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튀르키예, 서로 책임 미루며 비난 목소리
유엔난민기구 “잔혹한 대우 규탄, 전면 조사 촉구”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 고무보트를 타고 도착하는 난민들. 사진=AP 연합뉴스 |
[아시아경제 방제일 기자] 그리스와 튀르키예(터키) 국경지대에서 불법 이민자 92명이 나체로 발견돼 국제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불법 이민자 수용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어온 그리스와 튀르키예 양국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리스 경찰은 14일(현지시간) 그리스와 튀르키예 국경지대의 에브로스강 인근에서 불법 이민자 92명을 구조했다. 그리스 정부는 옷을 입지 않은 채로 난민들이 발견되자 이들에게 옷가지와 음식, 응급처치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모두 남성이었으며 발견 당시 알몸이었고, 몇 명은 몸에 상처가 나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이 어떻게, 왜 옷을 잃어버렸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스 경찰과 유럽 국경·해안 경비청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주로 아프가니스탄·시리아 출신으로, 튀르키예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강을 건너 그리스로 들어오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 그리스·튀르키예, 불법 이민 문제로 꾸준히 신경전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불법 이민 문제로 꾸준히 신경전을 벌여왔다. 그리스는 EU 내에서 이탈리아 등과 함께 중동·아프리카의 이주민과 난민이 가장 많이 유입되는 국가다. 최근 그리스는 이주민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해상 경비를 강화했다. 튀르키예는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과 이주민들의 경유지로 주로 이용되며, 이들 대부분이 튀르키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그리스 입국을 시도한다.
지난 2015~2016년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의 위협으로 난민 100만여명이 유럽으로 밀려들자 양국 간 갈등은 정점에 달했다. 이후 양국은 튀르키예가 난민 유입을 단속하는 대신 EU가 60억유로(약 7조7000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지난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난민 문제는 일정 부분 유럽이 부담해야 한다"며 국경을 다시 개방하면서 갈등은 재점화됐다.
그리스는 이번 사건을 내세워 튀르키예가 불법 이민을 조장하는 것도 모자라 이들을 가혹하게 대한다며 공격했다. 노티스 미타라치 그리스 이민 장관은 지난 15일 트위터에 불법 이민자들의 사진을 올리며 튀르키예가 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문명의 수치"라고 비판했다. 타키스 테오도리카코스 그리스 공공질서 장관도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들 중 다수가 튀르키예군 차량 3대가 국경지대의 강으로 이송했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튀르키예가 불법 이민자들이 그리스로 넘어오는 데 적극적으로 일조했다는 뜻이다.
이에 튀르키예는 그리스가 근거 없는 비난을 하고 있다며 반격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실의 파레틴 알툰 공보실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리스의 가짜뉴스 기계가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며 그리스 측이 제기한 혐의들에 대해 "그리스는 오히려 난민들의 (알몸) 사진을 공개함으로 난민들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맞받았다.
이스마일 카타클리 튀르키예 내무 차관도 "(그리스는) 튀르키예의 인권 침해 사례를 하나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잔혹한 이미지를 튀르키예에 뒤집어씌우려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유럽난민기구(UNHCR)는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UNHCR은 "충격적인 보도와 사진에 깊은 고통을 받고 있다"며 "우리는 품위를 훼손하는 그 어떠한 잔혹한 대우도 규탄하며 전면적인 조사를 촉구한다"고 BBC에 전했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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