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KBS 역사 관련 방송에서는 흥미로운 내용이 소개되었다. 바로 전쟁이 술을 만들어 냈다는 것. 중국과 대만의 대치 상황에서 태어난 술 ‘금문 고량주’(사진)에 대한 이야기다.
금문(金門)이라는 이름은 대만이 지배하는 섬 진먼다오(金門島)에서 나온 명칭. 흥미로운 것은 진먼다오 위치다. 대만 영토지만 중국 영토와 4㎞밖에 안 떨어져 있다. 서울의 한강 왕복 거리를 두고 중국과 대만이 대치하고 있는 곳이 바로 진먼다오인 것이다. 대만 본섬하고는 200㎞가 떨어져 있는 상황이니 늘 중국 위협에 노출이 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작은 1949년. 중국 본토를 홍군에게 빼앗긴 국민당 대만군은 최후의 방어선을 이 진먼다오에 치게 된다. 그러자 중국의 인민해방군 군대는 약 9000명의 병력으로 공격하고 1만명 정도의 병력을 상륙시키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국민당은 철저하게 대비, 인민해방군을 맞이하여 사수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의 초점은 한반도로 이동, 대만과의 전쟁은 뒤로 미뤄졌다.
그렇다 해도 진먼다오는 중국하고 너무나도 가까웠다. 포 한 발만 쏘더라도 언제든지 닿을 수 있는 곳. 그래서 당시 진먼다오의 방위사령관인 후롄 장군은 군인들과 민간인의 공포심을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고량주를 빚으라고 지시했다. 더불어 고량주의 원료인 수수를 재배하라고 독려했다. 땅 역시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고, 바람이 세고 기후가 건조해 벼농사가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수는 물을 대지 않아도 간단하게 재배가 가능하고 쌀처럼 탈곡 등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척박한 땅에서는 주로 수수 재배가 많았고, 그 수수로 빚은 고량주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술의 숙성은 화강암으로 이뤄진 지하 갱도에서 이뤄진다. 전쟁 흔적이 그대로 술에 묻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도 진먼다오에 대한 정복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1958년도에 있던 진먼 포격전이다. 8월 23일 중국 본토에서 포격이 시작되고 한 달 동안 중국측 48만 발, 대만측 12만 발 등 엄청난 포탄이 해당 지역을 초토화했다. 이에 미국과 소련이 전투가 확대되는 것을 우려, 국지전을 중단하도록 압박하고 이후 진먼다오 대치는 소강상태로 진행된다. 금문 고량주의 소비가 많아진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
진먼 포격전 당시 워낙 많은 포탄이 떨어지다 보니 불발탄도 많았는데, 대부분 고량주의 원료인 수수밭에서 많이 나오게 된다. 결국 술은 미움과 증오의 포탄조차 포용하고 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금문 고량주가 알려주는 또 다른 술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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