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외곽에서 한 남성이 공기소총을 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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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정권을 되찾은 뒤 1년 넘게 국제 사회의 승인을 얻지 못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에너지와 곡물을 수입한다. 외부 지원이 끊기며 경제가 사실상 마비된 탈레반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구의 혹독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손을 잡는 셈이다.
27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은 탈레반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가솔린·디젤·가스 등 에너지와 밀을 공급하는 잠정적인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하지 누루딘 아지지 아프간 무역·산업부 장관 대행은 “탈레반 정부는 무역 파트너를 다양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러시아는 평균적인 국제 상품가격으로 (상품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탈레반 정부는 우선 한시적으로 러시아로부터 원자재를 들여온다. 아지지 장관 대행은 “러시아가 1년에 100만t의 가솔린, 100만t의 디젤, 50만t의 액화석유가스, 200만t의 밀을 공급한다”며 “일정 기간 시험적으로 운영하고 양측이 만족한다면 장기적인 거래에 합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미군이 철수한 뒤 아프간을 통치하고 있는 탈레반은 여성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사회에 적용해 정권을 되찾은 지 1년이 지나도록 국제 사회의 승인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로 인해 한때 정부 예산의 80%를 차지했던 국제 사회의 지원이 끊기며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는 중이다. 외국에 예치된 아프간 중앙은행 자산도 동결된 상태다. 유엔(UN) 역시 탈레반 정부를 지칭할 때 ‘사실상의 정부’라는 표현을 쓴다.
러시아와 계약으로 아프간 경제는 다소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로이터>는 이는 “1년 전 탈레반이 재집권한 뒤 알려진 첫 번째 주요한 국제적 경제 거래”라며 “글로벌 금융 제도에서 차단된 이슬람 운동의 고립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러시아도 지난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국제 사회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이번 계약으로 수출 시장을 확보하면서, 지정학적 요지라 불리는 아프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러시아는 최근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한 기존 질서에 맞서기 위해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자리한 국가들과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 아프간을 침공(1979~1989)한 적이 있다.
미국은 이번 거래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인권을 이유로 탈레반과 거리를 두며 생긴 빈틈에 러시아가 파고든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미국 국무부는 앞선 16일 아프간 동결 자산 35억달러로 스위스에 아프간 구호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로이터>는 “미국은 탈레반과 금융 체계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만큼 이번 거래를 유심히 지켜볼 것”이라고 전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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