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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희망’이었던 韓기업… 3500명 해고 칼바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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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갱단 장악과 경기 침체 탓

조선일보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무장괴한이 경찰서를 공격한 이후의 모습. 상인들이 타이어를 불태우고 있다. /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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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 최빈국 아이티에서 섬유공장을 운영해온 한국 기업의 자회사가 현지 직원 3500명을 해고한다. 갱단이 활개를 쳐 정상적인 공장 운영이 어려운 데다 경기 침체까지 덮치면서 대규모 감원에 나선 것이다.

3일(현지시각) AP통신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S&H글로벌은 전날 아이티 섬유공장의 제조설비 1곳을 폐쇄하고 현지 직원 3500명을 정리해고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해고 대상은 전체 직원의 절반에 달한다.

회사는 파업과 국경 폐쇄, 사회적 불안 때문에 공장 운영이 어려워졌고 결국 감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소요 사태가 계속되면서 선적 지연과 생산 중단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고객사들이 주문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에는 갱단이 포르토프랭스의 유류 터미널을 점거해 지역 발전소가 가동을 멈추는 일이 있었다. 이 바람에 S&H글로벌도 2개월 동안 강제로 공장을 폐쇄해야 했다.

경기 둔화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티에서 생산된 의류는 관세 없이 미국에 수출된다. 이 의류들은 월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에 공급된다. 그러나 미국의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고객사들이 안정적인 공급처로 떠나면서 아이티 현지 공장에 대한 주문량이 줄었고, 결국 해고 칼바람이 불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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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기 세아상역 회장(오른쪽)이 2012년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에게 아이티 공장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DB


외신이 S&H글로벌의 대량 해고 사태에 주목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법인은 아이티 섬유 산업단지에서 최대 고용주로 자리매김 한 ‘아이티 희망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S&H글로벌은 한국 의류 생산 수출기업 세아상역이 세운 현지법인이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미국 국무부는 아이티 재건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아이티 북단 카라콜에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했다. 세아상역도 이 사업에 참여하며 카라콜에 의류 공장을 지었다.

산업단지는 251만2396㎡ 규모인데 세아상역은 이 산업단지 첫 번째이자 최대 규모로 입주했다. 2012년 공장 개소식에는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미셸 마르텔리 아이티 대통령 등이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세아상역은 현지에서 2만명을 고용할 수 있도록 7000만달러(약 875억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코로나 이전에는 1만2000개까지 일자리를 창출하며 산업단지 최대 고용주가 됐다.

그러나 정치·사회적 혼란이 해결되지 않고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현지 산업단지에 들어섰던 외국 기업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 한다. 특히 아이티는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피격 사망한 이후 무법천지가 됐다. 지난해에는 정부 연료비 인상 방침에 대해 시민들이 반발한 뒤 무장 갱단이 연일 거리로 나와 소요 사태를 일으키고 있다. 현지 경찰조차 갱단의 폭력을 막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무장 갱단이 외국인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거나 상업적 화물을 훔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9월 한국 외교당국은 아이티 사태에 우려를 표명하며 교민들에게 이웃 나라로 철수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AFP는 “이 산단은 현지 민간 부문 고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이번에 해고되는 섬유공장 노동자들 은 대부분이 여성”이라고 전했다.

[최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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