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물가 상승 2%대 확인 전까진…” 긴축 유지에 무게[1년 반 만에 기준금리 동결]

금통위원 5명 “금리 3.75%까지 열어놔야” 매파 성향 강화

경제 불확실성 높아져…전문가들 “연말까지 동결” 전망도

“물가 잡기 전 금리 인하는 시기상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하면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를 기다린 다음에 갈지 말지를 봐야 하지 않느냐”면서 “(이번 동결을)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23일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높아진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물가 경로가 정책 목표 수준인 2%로 가는 것이 확인되기 전에 금리 인하 논의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금통위 의장인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중 한 명은 이번 금리 인상의 최종 수준을 연 3.5%로, 5명은 당분간 3.75%까지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3 대 3으로 나뉘었던 것과 비교하면 긴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간담회에서 수차례 ‘물가 패스(경로)’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지금까지 1년 반 동안 3.0%포인트를 올리면서 2월은 5% 안팎으로, 3월부터는 4%대로 물가상승률이 낮아지고 그 추세가 계속돼서 올해 말에는 3% 초반으로 물가가 내려가는 경로를 보고 있다”면서 “물가가 저희들이 생각하는 경로로 가게 되면 굳이 금리를 더 올려서 긴축적으로 가기보다는, 지금 수준에서 물가 경로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경기와 물가를 함께 보지만 물가 경로가 이번 결정의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향후 불확실성 요소로는 중국 경제활동 재개의 효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장기화, 국내 경기 둔화 등이 꼽힌다. 이 총재는 중국의 경제활동 재개 효과와 관련해 “전체적으로 중국 경제의 상향 조정은 우리에게 긍정적 효과임에 틀림없다”면서도 “정치·경제적인 불확실성, 또 중국 경제가 과거와 달리 투자재가 아닌 소비재 중심으로 회복될 경우 국내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줄어들 수 있는 점, 중국인 관광객의 회복 여부 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달러당 1300원을 넘나들고 있는 원·달러 환율과 관련해서는 아직 특정 환율 수준을 타깃으로 해서 대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환율이 물가 경로에 주는 영향은 중요한 고려 사항이지만, 1300원이나 1400원 등 특정 환율 수준에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며 “환율 쏠림 현상이 있거나 변동성이 너무 커지면 금융시장 안정이나 물가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금통위 내용은 기존 예상보다 매파적 요인이 많았다”면서도 “정책당국 또한 데이터에 의존해 대응할 수밖에 없는 높은 불확실성을 감안해 기존 3.5% 동결 전망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도 “현 기준금리가 추가 인상 없이 연말까지 유지될 것이란 기존 전망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신입 채용’은 공정했을까
▶ 나는 뉴스를 얼마나 똑똑하게 볼까? NBTI 테스트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