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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하키 은메달리스트 캐디 김영숙씨 "선수 마음 잘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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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김영숙(왼쪽) 씨가 나희원과 클럽 선택을 상의하고 있다.
[KLPG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천=연합뉴스) 권훈 기자 =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KB금융 스타 챔피언십 2라운드가 열린 16일 경기도 이천시 블랙스톤 이천 골프클럽.

나희원(28)의 백을 멘 하우스 캐디 김영숙(57) 씨는 못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희원은 이날 9타를 잃어 2라운드 합계 16오버파 160타로 컷을 통과하는 데 실패했다.

김 씨는 "선수가 성적이 좋지 않으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내가 운동선수를 했기 때문에 선수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덧붙였다.

블랙스톤 이천 골프클럽에서 8년째 캐디로 일하는 김 씨는 놀랍게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필드하키 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 씨는 "체력이 좋아서 이 일이 잘 맞는다. 신나고 재미있고 즐겁다"고 말했다.

경희대를 졸업한 김 씨는 필드하키 선수를 그만둔 뒤 교사나 지도자로 나선 다른 동료 선수와 달리 한보그룹 사무직 직원이 됐다. 한보그룹 소속으로 뛰었던 터라 사무직으로 전환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이끌고 가르치는 일에는 소질이 없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은 4년을 넘기지 못했다. 결혼과 함께 육아에 전념하느라 퇴직한 김 씨는 주부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의 어머니로 살았다.

둘째 아들까지 성인이 되자 김 씨는 다시 직업을 찾다가 친구 권유로 캐디 일을 시작했다.

김 씨는 "탁 트인 자연 속에서 걷는 일이라 마음이 맞는다"면서 "사무직보다는 백배 낫다. 스트레스도 없다. 다른 사람한테도 권하고 싶다"고 캐디 직업에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 씨는 "환갑 넘어서도 계속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필드하키로 다져진 체력 덕분에 코스에 나서면 누구보다 빠르다. 나희원은 "백을 메고도 저보다 걸음이 더 빠르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연합뉴스

나희원의 백 앞에 선 김영숙 씨.
[이천=연합뉴스]



김 씨는 그동안 블랙스톤 이천 골프클럽에서 프로 대회가 열리면 늘 프로 선수 캐디로 나섰다.

골프장 캐디들은 대회 때면 심리적 부담감에다 일이 더 힘들다는 이유로 선수 백을 메려고 하지 않지만 김 씨는 늘 먼저 손을 들었다.

"선수로 뛰면서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선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김 씨는 "선수가 잘하면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 그 맛에 한다"고 말했다.

다만 프로 선수 전문 캐디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선수가 느끼는 압박감을 한두 번 대회 때 공유할 순 있어도 그 이상은 힘들 것 같다"는 설명이다.

골프를 1년에 서너 번 친다는 김 씨는 "95타에서 100타쯤 친다. 골프가 9홀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요즘 큰아들 덕분에 행복하다.

김 씨의 큰아들 박제언(29)은 한국에서 한 명뿐인 스키 노르딕 복합 종목 선수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던 그는 비인기 종목 선수의 설움을 톡톡히 겪다가 최근 JT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찬다'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졌다.

김 씨는 "제언이가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온 국민이 알아봐 주니 좋긴 하다"고 활짝 웃었다.

김 씨 가족은 전원이 올림피언이다.

남편 박기호(58) 씨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스키 복합 노르딕 감독으로 출전했고, 둘째 아들 박제윤(28)은 소치 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에 출전했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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