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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이슈 [연재] OSEN 'Oh!쎈 초점'

'안나' 진짜 주인은 누구? 쟁점은 '감독 편집권'보다 K콘텐츠 권리 분쟁 [Oh!쎈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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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OSEN DB] '안나'를 연출한 이주영 감독. 사진은 과거 영화 '싱글라이더' 포토월에 선 모습이다.


[OSEN=연휘선 기자] 완성된 드라마 한 편이 있을 때, 그 작품의 주인은 누구일까. 노동력을 쏟아부어 결과물을 만들어낸 쪽일까, 제작비를 투자한 쪽일까.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를 둘러싼 분쟁이 한국 콘텐츠 시장의 '주인'을 가리는 분수령이 되고 있다.

최근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를 둘러싸고 첨예한 입장 차이가 이어지고 있다. 작품은 지난 6월 6부작으로 공개돼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종영 이후 연출을 맡았던 이주영 감독이 당초 작품은 8부작으로 만들어졌으며, 쿠팡플레이 측이 동의 없이 6부작으로 편집했다고 주장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쿠팡플레이 측은 논란을 부인했고, 공개에 앞서 이주영 감독과 논의를 시도했으나 원활히 진행되지 않아 불가피한 선택임을 피력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라지며 법적 분쟁으로 번지려는 가운데, 그 결과를 국내 콘텐츠 산업 관계자들이 주시하고 있다. 논쟁 과정의 감정적인 싸움을 뒤로하고 결국 '안나'에 대한 수정 권한, 즉 콘텐츠의 진짜 주인을 가려내는 이번 분쟁의 결과에 따라 한국 콘텐츠 산업의 우위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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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 산업의 제작 과정에서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연출자, 감독이었다. 투자자들의 입김에 따라 편집 방향이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긴 했으나, 결국 어떤 장면을 살릴지 말지, 어떤 배우를 쓸지 말지 등 콘텐츠를 둘러싼 다양한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연출자였다.

그러나 넷플릭스를 위시하며 글로벌 OTT를 비롯해 해외 대형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K콘텐츠'에 눈을 돌리며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의 기준이 모호해졌다. 콘텐츠가 거대 자본이 투입된 산업의 영역인 만큼 '자본'을 대는 주체가 콘텐츠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 등 한 편의 콘텐츠가 예술 작품이 아닌 '상품'이라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는 OSEN에 "회당 제작비만 수십억, 작품 한 편 제작비가 드라마와 영화를 막론하고 수백억 원이 손쉽게 쓰이는 세상이 됐다. 출연료부터 스태프 인건비까지 무엇 하나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영화부터 중간 투자자들이 다 빠져나가면서 사실상 드라마가 됐건 영화가 됐건 이제는 주요 OTT 사업자들의 투자로 제작비가 거의 충당되고 있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OTT 하나 안 끼고 방송하는 작품은 없지 않나"라며 제작 과정에 높은 OTT 자본 의존도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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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OTT 제작 환경도 한국 진출 초기와 달라졌다. 과거 넷플릭스는 '킹덤'을 시작으로 다양한 한국 콘텐츠들을 선보이며 감독과 작가 등 창작진에게 폭 넓은 '자유'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비용과 리스크는 모두 넷플릭스가 부담할 테니 제작진은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단, 작품의 성공으로 인한 이득도 넷플릭스가 독점했고 이는 OTT 콘텐츠의 선례로 굳어졌다. 웨이브, 왓챠, 티빙 등 국산 OTT부터 쿠팡플레이, 넷플릭스, 애플TV+, 디즈니+ 등 글로벌 OTT까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오리지널 시리즈'라는 표현을 꾸준히 강조해온 이유다.

그러나 더 이상은 전처럼 OTT가 돈만 대고 창작자가 알아서 만드는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오리지널 시리즈'의 경우 각 플랫폼의 작품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강한 자극과 화려한 볼거리 위주로 크리처물 등 블록버스터 작품까지 선보이는 넷플릭스나, 소수의 작품으로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는 애플TV+, 그에 맞서 한국적인 감성으로 참신한 소재에 도전하는 웨이브 등 각 OTT 별 색채가 진해지며 제작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어떤 쪽으로든 좋은 작품은 나오고 있다. 제작 규모보다는 창작자의 예술성과 헌신에 기댔던 과거에도 한국 영상 콘텐츠들은 충분히 발전했고 넷플릭스를 만나기 전까지 괄목할 성과를 보여왔다. 단, 글로벌 투자 자본을 앞세운 집단 지성을 통한 확실한 성공 공식도 이미 차츰 뿌리를 내리는 상황. 결과적으로 창작자가 쏟아부은 '노동'과 '자본'의 규모 사이 콘텐츠 성공의 주체를 따져보는 모양새다. 산업적인 기로에서 'K-콘텐츠'의 운명은 어느 쪽으로 향할까. 어쩌면 작품이 6부작인지 8부작인지의 감정 싸움보다 더 중요한 변화의 과도기에 '안나'가 서있다.

/ monamie@osen.co.kr

[사진] 쿠팡플레이 제공, 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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