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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야쿠르트 29년만에 日센트럴리그 2연패, 우승까지 도달한 파란만장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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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센트럴리그를 2연패 하며 통산 9번째 우승을 거머 쥐었다.

야쿠르트는 25일 메이지 진구 구장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 경기서 0-0인 9회 1사 2루 루키 마루야마가 끝내기 2루타를 날리며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매직 넘버거 '0'이 되며 센트럴리그우승이 확정 됐다.

매일경제

야쿠르트 선수단이 리그 우승을 확정 지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야쿠르트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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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으로서는 ID 야구 창시자인 노무라 카츠야 감독이 이끈 93년 이래 29년만의 연패였다.

올 시즌은 3월 25일 개막전, 한신전(교세라D)에서 7점차를 역전하며 승리를 거둬 좋은 스타트.끊은 야쿠르트는 5월 7일 요미우리전(도쿄 D)에서는 무라카미가 2경기 연속 만루 홈런을 터뜨려 팀은 단독 선두로 떠올랐다.

5월 14, 15일 히로시마와전서 14카드 연속 우세를 점하기도 했다. 이는 1954년 난카이에 버금가는 프로야구 타이기록이었다.

교류전은 14승 4패로 우승. 7월 2일의 요코하마전(진구)에서 끝내기로 승리해, 사상 최고 속도의 우승 매직 넘버 '53'이 점등됐다.

이 시점에서 5할 +27이 되며 2위 요미우리와 13·5차 독주 체제를 갖췄다.

그러나 마냥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7월 8일 이후에 다카츠 감독, 야마다, 시오미, 나카무라, 나가오카등 코칭스태프와 주력 선수들이 속속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이탈. 2군에서 우치카와, 니시우라 등을 1군으로 올려 쌍워야 했다.

6 연패 등 고전해, 7월14일에 매직 넘버가 다시 소멸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7월24일 히로시마전(진구)에서 야마다가 복를귀 축하하는 결승탄을 쏘아, 매직 「41」이 재점등. 하지만, 7월29일 한신전(고시엔)에 패해 재소멸했다.

8월 이후는 본래의 팀 상태라고는 말할 수 없는 가운데, 전원의 힘을 모아 총력전으로 끈기의 싸움을 보였다.

8월 26일부터 4게임차에 육박해 온 2위 요코하마와 3연전(요코하마)에 3연승해 7게임차로 벌렸고 9월 11일에 우승 매직 '11'이 44일만에 다시 점등됐다.

지난해 9승을 거둔 오쿠가와가 컨디션 불량으로 1경기 등판에 머물렀지만 불펜 투수인 기자와, 구보 등 새로운 전력이 등장 했다.

다카츠 감독의 불펜진에 무리를 주지 않는 운용도 빛났다.

야수에서는 고졸 3년째의 나가오카가 유격의 레귤러로 정착.고졸 2년차 포수 우치야마도 분투하는 등 팀의 젊은 피들의 약동이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는 1950년에 전신인 국철 스왈로스가 결성되어 센트럴 리그에 가맹. 1965년 경영권이 산케이 신문사로 넘어가 산케이 스왈로스가 된다. 이후 산케이 아톰스, 야쿠르트 아톰스로 변천해 1974년부터 스왈로스로 돌아왔다.

1978년에 히로오카 감독으로 첫 리그 우승과 재팬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90년대에는 치밀한 데이터를 구사하는 노무라 감독의 ID 야구로 4번의 리그 우승, 3번의 재팬 시리즈 우승 등 황금기를 이뤘다.

제2차 오가와 감독 시대를 거쳐 2020년부터 다카쓰 감독이 취임했다.

다카쓰 신고 감독은 1968년 11월 25일 히로시마현 출생. 52세다. 1990년 드래프트 3위로 야쿠르트 입단. 4번의 최우수 구원투수에 올랐고, 2004년 1월에 시카고 하이트 삭스로 FA 이적. 뉴욕 메츠 등을 거쳐 2006년 야쿠르트 복귀.한국 대만 BC 니가타에서도 뛰다 2012년 현역 은퇴했다.

2014년 1군 투수코치로 야쿠르트에 복귀해 2017년부터 2군 감독, 2020년 1군 감독에 취임했다. 통산 286세이브는 역대 2위 기록이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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