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5 (금)

이슈 공공요금 인상 파장

'누가 중간에서 빼먹나'…국제가스값 내리는데 난방비는 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유통 구조도 가격에 큰 영향

최근 일부 누리꾼 사이에선 일명 '헨리 허브 가격' 차트가 화제다. 헨리 허브는 뉴욕 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천연가스 선물 가격으로, 현재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상품화된 천연가스가 얼마나 비싼지 보여준다.

문제는 헨리 허브 가격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폭등했다가 최근엔 전쟁 이전 수준까지 하락했다는 데 있다. 가스 가격이 '정상화'되는 시점과 맞물려 국내 난방용 가스 요금은 40% 가까이 치솟았다. 일각에선 "이렇게 되면 난방비를 올릴 필요가 전혀 없지 않았냐"며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왜 국제 가스 가격과 국내 가스값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걸까. 그 원인은 가스의 '유통 구조'에 있다.

뉴욕 가스 가격 지표는 美 천연가스 허브 기준
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픽사베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천연가스는 지구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연소성 가스로, 주로 유전(油田)에 석유와 함께 매장됐거나 가스전에서 뿜어져 나온다. 인류는 드릴로 천연가스를 추출해 화학, 난방, 발전 등 다양한 산업의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뉴욕 선물 시장의 헨리 허브는 대표적인 가스 가격 지표다. 미국 천연가스 운송용 배관이 모이는 '가스 중심지'인 루이지애나주 헨리 허브의 이름을 땄다.

뉴욕 시장이 국제 천연가스 가격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각 국가의 가스 수입액은 이와 다소 차이가 있다. 가스는 수송하기 매우 까다로운 원료이기 때문이다.

PNG·LNG…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가스 유통 구조
아시아경제

뉴욕 상업거래소 헨리 허브 천연가스 선물 가격 추이.(*그래프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간소화됐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천연가스는 '연소성 가스'다.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운송할 수 없으며, 특수한 가공 처리를 거쳐야만 한다. 가장 저렴한 방식은 채굴한 가스를 운송용 배관 안에 흘려 넣어 전달하는 'PNG(파이프 천연가스)'다. 하지만 PNG는 가스 채굴지와 가스를 받는 도시 간 거리가 가까워야만 현실화할 수 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나라가 천연가스를 수입하려면 PNG와는 다른 방식을 이용해야 한다. 일본, 한국, 스페인, 영국 등에서 주로 쓰는 'LNG(액화 천연가스)'다. LNG는 기체 상태의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로 냉각, 그 부피를 무려 600분의 1로 압축해 액화한 것이다.

액화된 가스는 'LNG선'이라는 특수한 선박에 가득 실려 바다 건너 외국으로 수출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LNG선에 저장된 LNG는 'LNG 터미널'이라는 거대한 시설로 옮겨지며, 여기서 다시 가스 형태로 바꿔 배관을 통해 가정으로 운반한다. 이 과정을 전담한 게 도시가스 공사다.

아시아경제

건설 중인 울산 LNG 터미널. 극저온 상태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 LNG는 LNG선착장에서 대형 터미널로 옮겨져 저장된다. /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배관 파이프 하나로 가스를 공장, 가정까지 연결할 수 있는 PNG와 달리 LNG는 연료 가공, 선박 운임, LNG 터미널 저장, LNG의 가스화라는 네 단계를 추가로 거쳐야 한다. 그만큼 운영 비용과 자본 지출이 커진다.

이 때문에 LNG 수입국의 가스값은 국제 가스 가격과는 판이하며, LNG 수입국의 위치에 따라서도 구별된다. 나라마다 운임과 터미널의 효율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국의 가스 가격 벤치마크는 'JKM(일본-한국 마커) LNG'가 훨씬 적절하다. 동북아시아로 향하는 LNG 실물의 가격 추이를 반영한 지표다.

독일을 비롯한 중부 유럽의 '에너지 위기' 또한 이런 가스 시장 구조에 기인했다. 러시아산 PNG에 의존하던 독일은 전쟁 후 러시아 가스 수입을 끊었다. 독일엔 LNG 터미널이 없으므로, 상대적으로 발달한 LNG 터미널을 갖춘 스페인이나 영국 인프라를 이용해 가스를 받아야만 했다.

유럽 가스 시장의 큰손인 독일의 수요가 갑자기 LNG로 몰리자 유럽 LNG 가격도 덩달아 급등, 러시아 PNG를 쓰지 않던 나라들도 비용을 감내해야 했다. 파편화된 가스 시장은 조금만 수요가 몰려도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미수금이 만든 원료비-요금 '갭'
아시아경제

삼성중공업 LNG선. 액화 형태의 천연가스를 극저온 화물창에 저장한다. /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제 가스 선물과 LNG의 가격이 다르다고 해도, 모든 가스 제품의 원료가 되는 천연가스값이 내려갔다면 한국 가스 공사와 도시 공사의 부담은 일부 해소됐다는 게 아닐까. 실제 JKM-LNG 가격(MMBtu 기준)도 지난해 3분기 5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이달 중순에는 26달러대까지 하락했다. 왜 인제 와서 국내 가스 요금이 인상되는 걸까.

'원료비 연동제'를 실시하는 산업용 가스 요금은 실제로 최근 소폭 감소했다. 하지만 주택용 가스는 원료비에 연동해 가격이 오르내리지 않는다. 원료비나 인건비, 운영 비용 등의 일부는 가스 공사가 부담하고, 가계는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생기는 손실은 '미수금'으로 분류된다.

지난 1년간 전쟁 등의 여파로 천연가스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미수금도 급격히 불어났다. 가스 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원료비 미수금은 약 9조원에 육박한다. 이를 연내에 해소하려면 가스 요금은 현재의 3배가량 올라야 한다는 암울한 전망도 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