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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너무 적고 늦었다"…시리아 국경 방문 UN "실패"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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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너무 늦었다."

12일(현지시각)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담당 사무차장의 시리아 북서부와 튀르키예(터키) 사이 유엔(UN) 승인 유일한 구호 물자 지원 통로인 바브 알하와 국경 방문을 두고 '하얀 헬멧'이라는 별칭으로 활동하는 시리아시민방위대(SCD)가 내린 평가다. 

국제사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 채 반군 통제 지역인 시리아 북서부에서 구조 활동을 벌여 온 하얀 헬멧의 대표 라에드 알살레 이날 바브 알하와에서 그리피스 차장을 만나 "7일 전 지진이 발생한 순간부터 우리는 유엔에 구조 작업을 위한 긴급 지원을 요청해 왔다. 이 요청은 수일 간 무시됐고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생명이 불필요하게 희생됐다. 이번 방문은 너무 늦었고 (국제사회 원조는) 너무 적었다"고 비난했다. 하얀 헬멧은 이날 알살레 대표가 "유엔이 인도주의적 재앙에 직면한 시리아인들의 목숨을 구할 빠른 조치를 취하는 데 실패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고 양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 시리아 북서부와 맞닿은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발생한 규모 7.8 및 7.5의 지진과 그 뒤 이어진 여진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 통신은 재난관리국(AFAD)을 인용해 지진으로 12일까지 2만9605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시리아 쪽 사망자도 45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는 12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연 화상 기자회견에서 시리아의 지진 사망자 수가 8000명을 넘길 것으로 봤다. 

피해 지역에 한국을 포함해 국제사회의 지원이 잇따랐지만 시리아 북서부 반군 통제 지역은 소외됐다. 12년 째 이어지고 있는 내전 상황에서 자행된 인권 침해 등으로 바사르 알 아사드 정권이 미국 등의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시리아 정부 쪽에 대한 초기 지원도 러시아와 이란 등 우방 국가 중심이었던 데다 정부 쪽이 반군 통제지 쪽으로 물자가 흘러 들어가는 것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진 발생 뒤 첫 3일 동안 이 지역에 대한 유엔 구호물자조차 끊겼다. 바브 알하와 국경으로 가는 길이 파손돼 물자 수송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바브 알하와 국경 통제소 쪽은 튀르키예에서 지진으로 사망한 시리아인 시신은 차량을 통해 수송되고 있다면서 유엔의 해당 주장에 대한 의문을 표한 바 있다. 이 지역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도 거의 매일 들어오던 구호물자에 의존하고 있었다. 9일부터 구호품 운송이 재개됐지만 10일까지 들어온 20대의 구호 트럭엔 긴급 재해 구호를 위해 마련된 물품이 아닌 평시 지원용 물자가 실려 있었다고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이 알살레 대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유엔은 이후에도 의약품, 식수 부족으로 이 지역에서 추가로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콜레라 검사 장비 및 태양광 조명 등 계속해서 구호물자가 전달됐다고 밝혔다. 

하얀 헬멧은 "국제적 지원의 부재 속"에 장비 및 연료 부족과 싸우며 수색을 벌였지만 지난 9일 이후 한 명의 생존자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생존자 구조 작업을 종료하고 복구 작업으로 방향을 전환하겠다고 10일 밝혔다.

그리피스 차장은 12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시리아 북서부에 사는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고대하던 국제적 지원이 도착하지 않았고 그들은 당연히 버림 받았다고 느낀다"고 시인하며 "내 의무는 이 실패를 가능한 빨리 바로잡는 것"이라고 밝혔다.

안보리 '추가 지원 통로' 승인 절실한데…상임이사국 러시아 "통로 한 개로 충분"

하얀 헬멧은 긴급 구호를 위해 바브 알하와 국경 외 이 지역에 대한 다른 지원 통로를 열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12일 린다 토마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자사에 보낸 성명에서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다른 통로 승인을 위한 "즉각적 투표"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다만 외교관들에 의하면 관련 결의안 초안이 아직 회람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지원 통로 추가 승인에 부정적 의사를 밝힌 바 있어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로이터>는 10일 드미트리 폴리안스키 유엔 주재 러시아 차석대사가 지원 통로는 현재 승인된 한 개로 충분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필요한 물자가 시리아 내에서 정부 통제 지역에서 반군 통제 지역으로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가 통로 승인을 위해선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중 9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5개 상임이사국(러시아·중국·미국·영국·프랑스) 중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로이터>는 2021년 8월 이래 튀르키예에서 시리아 북서부로 향하는 통로로 월 270만 명이 지원 받은 데 비해 시리아 내 경로로는 월 4만3500명 밖에 지원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폴리안스키 차석대사는 피해 지역에 방문한 그리피스 차장의 발표를 들어보겠다고 여지를 뒀다. 주말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과 바브 알하와 등을 방문한 그리피스 차장의 보고는 13일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얀 헬멧은 유엔의 "관료주의 탓에 많은 시리아인들이 죽었다"며 "안보리 승인을 기다리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유엔이 긴급히 추가 통로를 열어야 한다"며 "의료 지원 전달을 신속하게 확대하지 못하면 유엔은 그 손에 더 많은 피를 묻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 통제 지역을 통한 지원도 난항을 겪고 있다. <로이터>를 보면 지난 10일 시리아 정부는 정부 통제 지역에서 반군 통제 지역으로 가는 지원을 승인한다고 밝혔지만 12일 유엔은 반군 쪽 강경파와 "승인 문제"를 겪고 있어 이 경로를 통한 지원이 보류됐다고 밝혔다. 북서부 이들리브 지역을 통제하고 있는 무장 세력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 (HTS) 소식통은 통신에 "(아사드) 정권이 우리를 돕는다는 것을 보여줘 이 상황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튀르키예 쪽 경로에서 지원이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BBC 방송은 한 때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던 HTS가 현재는 그 관계를 청산했지만 여전히 정부와 거의 어떤 소통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로이터>는 6일부터 정부 통제 지역에 구호 물자가 도착하고 있지만 북서부 지역엔 거의 전달되지 않았고 정부 쪽은 물자 전달이 언제 이뤄질지 확답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구호서 시리아 난민 배제를" 튀르키예 내 반난민 정서에 또 다시 고통

지진 뒤 반난민 정서가 번지며 튀르키예 내 시리아 난민들도 곤란에 처해 있다.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엔 150만 명 가량의 시리아 난민이 거주 중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 안타키아 축구 경기장 근처 천막촌에서 한 튀르키예 여성이 튀르키예군 장교에게 시리아인이 아닌 튀르키예인에게만 지원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지역에서 수색 작업을 지켜보던 튀르키예 여성 툴린 쿠세이리(62)는 지인의 주검을 곁에 둔 채 "시리아 이민자들이 더 이상 안타키아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세금으로 시리아인을 돕는 대신 튀르키예인을 돌봤으면 한다"고 매체에 말했다. 

안타키아 등에서 재난 상황을 틈 타 상점과 가정집을 가리지 않고 약탈이 횡행하며 12일 약탈 혐의로 57명이 체포된 가운데 약탈이 시리아인, 아프가니스탄인 등 이민자들에 의해 벌어졌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내전 탓에 시리아 북부 알레포를 떠나 떠돌다 2년 전 안타키아로 넘어 온 힌드 퀘이두하는 이제 "우리를 나라 밖으로 쫓아 내려는 튀르키예인들의 위협 아래 놓이게 됐다"고 <뉴욕타임스>에 토로했다.

프레시안

▲지진 발생 일주일째인 12일(현지시각) 튀르키예 남동부 하타이주에서 한 주민이 실종 상태인 손주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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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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