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경쟁 적고 연고 있는 지역 도전 多
이미지 공천으로 반짝 '소모'되기도
지금의 양극단 정치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비례대표제 확대'가 거론된다. 국회의사당 전경. /더팩트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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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얼굴을 대표하는 비례대표는 정당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우리나라는 전체 의석 300석 중 47석만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선거제 개편 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비례대표 확대' 방안이 대두되고 있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비례의원들, 비례대표 제도 자체에 대한 유권자 신뢰는 두텁지 않다. <더팩트>는 21대 국회에서 활동하는 비례대표 의원 47명의 주요 의정활동과 이들에 대한 인식을 짚어보고, 22대 총선 준비 현황을 살펴봤다. 아울러 비례대표제가 지금의 '양극단 혐오 정치'를 바꿀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 총 세 편에 걸쳐 짚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22대 총선이 약 1년 3개월 남았지만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들은 일찌감치 총선 준비 몸풀기에 나선 모습이다. 21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 47명 중 20명이 출마 지역구를 콕 짚고 국회 재입성을 노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역대 선거를 살펴보면 비례대표의 생존율은 지역구 초선보다 낮다. 당은 공천 과정에서 역량 대신 이미지 중심의 인물을 뽑아 소모하고, 당사자들은 선거를 앞두고 부랴부랴 재선 준비에 나서면서 유권자에게 외면받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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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기준 21대 총선 47명의 비례대표 의원 가운데, 내년 4·10 총선 출마 지역구를 확정하거나, 적극 검토 중인 이들은 총 20명이다. 이들은 주로 당내 경쟁을 피할 수 있거나, 의원직 상실 또는 불출마 예정으로 현역 의원이 사실상 활동하지 않는 곳, 고향이나 직장 등 국회의원 신분 전 활동무대였던 곳을 지역구로 콕 짚었다.
민주당에선 15명 중 8명이 공개적으로 총선 몸풀기에 돌입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기 용인갑 출마를 확정했다. 지난 설 연휴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용인시 처인구의 용인중앙시장을 방문하며 지역구 출마 몸풀기에 나섰다. /권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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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를 대표하는 권인숙 의원은 경기 용인갑을 찍었다. 현역인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이 버티고 있지만 정 의원은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해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인 '7년형'과 벌금 5억 원을 선고받은 상태다. 진행 중인 2심에서도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받거나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되면 사실상 차기총선 출마는 어려워지게 된다. 당내 유력 경쟁자인 이화영 전 민주당 지역위원장도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 중이다. 권 의원은 최근 설 연휴를 앞두고 김동연 경기지사가 용인 중앙시장을 찾았을 때 동행하는 등 공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제기관단체 출신인 김경만 의원은 양향자 무소속 의원의 지역구인 광주 서구을에서 지난해 6월 지역사무소를 열고 기반을 닦고 있다. 다만 민주당 우세 지역인 만큼 당내 경선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천정배 전 의원, 양부남 민주당 법률위원장 등이 출마를 고려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 마지막 순번으로 당선됐던 양경숙 의원은 전북 전주을에 터를 잡았다. 이상직 전 의원이 지난해 5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하면서 현재는 빈자리다. 본선에 올라간다면 오는 4월 재선거에도 출마하는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과 맞붙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혜영 민주당 의원도 출마할 지역구를 확정했다. 지난달 28일 경기 안성시 지역사무소 개소식을 연 최 의원(가운데). /최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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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에서 '인재영입 1호'였던 최혜영 의원은 경기 안성시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달 28일에는 지역사무소 개소식도 열었다. 이곳은 이규민 전 민주당 의원 지역구였으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현재는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이 지키고 있는 곳이다. 지역 정가 반발은 넘어야 할 벽이다. 최 의원은 지난해 7월 지역위원장에 공모했지만 '낙하산'이라는 반발에 윤종군 전 청와대 행정관이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이수진 의원은 우상호 민주당 의원 지역구인 서울 서대문갑에서 몸풀기에 나섰다. 우 의원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현역 의원과의 경쟁이 없는 곳이다. 또 이 지역에 위치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활동한 이력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양이원영 의원은 경기 광명시을로 출마 지역구를 정했다. 지역사무실 공사도 한창이다. 양 의원은 "제가 비례대표로 국회에서 정치하게 된 게 결국 에너지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것인데 그런 운동을 계속할 수 있고 당원이나 시민이 그쪽(환경)에 더 관심이 많은 지역에서 해야 제가 힘을 받으면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수도권 중에서 그런 곳을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정주 의원은 경기 부천 지역에서 차기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다만 지역구는 확정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신분 전 부천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설립하며 활동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부천 지역은 영상문화산업단지, 한국만화박물관 등 관련 산업이 활발한 곳이다.
조수진 의원은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역구인 서울 양천갑에서 활동 중이다. 설 연휴 시작 전날인 지난 1월 20일 지역구인 양천구 여러 시장을 돌며 새해 인사한 조수진 의원(오른쪽). /조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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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에서는 비례대표 22명 중 현재 내년 총선 지역구를 정한 이들은 7명이다. 최근 조직강화특별위원회에서 조수진 의원은 서울 양천갑, 전주혜 의원은 서울 강동갑, 윤창현 의원은 대전 동구, 정운천 의원은 전북 전주을, 노용호 의원은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당협위원장에 임명됐다.
당협위원장 임명은 되지 못했지만 출마 의지를 꺾지 않고 준비 중인 이들도 있다. 서정숙 의원은 정춘숙 민주당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경기 용인병을 노리고 있다. 같은 당에선경기 용인병 지역위원장에 내정됐다가 무산된 법무법인 세종 고석 변호사가 출마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선후배 관계이자 법무연수원 동기다.
허은아 의원도 서울 동대문을을 점찍은 후 거주지를 옮기고 사무실도 개소하면서 공을 들이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 체제에서 조직위원장에 내정된 후 최고위 의결만 남겨뒀으나 당시 당 지도부가 해체되고 들어선 정진석 비대위에서 탈락했다. 이곳 지역위원장은 친윤계로 분류되는 김경진 전 의원에게 돌아갔다.
정의당에선 5명의 비례대표 의원 모두 재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임기 초반부터 지역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비례 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당 차원의 방침도 반영됐다. 강은미 의원은 구의원·시의원 활동했던 광주 서구을에서 출마를 준비 중이다. 지역구에 매주 내려가면서 지지세를 다지고 있다. 류호정 의원은 노조 활동을 했던 성남 분당갑 지역에서 몸풀기하고 있다. 배진교 의원은 인천 남동구 지역으로 정했지만 갑, 을 중에서 고심 중이다. 이은주 의원은 역무역 시절 당고개역에서 근무한 경력 등을 고려해 서울 노원병을 노린다. 지난 2021년에 수락산역 인근에 지역 사무실도 차렸다. 장혜영 의원은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서울 마포을 출마를 준비 중이다.
비례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을 통해 비례대표로 당선됐으나 원정당으로 돌아간 이들도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역구 출마 도전 결심은 섰지만 서울 서대문갑, 동작구 등 지역구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역시 상반기 당 총선 전략을 우선 정하고 지역구를 이달 중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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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비례대표제(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를 분리하는 1인 2표제)가 시행된 건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다. 이때부터 20대 선거까지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240명)해 차기 또는 차차기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이들(37명)은 15.4%다. 갈수록 비례대표의 '생존율'은 감소하는 모습이다.
17대에선 비례대표 62명(승계포함) 중 16명이 지역구 도전에 성공했다. 18대에선 67명(승계포함) 중 11명, 19대에선 59명 중 6명, 20대에선 52명(승계포함) 중 4명이었다. 이중 여성은 21명이다. 정당별(비례대표 당선 당시 기준)로는 민주당 계열 18명, 국민의힘 계열 16명, 진보당 계열 3명이다. 특히 여당인 국민의힘의 경우 19대에선 0명, 20대에선 임이자 의원 1명만 재선되는 등 비례대표 의원의 재선율이 갈수록 떨어졌다.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해 지역구 의원에 도전, 당내 중진으로 성장한 정치인들도 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심상정 정의당 의원,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나경원 전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더팩트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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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량급 정치인 중에는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한 이들도 적지 않다. '17대 국회 비례대표 4인방'이 대표적이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17대 비례대표로 입성해 18대부터 20대까지 서울 구로을에서 내리 4선을 했다. 당 원내대표, 당 서울 시장 후보로 선출되면서 '스타 정치인'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당대표 출마를 둘러싸고 여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나경원 전 의원도 17대 비례대표로 입문해 4선 의원을 지냈다. 유승민 전 의원도 비례대표 의정활동을 발판으로 삼아 4선 중진이 됐고 당 대선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또 다른 대선 후보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17대에 국회에 들어와 18대에서 한차례 고비를 마신 뒤, 19대 때부터 21대까지 진보정당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4선 고지를 밟았다.
초선 비례대표 의원들이 4년간 의정활동을 경험한 후 다음 임기에서도 연속성을 갖고 역량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례대표의 재선은 권고할 만하다. 그러나 기성 정치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정치계를 떠난 이들이 다수다.
생존율이 낮은 이유는 뭘까.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인 비례대표 의원실 관계자는 "정치 후원금도 적고 활동이 굉장히 조심스럽다. 또 아무래도 선거를 안 치러봤기 때문에 조직이 없다. 그게 확실히 큰 것 같다"고 애로 사항을 털어놨다.
애초에 공천 과정에서 대표성과 역량보다는 홍보 효과, 이미지 중심으로 인물을 선정하기 때문에 지역 정서를 중요시하는 유권자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또 우세 지역 공천만 노리고 당내 정치로 타파하려는 소극적인 태도도 비례대표 생존율이 낮은 이유로 꼽힌다.
정치권 관계자는 "모 비례대표 의원은 이번에 설 인사 현수막을 걸었는데 당 지지자분들이 '저 사람은 누구지?' 하더라. 선거 1년 남았는데 인제 와서 준비하면 생판 모르는데 찍어주겠나"라고 지적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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