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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화물연대 총파업

법과 원칙 앞 힘 못썼다…정부 '완승'으로 끝난 화물연대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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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중앙일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집단 운송 거부를 철회한 9일 오후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일대에서 화물차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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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가 16일 만에 끝났다. 정부의 완승이란 평가다. 화물연대는 빈손으로 돌아섰다. '백기 투항'이라는 말이 나온다. 민주노총의 총파업도 맥없이 막을 내렸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계 관계자는 "일등 공신은 경제적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법과 원칙을 고수한 정부와 이를 지지하고 인내한 국민"이라고 말했다. "사회규범(법·원칙)을 통한 국가 작동 원리를 재정립했다"는 설명을 덧붙여서다.

이번 화물연대 사태 해결 과정은 향후 노사관계와 노동 개혁 여정에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에선 힘으로 밀어붙이는 '떼법'이 사실상 묵인됐다. 사업장 점거가 비일비재했지만 정부나 경찰은 고발장이 접수돼도 눈을 감았다. 노동계가 '촛불 채권자'로서 국가 법체계를 뛰어넘는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노동계에 빚을 진 게 없다. 이게 법과 원칙을 잣대로 삼아 정책을 추진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화물연대 사태는 그 밑거름 위에서 싹 튼 정책 기조가 투쟁을 내세운 강경한 노동운동에 뼈아픈 교훈을 안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법 앞에 떼법은 동력을 상실했다. 지난 정부에선 보듬어졌던 불법으로 점철되는 강경 투쟁노선이 현 정부에선 힘을 쓰지 못하는 맹점으로 고스란히 노출됐다. 대화와 타협의 기초가 되는 논리와 합리는 노동계에겐 취약한 고리라는 점도 가감없이 드러났다.

사실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가 화물기사의 뜻에 따라(투표) 철회된 것은 애초 지도부에 의한 무리한 파업이었음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화물연대 부산본부가 투표 없이 일터 복귀를 선언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투표로 철회 여부를 결정하는 행위는 지도부가 조합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는 내부 목소리는 산업현장의 노동자와 노동계 지도부 간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총사퇴'로 책임은 지지 못할망정 지도부만 쏙 빠진다는 불만이 읽힌다. 화물을 운송하지 못해 입은 화물기사의 손실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지도부 중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결국 노동계 내부적으로는 화물기사만, 국가적으로는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냈을 뿐이다.

투쟁 이외에 대안이 없는 강경 투쟁의 무모함과 부작용을 가감 없이 노출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번 사태로 민주노총은 큰 상처를 입었다. 파업 철회 투표를 앞두고 민주노총은 14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6일 강행한 총파업에 대형 사업장이 거의 불참한 상태에서 또다시 꺼낸 카드가 전국 동시다발 재파업이었다.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 철회로 총파업 계획을 접어야 했다. 장신철 한국기술교육대 고용서비스학 교수는 "노동운동이 합리성을 상실한 채 물리력과 떼법에 의존하는 구시대적 행태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전 국민에게 오히려 각인시킨 행동"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시대 변화를 못 읽는 노동운동의 폐쇄성이 사라지지 않으면 고립을 자초하고 노조의 존립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MZ세대는 이번 파업 사태에 등을 돌렸다. MZ세대는 노동시장의 45%에 달할 정도로 주도 세력으로 등장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반기를 들며 불참을 이끌어낸 것도 이들이었다.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 당시 정부가 운송개시 명령을 발송하자 이를 스스럼없이 받아든 사람 상당수도 MZ세대 기사들이었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MZ세대를 외면한 노동운동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경영계는 한시름 덜었다는 반응이다. 모 기업 인사노무담당 임원은 "(정부의 대응이)노조의 무분별한 행동에 버틸 수 있는 힘을 찾아줬다"고 말했다. 모 건설사 대표는 "지난 정부의 과오가 내재화해 곪아 터지기 전에 수술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불법에 힘 한 번 못 쓰고, 그저 감내해야만 했던 지난 정부에서의 노사 힘의 불균형이 바로잡히길 바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추진하는 '노란봉투법'은 큰 암초를 만난 격이다. 노란봉투법은 불법행위를 하더라도 노조에 의해 저질러졌다면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게 골자다. 불법이 아니면 힘을 못 쓰는 노동계에 힘을 실어주려 불법을 합법으로 바꿔주겠다는 논리가 먹힐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민주노총과 화물연대의 투쟁에 보인 국민의 싸늘한 여론을 고려하면 그렇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지시로 꾸려진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노동개혁 과제 도출을 끝냈다. 정부는 연구회의 권고문이 나오는 대로 개혁에 착수할 예정이다.

다만 분쟁과 갈등을 정부의 힘으로만 막으려 들면 재발할 수 있다. 정책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반발과 부작용에 직면할 수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법을 막을 본래의 의무가 정부에게는 있는데, 지난 정부에서 이걸 이행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화물연대와 민주노총의 총파업 사태를 계기로 법과 원칙을 확실하게 세우되 그 속에서 타협하는 문화를 정착시킬 방안에 대한 숙의가 필요하며, 이는 윤 정부가 향후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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