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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김주형에게서 타이거 우즈의 향기가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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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이 25일 포섬매치 11번 홀에서 이글을 한 후 포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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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하다 보면 사람 성격 알게 된다. 스포츠 스타는 큰 대회에 나갔을 때 참모습을 알 수 있다.

2008년 베이힐 인비테이셔널에서 타이거 우즈가 8m 우승 퍼트를 성공시킨 후 기쁨에 모자를 집어 던지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는데 잠시 후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에게 ‘내 모자가 왜 저기에 있느냐’고 물었다.

목표에 집중해 다른 것은 기억도 할 수도 없는 무아지경 속에서 경기한 것이다. 이런 고도의 집중 상태에서 어려운 일을 성취하면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데 그 때 가장 멋진 버디 세리머니, 우승 세리머니가 나온다. 우즈가 가장 그걸 잘 했다.

25일 열린 프레지던츠컵 사흘째 포섬 경기에서 김주형은 이경훈과 함께 스코티 셰플러, 샘 번스를 상대했다. 김주형은 10번 홀에서 약 3m가 넘는 버디 퍼트를 한 후 폭발했다.

공이 홀에 들어가기도 전에 버디를 확신하고 캐디에게 공을 가져오라고 했다. 2017년 조던 스피스가 디 오픈에서 우승할 때 그랬다. 캐디를 하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극도의 몰입 속에서 퍼트를 성공시켰을 때 아드레날린 분출과 함께 나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11번 홀은 더 강렬했다. 이 홀에서 김주형은 이글을 잡았는데 역시 퍼트한 후 공이 홀에 떨어지기도 전에 퍼터를 그린에 던져두고 12번 홀로 이동했다. 타이거 우즈도 어려운 퍼트를 넣고 매우 흥분했을 때 비슷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날 오후 열린 포볼 경기에서 김주형은 김시우와 함께 잰더셰플리-패트릭 캔틀리를 상대했다. 셰플리-켄틀리는 미국의 막강 조다. 둘은 이전 함께 경기한 4번의 매치에서 평균 4홀 차로 승리했다. 전날 김주형에게도 이겼다.

김주형에겐 상관없었다. 김주형은 1번 홀에서 미국 관중들에게 소리를 더 지르라고 유도했다. 미국 해설자이자 미국 라이더컵 캡틴을 역임한 폴 에이징거마저 “김주형이 나의 새로운 최애 선수”라고 방송에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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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이 25일 포볼매치 11번 홀에서 이글을 한 후 환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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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포섬 경기에서 이글을 잡았던 11번 홀에서 김주형은 20m에 가까운 이글 퍼트를 넣고는 가슴을 두드렸다. 흥분해 가슴을 두드리는 귀여운 곰돌이였다. 또 다른 방송 해설자인 저스틴 레너드는 “어떻게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고 했다.

18번 홀 버디가 가장 압권이었다. 김주형은 미국 선수들보다 50~60야드 뒤에서 두 번째 샷을 해야 했다. 약 240야드로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그의 뒤에는 경기를 끝낸 미국의 저스틴 토머스, 조던 스피스, 콜린 모리카와 등이 몰려 있었다. 역시 부담스러운 존재들이다.

역시 상관없었다. 김주형은 2번 아이언을 휘둘러 핀 3m 옆에 붙였고 버디를 넣어 승리를 확정했다. 김주형은 이번에도 퍼트할 때 볼이 들어가기도 전에 버디임을 확신하고 모자를 집어 던지고 동료를 향해 환호했다.

그의 버디 후의 환호가 너무 강렬해 인터뷰에서 “세리머니를 준비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김주형은 “퍼트에 집중했지만 버디가 들어가면 어떤 행동을 할까 생각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 퍼트를 보면서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그걸 성공시키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넣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온 팀이 내 뒤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클러치 능력과 이후의 행동은 타이거 우즈를 연상케 한다. 그는 우즈 광팬이다.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양용은이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이기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느냐, (우즈라는) 골리앗을 쓰러뜨린 일이 (막강한) 미국을 상대할 인터내셔널 팀에게 영향을 줄 것 같은가”라고 물었다.

김주형은 당돌했다. 그는 “그는 타이거 우즈의 팬으로 자라 양용은이 이기기를 원하지 않았다. 당시 7살에 불과했지만, 양용은의 승리에 실망했다”고 했다. 양용은은 서운하겠지만, 김주형의 어퍼컷처럼 그의 발언도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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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이 25일 포볼매치 마지막 홀에서 승리를 확정짓는 버디 퍼트를 성공한 후 달려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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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팀의 캡틴인 트레버 이멀만은 김주형이 팀에 들어오게 된 사연도 소개했다. 지난 7월 디 오픈 대회장에서 김주형이 다가와 프레지던츠컵에서 뛰고 싶다고 했다. 캐머런 스미스 등 일부 선수들이 LIV로 빠질 예정이어서 충원이 필요했지만, 김주형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주형은 집요했고 이멀만은 그에게 전화번호를 줬다. 이후 문자가 여러 번 왔다고 했다. 이멀만은 “김주형을 쓰는 것은 도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스무살 어린 선수가 팀의 정신적 리더가 됐다. 김주형은 글로벌 슈퍼스타가 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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