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17일 오전 수원지방법원, 김미나씨(33)가 법정에 들어선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반성은 했니?” 원래 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남자는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마른 체형, 반 뿔테 안경을 쓰고 아직 앳돼 보이는 이 남자는 길에서 마주쳐도 기억에 남지 않을 만큼 평범해 보였지만, 법정을 가득 채운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은 그를 주시하며 수군거렸다.
“쟤야. 바로 저놈이야.”
법정에 선 이모씨(28)는 이른바 ‘고양이 n번방’이라고 불리는 익명 채팅방에 자신이 때리고 죽인 고양이 학대 영상을 자랑삼아 올린 혐의(동물보호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고양이가 자신을 물었다는 이유로 다리를 부러뜨리는 등 길고양이 4마리를 학대하고 1마리를 죽인 혐의다.
이씨가 혐의를 인정하자 재판은 빠르게 마무리됐다.
“현재 피고인은 스물여덟살의 나이로 앞길이 구만리 같으며 변변한 노후대책이 없는 부모님에게 큰 타격이…”
변호인의 최후 변론이 이어지자 방청석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이씨의 최후 진술 차례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죄송….”
“살인마!” “실제로 죽인 고양이는 수십 마리가 넘습니다!”
방청객들은 이씨와 판사를 향해 소리질렀다. 이씨는 말을 끝맺지 못 했다. 법정 경위들이 나섰지만 쉽게 잠잠해지지 않았다. 판사가 ‘퇴정시키겠다’며 경고했지만, 방청객들은 “나중에 사람 죽이면 어떻게 할 겁니까! 책임지실 겁니까?”하고 소리쳤다. 이씨는 고개를 숙인 채 눈치를 살폈다.
지난해 11월17일 오전 수원법원종합청사 앞에서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고양이를 학대하고 이 영상을 찍어 익명 채팅방에 자랑삼아 올린 이모씨에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전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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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력과 집요함으로 고양이 학대범 추적
완전 범죄를 꿈꾼 이씨가 법정에 서게 된 것은 김미나씨에게 덜미를 잡혀서다.
검고 긴 생머리를 한 미나씨는 마르고 작은 체구지만, 도전적이고 거침없으면서도 집요한 성격을 지녔다. 미나씨는 여성 레이서로 활동해왔고, 최근엔 자동차 뒷바퀴를 미끄러트리는 ‘드리프트’ 종목에 도전하고 있다.
미나씨가 고양이와 처음 만난 건 10년쯤 전이었다. 원래는 고양이를 무서워했는데, 어느 날 길고양이에게 우연히 밥을 주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다친 고양이를 구조해 돌보면서 고양이 사랑이 깊어졌다.
평범한 ‘애묘인’이었던 미나씨의 삶이 바뀐 것은 지난해 1월이었다. 살아있는 고양이를 포획틀에 가둔 뒤 몸에 불을 붙이는 영상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이 영상을 올린 이는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라’며 조롱했다. 미나씨는 학대범이 결국 붙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애들이 안 잡히는 거지.”
미나씨는 이때 고양이를 붙잡아 학대하는 게 이 사람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나 익명 채팅방에는 고양이를 괴롭히거나 때리고 심지어 죽이는 일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살아있는 사람한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니까 너무 무섭고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미나씨는 정말 잡을 수 없는 것인지, 직접 나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처음 시작한 건 ‘온라인 잠복’이었다
미나씨는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자면서 스마트폰에 집중했다. 학대범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나 채팅방을 살폈다. 이런 글은 삭제되면 복원할 수 없어서 바로바로 저장해가며 정보를 모았다.
학대범들은 익명을 바탕으로 아이디를 돌려가며 썼다.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끈질긴 관찰로 패턴을 찾아갔다. 사람마다 말투가 다르듯, 게시글에도 서로 다른 흔적이 남았다. 한 문장을 쓰고 다섯 칸씩 띄우거나, 문장 끝에 점을 두 개씩(..) 붙이는 식이다. 고양이 학대범들은 보통 여러 개의 커뮤니티와 채팅방을 오갔지만, 이런 특징을 바탕으로 동일인을 골라낼 수 있었다.
학대범들을 분류한 뒤, 이들이 올린 고양이 학대 사진이나 영상을 분석해서 증거를 확보했다. 학대를 자랑하기 위해 올린 영상과 사진을 파고들면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난해 2월, 포획틀로 고양이를 잡아다 먹이가 없는 외딴 논밭에 버린 일을 자랑삼아 올린 학대범이 있었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를 먹이가 없는 외딴곳에 버려 죽게 만드는 이른바 ‘이주 방사 학대’다.
미나씨는 이 영상을 돌려보며 특징을 파악해갔다. 누군가 정기적으로 사료를 챙겨주던 급식소에서 길고양이를 포획해 방사하는 식이었는데, 이 급식소의 파란 천막이 보였다. 미나씨는 고양이 관련 카페에서 ‘파란 천막’을 친 급식소를 운영하는 이를 수소문했다.
“고양이가 최근에 계속 사라지더니….”
겨우 연락이 닿은 한 카페 회원은 ‘방사 학대’ 영상을 보여주자 자신의 집 앞에 설치해둔 급식소가 맞다고 했다. 범인은 이 회원의 이웃집에 사는 20대 남자였다. 미나씨는 방사된 고양이를 찾기 위해 영상 속에 자주 등장하는 철탑의 위치도 찾아냈다. 하지만 당시 방사 학대에 대한 처벌 기준이 모호해 결국 처벌로 이어지진 않았다.(지난 1월 ‘이주 방사’를 처벌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처벌되진 않았지만, 미나씨는 학대범을 추적하면 찾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학대범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와 채팅방을 모니터링하면서 증거를 모으고 함께 힘을 보태는 사람들과 추적을 계속했다. 미나씨가 학대범들을 추적하는 모습은 탐정을 연상케 한다. 평범한 시민인 미나씨는 관찰력과 집요함을 무기로 학대범들을 잡아냈다. 서울, 여수, 포항 등 전국에서 학대범을 구체적으로 특정해내는 데 성공했다. 법정에 서게 한 이씨도 이런 집요함에 꼬리가 잡혔다.
덜미 잡힌 ‘고양이 n번방 행동대장’의 평범한 정체
‘고양이 n번방’이라고 불린 익명 채팅방. 이씨는 이곳에서 고양이를 학대한 영상과 사진을 자랑삼아 올렸다. 김미나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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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님 좋은 거 없나요?”
김미나씨가 잠복해 있던 고양이 학대 채팅방에서 이씨는 ‘이주’라는 별칭으로 통했다. 이씨는 행동대장처럼 굴었다. 붙잡은 고양이를 자신의 집 또는 할머니 집에서 괴롭히고 죽이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채팅방에 있던 이들이 환호로 답했다.
미나씨는 이씨가 올린 영상을 수십 번 반복해 보며 살피고 또 살폈다. 그러다 이씨가 집 안에서 촬영한 영상에서 ‘화성시’라고 쓰인 폐기물 스티커를 발견했다.
“이 집이 어디인지 아시겠어요?”
미나씨는 직접 탐문에 나섰다. 화성시 동탄 일대에서 사용되는 폐기물 스티커라는 것을 확인한 뒤 동탄의 부동산을 하나하나 두드려가며 탐문했다. 결국 동탄의 한 아파트 단지 대형 평수 동이라는 구체적인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추적이 계속되는 중에도 고양이 학대가 이어졌기 때문에, 당시까진 이름을 알 수 없던 이씨를 경찰에 고발하고 이 사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고발 소식을 공개하자 이씨가 직접 미나씨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씨는 어머니와 함께 미나씨를 만나러 와 고양이를 버린 곳을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며 각서를 쓰며 선처를 바랐다. 이씨는 가족과 함께 살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의 모습은 평범한 여느 20대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고양이를 구조하러 이씨가 말한 방사 장소에 가보니 수많은 고양이 사체와 방치된 채 죽어가는 고양이들이 보였다. 선처할 수 없었다. 이씨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고양이가 목숨을 잃었을까.
미나씨가 추적한 고양이 학대범들에게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고양이 살해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때도 있지만 그들이 더 필요로 하는 것은 관심과 분노였다. 실생활에서는 주눅 든 채 내세울 게 없지만 고양이를 때리고 학대하고 죽이면 온라인에서 영웅이 된다.
고양이가 이들의 분노를 풀어낼 대상이 된 건 여러 이유가 있다. 고양이는 경계심이 강해 붙잡으려고 하면 할퀴거나 문다. 대신, 개처럼 무는 힘이 강하지 않아 크게 위험하진 않다. 학대범들은 비교적 덜 위험한 고양이를 괴롭히고, 고양이가 반항하면 더 잔인하게 학대한다. 학대와 반항, 더 큰 학대로 이어지는 피드백 고리를 통해 자신의 화를 키움으로써 분노 해소의 쾌감을 더하는 방식이다.
고양이는 길 위에서 살기 때문에 잡기도 쉽다. 여기에 길고양이를 둘러싼 논란은 학대를 정당화하는 데 쓴다. 길에서 쓰레기 봉지를 뜯거나 차에 흠집을 내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캣맘’이 극성이며, 고양이가 새를 함부로 사냥해 생태계를 어지럽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학대범들은 이런 주장을 발판삼아 고양이 학대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고양이 학대는 엄연히 범죄다. 문제는 수사기관에서는 고양이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증거를 모아서 가져다주지 않으면 제대로 수사가 안 되는 일이 많고, 처벌하더라도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학대범들이 겁을 먹지 않아요.”
미나씨와 처음 만난 곳은 지난해 11월7일 인천 미추홀경찰서였다. 동물 학대 사건의 실상을 알리고 목격자를 찾기 위해 학대 사진들을 SNS에 올렸는데, 이것이 동물보호법 위반이라며 학대범들이 도리어 미나씨를 고발했기 때문에 조사를 받으러 왔다. 대부분 혐의없음으로 마무리되지만 이렇게 고발당한 사건이 10건이 넘으니 이에 따른 스트레스와 불편함도 적지 않다.
미나씨가 표적이 된 것은 학대범을 잡아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미나씨가 쓰는 SNS 아이디 ‘인천토리’는 학대범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하다. ‘인천토리에게 걸리면 골치아파진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학대범들은 고양이를 ‘털바퀴’(털 난 바퀴벌레)라고 부르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들을 ‘털맘’이라고 부르는데, 미나씨는 자신이 고양이 혐오자들 사이에선 “네임드(유명한) 털맘”이라고 불린다며 웃었다.
김미나씨(오른쪽 첫 번째)가 지난해 11월17일 고양이 학대범 이씨의 1심 첫 공판을 앞두고 수원법원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의 집회에 참석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전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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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 지쳤지만…“입장 바꿔 생각해봤으면”
지난달 22일 수원지법에서 ‘고양이 n번방 행동대장’ 이씨의 항소심 첫 공판이 열렸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입니다.” 이씨의 변호인이 최후 변론을 했다.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아 구속된 이씨는 이날 파란 수의를 입고 최후 진술을 했다. “사회에 복귀하게 되면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봉사하면서 속죄하겠습니다.” 법정에 선 이씨는 익명 채팅방에서 고양이 학대를 자랑할 때처럼 당당하지 못했다.
이씨의 항소심 선고는 오는 3월17일로 잡혔다. 1심 재판을 모두 챙겨보았던 김미나씨는 이날 재판에 오지 못했다.
지난달 29일 다시 만난 미나씨는 조금 지쳐보였다. 고양이 학대범을 계속 추적하면서 생긴 스트레스 때문인지 크고 작은 병이 생겨 병원 신세를 진다고 했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많이 지쳤다.
“고양이가 귀엽게 우는 영상만 봐도 눈물이 나요. 학대당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생각나서요.”
그래도 미나씨는 학대범 추적을 멈추지 못했다. “이놈만 잡으면 조금 쉬어야지” 했는데, 학대범들은 계속해서 새로 등장했다.
“그래도 학대범들을 추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조금은 마음을 놓여요.”
미나씨에게 학대범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으니 “욕 밖에 없는데…”라며 웃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고양이들을 학대하는 것처럼 네가 다른 사람에게 당했다면 얼마나 아프고 무서울지 생각해보라고요.” 미나씨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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