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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얕은 땅밑 원자폭탄 32개 충격… 튀르키예 대참사 4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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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모두 잠든 새벽 4시에 발생

②히로시마 원폭 32개 넘는 에너지

③내진 설계 안된 건물 와르르

④내전 중인 시리아, 구조 지연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 지난 6일(현지 시각) 발생한 지진으로 7일 최소 5000명이 사망하고 2만5000명 이상이 부상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튀르키예 현지에서는 1939년 12월 북동부에서 발생해 3만2700여 명이 사망한 에르진잔(Erzincan) 지진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두 지진 모두 규모 7.8 강진으로, 겨울철 새벽 시간에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국 BBC는 “규모 7.8 이상의 강력한 지진은 지난 10년간 단 두 번 정도 일어날 만큼 드문 데다, 대부분의 사람이 잠들어 있던 새벽 시간에 발생해 더욱 큰 피해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내진(耐震) 설계 없이 벽돌로 지은 건물 구조도 피해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지진은 6일 새벽 4시 17분 발생했다. 많은 이가 곤히 잠들어 있다가 대피할 시간을 놓쳤다.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 통신은 “진앙에서 불과 30여㎞ 떨어진 가지안테프의 경우 격렬한 진동에 잠이 깬 사람들이 잠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며 “일부 지역에서는 순식간에 건물이 무너지면서 불과 1~2분 차이로 많은 이의 생사가 엇갈렸다”고 전했다.

눈과 비가 내리는 추운 날씨에 놀라 뒤늦게 코트와 담요, 신발 등을 챙기려던 사람들,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모시고 나오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변을 당한 안타까운 사연도 이어졌다. 소셜미디어에는 반파된 건물이 뒤이은 여진에 완전히 무너지면서 주변 사람들과 차량을 덮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 올라왔다. 민방위 대원들이 급히 이재민들을 근처 모스크와 학교 등으로 대피시켰으나, 전기마저 끊긴 암흑 속에서 길을 헤매던 이들이 떨어진 건물 잔해에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지진의 위력은 약 900㎞ 떨어진 이스라엘에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덴마크·그린란드 지질조사국(GES)은 “지진 발생 8분 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린란드 동쪽 해안에서까지 진동이 감지됐다”며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32개를 훨씬 초과하는 에너지가 지진으로 방출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진원(震源)이 지하 18㎞로 비교적 얕았던 탓에 지상에 더 큰 충격이 가해졌다. 진원이 얕을수록 지진파가 지상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에너지가 줄어든다. 로이터는 “지진이 발생한 동아나톨리아 단층이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움직이는 ‘주향이동단층’이었던 탓에, 지표면의 건물들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면서 더 큰 충격이 가해졌다”고 덧붙였다.

내진 설계가 되어있지 않은 약한 건물 구조도 피해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미 지질조사국(USGS)은 “이 지역의 주거 및 상업용 건물 대부분이 지진을 견디는 능력이 극히 취약한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건물들이 맥없이 무너져 피해를 키운 것과 같은 이유다. BBC는 영국 내 전문가들 의견을 인용해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는 지난 200여 년간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아 최근에 지어진 현대식 건물을 제외하면 내진 설계가 된 건물이 극히 드물다”고 지적했다.

시리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부터 12년간 이어진 오랜 내전으로 상당수 건물에 구조적 손상이 생겼고, 보수나 관리도 전혀 되지 않은 탓에 가벼운 충격에도 건물이 쉽게 무너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시리아에선 안전관리 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지어진 새 건물이 붕괴하는 사고가 종종 있었다”며 “규모 7이 넘는 강력한 지진에 많은 집이 힘없이 무너져내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리아 북부 지역은 반군 점령 지역으로 체계적인 행정 체계도 없고, 정부군의 출입 통제로 외부의 도움도 쉽게 닿지 못하는 상태다. 이로 인해 ‘골든 타임’ 이내에 매몰자 구조 및 이재민 구호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가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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