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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리듬 타면 무서운 '타고난 피지컬' 가나…그들도 약점은 있다 [이천수의 호크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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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전을 앞두고 훈련하는 손흥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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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 각 대륙의 치열한 지역예선을 통과한 강호들이 득실거리는 '축구 정글'이다. 변수도 많다. 이곳에 언더독(이길 가능성이 작은 약자)은 '카멜레온'이 될 필요가 있다. 자유자재로 몸의 색을 바꿔 위기를 이겨내는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변칙으로 우승 후보 독일을 잡은 일본 축구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짧고 빠른 패스를 앞세운 점유율 축구가 전매 특허다. 하지만 독일전에선 '잘하는 것'을 포기했다. 한 수 위 전력의 상대에겐 통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전반 내내 수비에 치중한 뒤, 역습 공격을 했다. 잔뜩 웅크린 채 기회를 엿보던 일본은 후반 중후반부터 과감한 공격에 나서서 독일을 격파했다. 일본의 점유율은 30%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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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월드컵에서 아프리카 팀 토고를 상대로 프리킥 골을 성공한 이천수.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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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 경기 우루과이전은 더 놀라웠다. 결과만 따지면 0-0 무승부였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벤투호의 '맞춤식 전술'이 돋보였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지난 4년간 후방부터 패스로 공격을 풀어나가는 '빌드업 축구'에 공들였다. 그런데 우루과이전 전술은 평소와 달랐다. 패스 위주의 경기를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빠른 역습을 노리는 '변칙 빌드업'을 썼다.

수비의 김영권이나 김민재가 긴 패스로 한 방에 상대 뒷공간을 노리는 장면도 몇 차례 연출됐다. 지금까지 벤투호에서 보기 힘든 공격 방식이었다. 강한 미드필드진을 보유한 우루과이를 대비한 전술로 보였다. 역습과 빌드업 축구의 적절한 조화였다고 부를 만했다. 비겼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경기 내용 면에서도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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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월드컵에서 빌드업과 역습을 섞은 맞춤식 전술을 선보인 파울루 벤투 감독.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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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가나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한국은 또 한 차례 더 '색깔'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가나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역 시절 토고(월드컵), 말리(올림픽), 가나(평가전) 등 아프리카 팀과 여러 차례 맞붙었다.

그때마다 전 포지션에 걸쳐 스피드와 힘이 압도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타고났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한국도 과거에 비해선 선수들의 체격과 신체 능력이 좋아졌지만, 아프리카 선수들에 비할 순 없다. 게다가 리듬, 즉 경기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막을 방법을 찾기 어렵다. 다행히 이들도 약점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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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해설위원이 경계 대상으로 꼽은 가나의 토마스 파티(왼쪽).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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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조직력은 완성도 떨어진다. '아프리카 팀은 골 세리머니 할 때 가장 조직력이 눈에 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한국은 이번엔 업그레이드판 '빌드업 축구'가 필요하다. 가나가 이번 월드컵 첫 경기에서 브루노 페르난데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끄는 포르투갈 미드필더진에 고전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쉽다. 좀처럼 경기 흐름을 빼앗지 못한 가나는 후반전 들어 잦은 실책을 범한 끝에 고배를 마셨다. 한국은 끈끈한 조직력을 극대화해야 개인 능력이 탁월한 가나를 이길 수 있다.

가나의 미드필더 토마스 파티는 경계 대상 0순위다. 거구(키 1m85㎝·체중 75㎏) 파티는 과거 가나의 에이스였던 에시앙과 닮았다. 활동량이 왕성하고 몸싸움이 뛰어나다. 경기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상대를 끈질기게 괴롭힌다. 황인범과 이재성을 중심으로 동료에게 주고 빠지는 영리한 패스 플레이로 상대와 정면 대결이나 경합은 굳이 할 필요 없다. 활동량에선 뒤지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패스로 중원을 장악하는 편이 낫다. 가나는 일대일에 강하지만, 협력 수비엔 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원을 장악한다면 한결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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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가나전 공격 선봉에 설 한국의 키 플레이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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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수비진은 아프리카 팀 중에서도 조직력이 좋은 편이지만, 한국의 에이스인 손흥민이 충분히 뚫을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황희찬의 부재는 아쉽다. 우측 라인에서 황희찬의 저돌적인 돌파가 있었다면, 반대편의 손흥민에게 몰린 수비수도 줄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 없다. 한국엔 황희찬을 대체할 수 있는 공격 자원이 충분하다. 우루과이전에서 맹활약한 나상호, 후반 조커 정우영, 베테랑 권창훈 등이 출전 준비를 마쳤다. 남은 건 자신을 믿고 그동안 쌓을 실력을 그라운드에서 유감없이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드러난 듯 아시아 축구는 밀리지 않는다. 한국은 그중에서도 강하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주역이자, 2006 독일월드컵 토고전 프리킥 골의 주인공인 이천수가 2022 카타르월드컵 주요 인물 및 경기 분석을 중앙일보에 연재한다. '호크아이(Hawk-Eye)'는 스포츠에서 사용되는 전자 판독 시스템의 이름이다. 축구 지도자 자격증 중 가장 급수가 높은 P급 자격증 취득을 앞둔 이천수는 매의 눈으로 경기를 분석해 독자에게 알기 쉽게 풀어드린다. 촌철살인은 덤이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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