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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빌드업 축구와 벤투 감독의 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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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2022카타르월드컵이 조별리그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한국은 또다시 16강진출을 놓고 경우의 수를 따져봐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지만 한 가지 위안거리를 찾았다. 세계 축구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았고 월드클래스와의 격차가 눈에 띄게 좁혀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2카타르월드컵을 통해 세계 축구의 대세는 빌드업(build-up) 축구라는 게 명백해졌다. 한국도 빌드업 축구를 장착했다. 아무리 개인 전술이 뛰어나더라도 팀 전술의 흐름에서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면 수준급의 경기력은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축구는 11명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제대로 된 경기력이 발휘되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축구는 분명히 진화했고 월드클래스 진입 역시 결코 멀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빌드업 축구는 건축물을 쌓아올리 듯 플레이를 전개한다는 뜻이다. 빌드업 축구를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압박축구의 실체를 해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유용하다. 예전 축구는 하프라인을 넘기까지 수비가 적극적으로 따라 붙지 않고 기다려주는 플레이 스타일이 대세였다. 그랬던 느슨한 축구가 2000년대들어 적극적인 압박수비로 변모하면서 축구의 흐름은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압박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세졌고,그 압박은 골키퍼가 골을 소유했을 때부터 시작되는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 탈압박이라는 니즈(needs)가 창조한 게 바로 빌드업 축구인 셈이다. 패싱게임으로 상대의 강한 압박을 벗어나는 게 빌드업 축구의 요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공은 사람보다 빠르다. 그래서 패싱게임은 압박을 벗어나는 가장 중요한 세부전술로 뿌리내리게 된다. 결국 공격 측은 해당 지역에서 아웃넘버(out nunber·수적 우위 확보) 상황을 만드는 게 필수적이다. 상대의 강한 압박이 가해지는 지역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되면 패싱게임을 통해 탈압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출전 32개국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빌드업 축구를 보여줬다. 빌드업 축구로 대변되는 현대축구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극치다. 미니멀리즘이 추구하는 단순함과 간결함이 플레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강한 압박과 이를 벗어나기 위한 패싱게임, 볼을 따내면 전광석화 같은 역습,이게 바로 빌드업 축구의 큰 줄기다. 강한 팀일수록 패스 스피드가 빨라지고 공간 침투가 정교해진다. 압박의 강도,패스의 스피드,역습에서의 공간 침투능력 등 이 세가지 요소의 정교함과 완성도가 팀 수준을 결정한다.

한국이 세계 축구의 흐름에 조응하기 시작한 첫 월드컵은 2002한·일월드컵이 아닐까 싶다. 거스 히딩크라는 명장을 영입해 세계 축구의 메인 스트림에 올라타면서 한국 축구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히딩크를 통해 전수받은 선진 축구의 두 가지 포인트는 한국 축구에 새 지평을 열었다. 1,2,3선이 함께 움직이면서 견고한 프레임을 깨트리지 않는 압박축구의 실체를 배운 게 첫 번째 소득이었다면 두 번째 소득은 체력에 관한 현대적 접근법이었다. 심폐 지구력을 체력으로 이해했던 편견에서 비로소 벗어났다. 심폐 지구력보다 회복력을 강조한 히딩크의 선진 트레이닝기법은 한국 축구에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2022카타르월드컵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파울루 벤투 감독은 빌드업 축구에 대한 남다른 집념으로 한때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자신의 빌드업 축구에 대해 “한국 축구에 맞지 않는 옷”이라며 쏟아진 날선 비판에도 벤투 감독은 뚝심있게 밀고 나갔다. 벤투 감독의 뚝심은 결과에 상관없이 호평을 받고 있다. 16강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이 보여준 조별리그 두 경기는 세계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1무1패의 초라한 성적표지만 세계 축구계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정도로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철학과 뚝심은 그래서 중요하다. 고집과 뚝심은 결국 백지 한장 차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면 뚝심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건 고집이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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