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지난 6일(현지시각) 튀르키예 및 시리아 강진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이틀 만에 9600명으로 늘었다. 악천후로 구조 인력 도달이 지연되며 주민들이 맨손으로 구조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매몰 중 태어난 신생아의 기적적 구조 소식도 들려왔다. 서방 제재를 받고 있는 시리아엔 상대적으로 적은 도움이 주어지고 있는 중에 지진으로 반군 통제 지역으로 향하는 유일한 물자 지원 통로가 끊기며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 통신을 보면 6일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8일 7108명으로 늘었다. 부상자 수는 4만910명에 이른다. 5775채의 건물이 파손됐고 잔해 속에서 8000명 이상이 구조됐다. 시리아의 경우 정부 통제 지역 사망자 수가 1250명으로 보고됐고 북서부 반군 통제 지역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 시리아시민방위대(SCD), 일명 '하얀 헬멧'은 이 지역 사망자가 1280명이 넘는다고 밝혀 시리아 쪽 사망자도 2500명을 넘겼다. 이날까지 총 사망자 수는 9600명에 이른다.
지난 6일 새벽 튀르키예 남동부 가지안테프 인근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뒤 이날 오후 규모 7.5의 추가 지진이 발생한 것을 비롯해 강도 4 이상의 여진만 100회 이상 이어지며 튀르키예 남동부와 이와 접한 시리아 북서부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7일 지진 피해 10개 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악천후로 민간 구조대 등 발 묶여…"국가 어디 있나" 튀르키예 시민들 분노
재난 현장에서 구조 인력이 부족하다는 비명이 연일 들려 오지만 악천후로 자원봉사자 등 많은 구조인력이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이스탄불 사비하 괵첸 공항 활주로가 얼어 붙고 강설이 계속되며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해 기업에서 조직한 자원 봉사 구조대원 등이 대기 중이라고 보도했다. <아나돌루>에 의하면 튀르키예 재난위기관리청(AFAD)은 지진 피해 지역에서 세계 65곳에서 보내 온 3200명의 인력을 포함해 6만218명이 대응 중이라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7일 구조대가 도달하지 못해 시민들이 가족을 구하기 위해 전문 장비는 커녕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잔해를 뒤지며 구조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헬멧, 망치, 밧줄 등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구해 구조에 나섰다. 통신은 구조 인력 투입이 늦어지며 주민들이 점차 정부에 분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동부 말라티아에서 주민 사비하 알리나크는 "도대체 국가는 어디 있는 거냐"라고 비판하며 이틀 동안 잔해 밑에 있는 친족을 구출하기 위해 스스로 구조 활동에 나섰다고 통신에 말했다. 튀르키예는 오는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번 재난 대응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 시험대라는 관측이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7일 튀르키예 남부 이스켄데룬 항구에서 지진 여파로 화재가 발생해 수백 개의 컨테이너가 불탔다. 덴마크에 기반을 둔 해운 회사 AP 몰러 머스크는 이미 지진 당일인 6일 이스켄데룬항을 포함해 진원지 주변의 물류 및 운송 기반시설에 상당한 피해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항구는 가지안테프에서 150km 가량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항구 화재로 피해 지역 구호 지원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적적인 구조 소식도 들려 왔다. <AP> 통신은 시리아 북서부 반군 통제 지역인 작은 마을 진디레스의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지진이 일어난 지 10시간 이상 지난 6일 오후 탯줄도 끊지 않은 신생아가 구조됐다고 전했다. 아이는 인근 아프린 지역 병원으로 옮겨졌다. 담당 의사인 하니 마루프는 통신에 발견 당시 아이의 체온으로 보아 구조 당시 태어난 지 수 시간 이내일 것으로 추측했다. 아이 어머니가 매몰 중 구조를 기다리던 상황에서 출산 뒤 사망했다는 것이다. 건물 잔해를 파헤치던 중 아이를 발견한 삼촌 칼릴 알 샤미(34)는 <뉴욕타임스>에 "다음날이 출산 예정일이었는데 아마도 충격 때문에 분만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마루프는 구조가 한 시간만 늦었어도 아이가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부모와 네 형제는 모두 주검으로 발견됐다. <AP>는 가족의 친척을 인용해 이들이 원래 동부 데이르에조르 출신이었지만 2014년 이슬람국가(IS)가 이 지역을 점령한 뒤 난민이 돼 이곳으로 흘러 들어 왔다고 전했다.
제재 속 시리아엔 도움 손길 적어…시리아 외무, 국제사회 도움 땐 반군 통제지까지 지원 시사
각국이 지진 피해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서방 제재 중인 시리아에 대한 도움의 손길은 선뜻 내밀어지지 않고 있다. 7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유엔 주재 튀르키예 대표부는 70곳이 넘는 국가들과 14개 국제구호기구가 피해 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반면 바삼 알 사바그 유엔 주재 시리아 대사는 이란과 러시아 등 몇몇 국가들만이 도움을 주고 있다며 바사르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제재를 비난했다. 유엔은 국제사회에 일단 "정치 상황은 제쳐두고" 삶이 파괴된 어린이들과 시민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데 집중하자고 촉구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6일 미국이 "시리아 국민의 인도주의적 필요를 해소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시리아 정부에 지원의 손길이 미치더라도 반군 통제 지역에 물자가 도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뉴욕타임스>는 7일 세계식량계획(WFP) 관리가 최근 수년 간 반군 통제 지역에 대한 유일한 인도주의적 지원 통로로 기능해 해 온 튀르키예에서 이어진 밥 알 하와 국경으로 향하는 길이 지진으로 파괴됐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지원 통로가 기능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지역 주민들은 현재 비축된 물자로 당분간 버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평소 막대한 구호 물품을 보내 온 튀르키예의 지진 피해도 막대한 상황이라 통로가 재개되더라도 이 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미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으로 인한 튀르키예의 경제적 손실이 10억달러(1조2600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고 그 열 배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현재로선 정부 통제 지역을 통한 북서부 물자 지원이 거의 유일한 방안이 상황에서 <뉴욕타임스>는 7일 파이살 미크다드 시리아 외무장관이 레바논 방송에 출연해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하며 시리아 정부가 무장 테러 단체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 한 모든 지역 지진 피해자들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번 지진으로 시리아에서 활동하던 동료를 잃은 나탈리 로버츠 국경없는의사회 영국 이사는 BBC에 "대재앙에 재앙에 더해졌다"며 시리아 북부가 이번 지진으로 몇 달 동안 고통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지안테프를 비롯해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에도 수백 만의 시리아 난민이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이 또한 피해 규모를 키운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7일 브리핑에서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에 거주하는 1700만 주민 중 150만 명이 시리아 난민이라고 설명했다.
"내진 광고 건물까지 무너져"…튀르키예 부실 건설 관행 비판도
튀르키예는 아나톨리아판·아라비아판·아프리카판의 교차점에 위치해 잦은 지진을 겪는데도 내진 보강을 충실히 하지 않은 부실한 건축 관행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1만7000명의 목숨을 앗아 간 1999년 북서부 이즈미트 지진 뒤 튀르키예 정부는 거듭 지진에 대비해 건축법을 정비했지만 "강력하게 집행되지 않았다"고 재난 복구 전문가 키트 미야모토가 미 공영 NPR 방송에 말했다.
그는 "2000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은 매우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토목기사 에롤 키르타스는 그의 고향 튀르키예 말라티아에서 "내진 설계가 돼 있다고 광고한 새 건물들도 무너졌다"며 "튀르키예의 건설 부문은 질보다 양과 이익을 우선시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 엄청난 인명 손실에 직면한 이유"라고 <뉴욕타임스>에 비판했다.
▲시리아 강진 피해 현장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신생아가 7일(현지시각) 알레포주 아프린 어린이병원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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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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