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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이슈 슈퍼컴퓨터 시대

[인터뷰] 소토롱고 레노버 ISG 부사장 “韓 기상청에 8배 빠른 슈퍼컴퓨터 공급… 클라우드 인프라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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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윌프레도 소토롱고 레노버 ISG 수석 부사장겸 최고 고객 책임자(COO)가 지난 10일 서울 역삼 레노버 ISG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레노버 IS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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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PC기업인 레노버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쓴 회사로 유명하다. 1984년 중국 ‘중관춘(中關村·베이징에 있는 창업 메카) 1세대’ 소규모 회사로 시작해 2005년 IBM의 PC 사업을 인수, 8년 만에 세계 PC 1위 자리에 올랐다. 2014년에는 IBM의 x86 서버(대형컴퓨터) 사업부를 인수하며 기업용 인프라 시장에 발을 들였다. 5년 전부터는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 시장에 진출해 사업 규모를 키우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 분야를 담당하는 레노버 ISG는 높은 성장세를 보이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 세계 슈퍼컴퓨터 시장 점유율 1위인 레노버 ISG는 지난 2년간 한국 시장에서 약 150% 고속 성장했다. 2년 전 한국 기상청에 슈퍼컴퓨터를 공급해 계산 속도를 8배 높이면서도 전력 소비를 기존의 4분의 1로 줄이는 성과를 냈다. 코로나19로 해외 엔지니어가 한국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에서 국내 자원만을 활용해 1만대에 달하는 슈퍼컴퓨터를 도안대로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해외 엔지니어들이 상주하지 않고 현지 인력만으로 슈퍼컴퓨터 구축에 성공한 사례는 흔치 않아 업계 주목을 받았다. 레노버 ISG는 슈퍼컴퓨팅 외에도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이를 다른 기업에 빌려주는 클라우드 및 서버·스토리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윌프레도 소토롱고 레노버 ISG 수석 부사장 겸 최고 고객 책임자(COO)는 지난 10일 서울 역삼 레노버 ISG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한국 시장의 성장률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톱 수준이다”라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글로벌 공급망 교란 이슈로 반도체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레노버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신뢰’ 덕분이다”고 말했다. 그는 “레노버의 제품·서비스 포트폴리오가 전 세계 모두 동일한데도 다른 시장에 비해 한국 시장 성장세가 월등히 빠른 것은 직원들이 고객사에 얼마나 신뢰를 줬느냐의 차이가 가장 크다고 본다”며 “아무리 차별화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고객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화폐인 신뢰가 없으면 그 어떤 시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소토롱고 부사장과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기업 문화 조성 방안부터 지난달 발생한 카카오 메인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과 데이터센터 시장 전망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소토롱고 부사장은 미 조지아 공과대학에서 기계 공학 석사 학위를 받고 IBM 로봇 제품 개발자로 업계에 첫발을 들였다. 이후 IBM에서 28년 동안 다양한 직군을 거쳐 올라가 최종 글로벌 영업 부사장직을 지냈다. 2014년 레노버에 합류해 글로벌 영업 부사장, 데이터센터 그룹 총괄 책임 등을 두루 거친 뒤 3년 전부터 레노버 ISG 수석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다음은 소토롱고 부사장과 일문일답.

— 한국 시장에서 집중하고 있는 분야와 전망은 어떤가.

“한국 시장은 성장세가 빠르고 전망도 밝다. 세계가 놀랄 정도로 크게 성공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있는 곳인 만큼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장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은 레노버의 든든한 공급 업체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보유한 대기업을 포함한 기업을 대상으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인프라 공급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한국 서버 시장에서 레노버 ISG 점유율은 3위인데, 3년 내 1위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쉬운 목표는 아니지만, 레노버 데이터센터에 대한 고객사들의 신뢰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 달성 가능하다고 본다.”

— 한국 기상청에 슈퍼컴퓨터를 공급한 사례 외에 또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객 신뢰를 쌓은 사례가 있나.

“애니메이션 ‘슈렉’ 제작사 드림웍스가 2020년 2월 애니메이션 렌더링 작업을 위해 슈퍼컴퓨터를 주문했다. 한 달간 장비를 준비한 뒤 출하하려는 직전에 코로나19로 미국 전역이 봉쇄됐다. 드림웍스 입장에서는 고성능 시스템이 있어야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으니 하루가 급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동부에 있던 레노버 직원들이 직접 차에 장비를 싣고 운전해 서부 LA까지 갔다. 여기서 2~3주 머무르며 드림웍스 스튜디오에 슈퍼컴퓨터 설치를 완료했다. 당시 드림웍스에서도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자기네들도 출근을 못 하는 상황인데 레노버 직원들이 말도 안 되는 헌신을 해줬다는 평을 들었다. 케이트 스완보그 드림웍스 수석부사장은 심지어 ‘너무 이상한 경험을 했다’면서 ‘코로나19 봉쇄로 마트에서 휴지도 못 구하는데 슈퍼컴퓨터는 구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고객이 요구하는 의무 이상으로 신뢰를 쌓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대표적인 사례다.

슈퍼컴퓨터 외에도 다른 장치를 어렵게 공급한 사례는 또 있다. 코로나19가 심해졌던 시기, 어느 목요일에 스페인 중앙정부 보건부에서 전화가 왔다. 갑자기 당장 재택근무를 해야 하니 일요일까지 원격 근무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했다. 딱 나흘을 준 거다. 처음 전화를 받고, 고객 제안서 쓰고, 계약서 사인해 발주하는 과정이 목요일 하루에 다 이뤄졌다. 레노버 유럽 공장은 헝가리에 있는데 당장 그날 목요일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에 헝가리 공장에서 제품을 싣고 스페인 마드리드에 당일 도착해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에 설치를 끝냈다. 정말 놀라운 사례다.”

—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직원들이 발 벗고 나서는 태도는 어디서 비롯된다고 보나.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이런 태도가 나타난다고 본다. 우선 레노버 직원 사이에는 창업가 정신이 살아있다. 웬만한 기업이 다 창업가 정신이 있다고 얘기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기업에서 창업가 정신이 계속 살아있는 건 어려운 일이다. 둘째는 서로를 북돋아 주고 긍정적으로 봐주려는 문화 덕분이다. 리더부터 아래 직원이 반대 의견을 얘기하더라도 직원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기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자세가 갖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고, 이런 분위기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직원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객이 필요한 걸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 직원들이 창업가 정신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들이 리더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리더들에게 명확한 권한을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 제품 가격 책정이나 특정 부문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권한을 명확하게 주는 것이다. 레노버를 거쳐 간 모든 리더가 다 잘해왔다고 얘기할 순 없지만, 리더 역량이 레노버가 성공한 비결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IBM에서도 오래 근무했지만, 레노버만큼 창업가 정신을 발휘하게 하는 분위기는 좀 약했던 것 같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직원들이 리더와 소통이 어렵지 않게 언제든 잘 되게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실제 한국 레노버 ISG 한국지사 직원들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토롱고 부사장 등 타국에 있는 본사 리더에게 연락을 취하면 채 2시간이 지나기 전에 답이 온다고 전했다.

— 직원 외에 회사의 또 다른 핵심 축인 대표 제품의 경쟁력이 궁금하다. 레노버 ISG 슈퍼컴퓨터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우리 슈퍼컴퓨터의 경쟁력은 ‘넵튠’(냉각 기술)이다. 레노버 넵튠은 물을 이용해 서버에서 발생한 열을 식히는 냉각 기술로 별도의 냉각 장치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또 냉각 과정에서 따뜻해진 물은 재활용한다. 이 독자적인 기술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한 건 10년 전이다. 냉각이 쉬울 것 같아도 실제 구현해 적용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데이터센터에서 물 한 방울이라도 누수되면 센터 자체가 망가진다. 따라서 하드웨어 인프라만큼 중요한 게 이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다. 냉각 기술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냉각 요건에 따라 컴퓨터 작업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등 여러 변수를 관리하기 위한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레노버는 이 부분에서 탁월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또 레노버는 넵튠 수랭(水冷) 기술을 슈퍼컴퓨터 영역뿐 아니라 전통 인프라 장치에도 확장 적용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에서 열을 뽑아서 물로 냉각시켜 다시 센터에 공급하는 기술을 전통적인 인프라 장치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따끈한 소식인데, 레노버 역사상 처음으로 최신 AMD 칩에 수랭 기술을 접목해서 쓸 수 있게 제공할 예정이다. AMD에서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칩에 최첨단 수랭 기술을 적용하는 건 시장에 완전히 새로운 옵션을 제시하는 거라서 이미 파이프라인(사업권)도 꽉 차 있다. 이미 많은 고객이 이 솔루션을 도입하고 있다.”

— 최근 전 세계 데이터센터발(發) 수요가 폭증하면서 올해 처음 서버용 반도체 사용량이 모바일용 반도체 사용량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데이터센터 시장 전망은 어떤가.

“데이터센터 시장 자체는 지속 성장하겠지만, 성장률은 둔화될 것이다. 지난 2년간 팬데믹과 인프라 교체 주기 등이 맞물려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다. 이제부터는 기업들이 경기 침체를 마주하고 투자를 줄일 것이다. 다만 이건 전반적인 데이터센터에 대한 전망이고, 좀 더 세분화해서 보자면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 쪽은 계속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 최근 한국 최대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의 메인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발생해 한국인 대부분이 쓰는 메신저 등이 이틀 넘게 마비됐다. 레노버도 유사 경험이 있나. 이런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어떤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가.

“이런 문제는 대개 인간의 실수로 발생한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큰 사고가 처음이라서 많은 충격을 받았겠지만, 사실 미국에선 아마존이나 MS, 구글 시스템이 다운되는 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기술만 놓고 보면 자체 복구 능력이나 몇 단계 대비가 되어 있더라도 인간이 이걸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다만 인간의 실수를 아예 없앨 수 없으니, 기술적으로 모든 층위에 유사시 회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레노버의 경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서로 백업하는 구조를 만들고 네트워크에 회복력을 높이는 장치를 심는다. 또 설비마다 전력이나 냉각 기술을 중복 공급할 수 있도록 해 유사시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해놓는다. 하지만 이렇게 해놔도 누군가 실수를 하면 한 곳에서 문제가 된 게 전체 시스템 손실로 파급되는 경우가 많다. 현실적으로 데이터센터가 커지고 시스템의 밀도와 복잡도가 높아지면서 이런 문제는 더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다.”

— 코로나19 이후 많은 IT 기업이 수요 침체로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데 레노버 상황은 정반대인데, 어떤 영향이며 앞으로 사업 계획은 무엇인가.

“3분기 레노버 성장률은 33%를 기록했고, 이번 4분기에도 두 자릿수 성장률을 무난하게 달성할 전망이다. 7~8년 전 사업 다각화를 결정하고 투자를 늘린 게 이제 효과를 보이고 있다. 8년 전만 하더라도 ‘레노버’ 하면 대부분이 PC 회사라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는 데이터센터와 스마트폰, 서비스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밀고 왔다. PC 같은 디바이스보다 변동성이 덜한 영역에 투자를 늘려 사업 안정성을 꾀한 것이다. 또 4~5년 전 모든 데이터센터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하고 하이퍼스케일러 시장에도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고객이 다변화됐고, 엔터프라이즈 시장이 주춤하더라도 클라우드 시장이 유지되니 일관된 성적을 낼 수 있게 됐다. 자체 생산 공장도 규모의 경제를 이뤄 효율성이 훨씬 높아졌다. 레노버는 글로벌 시장보다 최소 2배 이상 성장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도 미·중 갈등 관련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는 군사 관련 프로젝트를 제외하고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해나갈 계획이다.”

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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