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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성폭력·미투의 고통·저항에 ‘같이 살자’며 손 내미는 연대의 비평[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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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스의 그림자

강지희 지음 | 문학동네 | 576쪽 | 2만5000원

경향신문

강지희는 문단 내 성폭력·미투 운동 같은 시대의 사건을 다루며 “고통에서 촉발되는 도덕적 저항”을 분석한다. “‘같이 살자’며 손 내미는 연대의 비평”을 시도한다. 2018년 3월 22일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를 주최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운동참여 여성들이 청계광장 주변에 설치한 미투 게시판을 손보고 있다. 향신문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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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희는 201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우리를 덮치며 범람했던 것”에 관해 말한다.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 문단 내 성폭력과 이어진 미투 운동, 여성 혐오와 범죄 등이다. 맥심코리아 표지 논란과 ‘소라넷’ 사태, 강남역 살인 사건, 성우 김자연씨 해고 등 크고 작은 사건이 이어졌다.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 제기의 목소리가 한국문학 장 안에 들어온 건 2016년 10월 ‘#문단내성폭력’ 말하기 운동 때부터다. 강지희는 “문학의 이름으로 자행된 사건”을 두고 “‘문학평론가로서의 나’가 ‘시민으로서의 나’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뼛속 깊이 느끼게 해준 것이 ‘#문단내성폭력’ 해시태그 운동과 ‘미투 운동’”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시대 흐름 안에서 문학을 바라본다. 작품의 미학적 성취와 별개로 시대적 타당성을 확보하는지를 따진다.

책은 2010년대 중반 이후 광장에서 비롯한 여성 문학에다 ‘여성 스릴러’의 새로운 경향, 퀴어의 미학과 정치 등을 두루 분석한다. 강지희는 책머리에서 “문학이 순수하지도 숭고하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맨눈으로 보았다”고 말한다. 그간 문학에 깃든 진보와 낙관이 의문과 회의로 다가왔다. “세계를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망치지는 않았는가?”

강지희는 문단 내 성폭력 사건 이후 문학이 “잠재적 통념에 맞서 싸우며 누군가를 해방시키고 성장하는 데 기여하는 영광 대신, 위계 관계 속에서 약자를 위협하고 폭행했으며 심지어 연대를 끊고 고립시켰다는 추문을 얻었다”고 본다.

보편적인 선악, 아름다움과 윤리를 보는 게 불가능해진 상황 즉 “파도가 쓸려나간 해변, 낭만주의의 껍데기가 깨어져 나간 자리”에서 새롭게 다시 문학을 읽었다. 이 혼란과 상실의 시기 강지희가 끄집어내 응결한 건 ‘파토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대 위에서의 죽음, 고통, 부상 등과 같이 파괴 또는 고통을 초래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이 정의에서 강지희는 인간 삶의 본령인 파괴와 고통의 양상을 분해해 보려 했다. “고통에서 촉발되는 도덕적 저항”과 “기존 의미들을 파산시키는 날 선 파토스”를 주목했다.

2010년대 중반 ‘문단내성폭력’·‘미투 운동’ 이후 문학 분석
인간 삶의 본령인 파괴와 고통의 양상 분해하려는 시도
책임과 연대 의식을 담아 ‘여성문학사 계보’ 치열하게 재점검


“나의 평론이 무언가에 비유된다면 강렬하고 차가운 로고스의 빛이 아니라, 어둠까지도 부드럽게 포용하는 파토스의 그림자에 가깝기를 바랐다. 파토스가 지나간 뒤 선연하게 남은 것들을, 그 격정과 상실의 낙차가 만들어내는 흔적들을 정확히 기록하고 싶었다.” 그가 뜻하는 그림자는 정적인 어둠이라기보단 “시대를 또렷하게 응시하며 영향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바꾸며 계속해서 나아가는” 능동적이고 동적인 것이다.

‘고통과 감각’은 자아를 규정한다. 강지희는 “고통이 몸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함으로써 어떤 사회구성체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겹쳐질 때 비로소 고통은 분석의 대상이 아닌, 오롯이 고유한 고통 자체로 남아 응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린 다만 너의 고통을 자매처럼 느낄 뿐이야.” 강지희가 제1부 1장 맨 앞에 인용한 수전 손태그의 말과도 이어진다. 강지희는 “(세기를 넘어 집요하게 반복되는) 여성을 둘러싼 어떤 고통과 조용한 비명들”을 두고 “이 고통의 무게를 나눠 지는 동감의 힘이야말로 문학이 오랫동안 망각하지 않고 지켜내온 근본적인 동력”이라고도 했다.

이 ‘파토스의 그림자’의 비평은 “다른 이에게 ‘같이 살자’며 손을 내미는 연대의 비평”이기도 하다. 이 연대는 “글을 쓰는 모든 여성은 일종의 생존자”(에이드리언 리치)라는 인용과도 연결된다. 한정현의 <줄리아나 도쿄>에서 강지희가 확인한 건 “‘연대자-되기’라는 수행적 과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강지희는 연장선에서 적극적으로 저항과 투쟁, 연대의 기록을 찾아내고, 텍스트의 맥락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 텍스트 중 하나가 김동인의 데뷔작 <약한 자의 슬픔>이다. 강지희는 1919년 텍스트를 지금 잣대로 여성 혐오라 비판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라고 여긴다. 성폭력 피해자인 주인공 ‘엘리자베트’가 “울고 자학하는 피해자의 자리를 넘어, 반격의 행위” 즉 법에 기대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시도에 주목한다. “자신의 고통을 더는 방관하지 않겠다는 결심, 세상의 편견을 무릅쓰고 가장 먼저 법정 앞으로 나서는 엘리자베트 위에 ‘미투 운동’이 겹쳐지지 않는가. 여자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그들은 공적인 자리에 나와 증언하고, 고발한다.”

감정이입과 응시, 연대가 새로운 공동체의 감각을 생성한다. “강남역 살인 사건에, 불법 촬영물의 공유와 카르텔에, 그리고 이제 다시 버닝썬 게이트에 분개해 거리로 나오는 여성들의 말과 움직임들은 단순히 합리성이라는 언어로 포획될 수 없는 공감의 힘을 바탕으로 공동체적 감각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광장의 문제도 비평 대상이다. 황정은의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승리한 광장이 누락해버린 목소리들을 끌어올리며, 형식적인 전환점을 보여주는 소설”로 규정한다. 이 소설엔 2016년 11월26일 광화문 집회도 등장한다. “惡女 OUT”이라는 손팻말을 든 남성과 청와대를 향해 “씨-발년!”이라고 외치는 발언자, 웃으며 손뼉 치는 사람들을 묘사한다.


☞ [기자칼럼]병신년과 체제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612082111015


강지희는 광장에서 여성이라는 성별이 지워야 할 결격 사유였다고 본다. “왜 ‘모두’를 위한 혁명이 일어나는 광장의 자리에서 ‘여성’들만은 거듭 교묘하게 배제되는가. 함께 나란히 투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별이 소거된 채 자리하고 있거나 성적인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당해야 하는가”라고 되묻는다.

비평집은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영화, 드라마에 관한 평을 두루 녹였다. 강지희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 개사곡이 2018년 불법촬영물 등을 고발하는 단체 ‘불편한 용기’의 또 다른 광장에서 다시 불린 데서도 새 의미를 찾는다. 팡틴을 다시 불러내 애도의 자리에 세운 점을 주목한다.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을 맞을 ‘분노한 민중’ 속에 ‘분노한 여성’ 역시 동등하게 포함되어 있는가.”

2010년 이후 한국 여성 운동사에 관한 이 비평집은 단순한 기록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개입과 비판을 끌어내며 의미를 만들어간다. 손보미 등의 ‘여성 스릴러’들에선 지금 시대 여성들이 느끼는 분노의 정동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흘러나와 변하지 않는 남성적 세계와 마찰하며 고조되는 서스펜스에 주목한다. “여성들이 사납게 분출하는 분노와 공격성은 오랜 세월 가부장제의 끈질긴 동력이었던 감정노동과 돌봄노동을 향한 부채감을 끊어낸다.”

강지희는 “고통과 도약의 순간들이 여기에 있다. 혼돈 속에서 계속 떠도는 언어들, 악몽과 소리 죽인 비명에 가까운 고발의 언어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덮치고 있다. 그 언어들이 문학에 대해 다시 묻고 있다”고 했다. “문학사에서 흐릿하게 뒤로 물러나 있었던 여성 문학사의 계보를 다시 찾아내고, 치열하게 재점검”하며 쓴 비평집은 그 고통스러운 질문에 대한 ‘책임과 연대’ 의식을 담은 ‘응답’이다. 이 응답은 한국 사회에서 지속해 발생하는 여성 혐오와 위협적인 범죄들을 두고 한 말과도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것, 두려움과 체념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이를 둘러싼 구조에 대해 사유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경향신문

강지희 평론가와 신간 <파토스의 그림자>. 강 평론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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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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