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된 생활을 하다 죽음을 맞은 세 모녀의 경기 수원시 다세대 주택 문이 23일 굳게 닫혀있다.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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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와 투병 끝에 세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 후 뒤늦게 발견된 이른바 ‘수원 세 모녀 사망사건’은 한국사회의 복지 사각지대를 또 한 번 드러냈다. 2014년 이와 유사한 ‘송파 세 모녀 사망사건’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복지체계를 강화했지만, 이번에도 위기에 놓인 이들에게 ‘복지 시스템’은 가 닿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약자 복지”를 언급하며 “복지정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 대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고, 김동연 경기지사는 ‘도지사 핫라인’ 등 “(벼랑 끝의 시민들을 도울) 방법을 반드시 찾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관계부처 회의와 전문가 간담회 등을 열어 문제를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복지 신청주의’의 한계…시스템 작동하도록 빈틈 메워야
지난 21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는 병원비 때문에 월세가 밀리는 등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60대)는 암 진단을 받았고 40대의 두 딸은 난치병을 앓았다고 한다. 건강보험료를 못 낼 정도로 생계가 어려웠다면, 기초생활보장제 생계급여(3인가구, 월 125만8410원)나 의료급여 대상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해 생계지원금이나 의료비를 일시적으로 받을 수 있고, 의료비 부담이 컸다면 재난적 의료비(최대 3000만원) 지급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등록 주소지인 경기 화성시나 거주지인 수원시에 이런 복지제도 이용을 위한 상담 및 신청을 한 이력은 없다. 한국의 복지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신청주의’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복지 제도를 알지 못하면 혜택을 받기 어렵다.
정부와 지자체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공과금 체납과 단전, 단수 등 33가지 항목을 정해 ‘위기 가구’를 정하고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수원 세 모녀의 경우 건강보험료를 1년4개월 가량 밀려 화성시에서 이달 초 주소지를 방문했다. 하지만 2020년 수원으로 이사한 후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탓에 화성시는 이들 모녀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수원시는 자료가 없던 까닭에 이들 모녀의 존재를 몰랐다.
세 모녀처럼 주민등록상 거주지 방문 조사에서 소재지 확인이 안되면 지자체는 이들을 ‘비대상자’로 분류하고 재차 소재지 파악에 나선다. 이때도 소재지 파악이 되지 않으면 “거주지가 불분명해 주민등록이 말소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시청이나 주민센터 홈페이지에 공고한다. 이후 1년이 지나도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거주불명자’로 등록돼 주민등록지가 주민센터로 바뀌고 행정안전부에서 관리하는 거주불명자 명단에 포함된다. 거주불명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24만4575명이다. 거주지가 5년 이상 불분명한 장기 거주불명자만 15만명에 이른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건강보험료를 연체한다는 것은 분명한 ‘위기’의 징후인 데다, 이 가족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사전정보(투병, 빚)가 (여러 기관 간) 공유됐다면 끝까지 찾아 나서야 했을 텐데, 매뉴얼상 그 부분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듯하다. 주소지와 실거주지가 달랐을 때 위기가구를 찾는 매뉴얼을 보강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로선 가족 간 갈등이나 채무 등으로 연락이 끊긴 위기가구를 수사권이 없는 지자체가 찾아 나서긴 어렵다.
사회복지 공무원의 업무량도 너무 많다. 복지 사업이 늘면서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직접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구를 찾아 나서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정규직부터 늘려야겠지만 자원봉사자부터 지자체 내 계약직 등 인력창고를 늘리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복지정보시스템’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지적도 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보장정보원이 행정 데이터를 모아 지자체에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지자체가 위기가구를 방문하면 된다고 보는데, 그게 사각지대 발굴에 크게 역할을 못한다고 본다”며 “온라인으로 하다 보면 실체적 어려움을 파악하긴 어렵다”고 했다.
단절된 위기가구, 더 깊어진 사각지대 발굴 모델 만들어야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수원 세 모녀의 경기 수원시의 다세대 주택 우편함에 23일 개인회생 관련 전단지가 놓여 있다. 세 모녀는 암과 난치병 등 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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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세 모녀 사망사건은 ‘고독사’(고립사)의 특징을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고독사 실태조사 설계 연구’(2021년)를 보면 고독사는 ‘가족, 지인으로부터 단절되고 사회적으로도 고립된 채 자살 또는 병사로 홀로 임종을 맞이하며, 통상적으로 시신이 사망한 후 3일 이상 방치되다가 발견된 죽음’이다. 일본 등에서 쓰는 ‘고립사’는 1인 가구로 한정 짓진 않는다. 고독사(고립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영국에선 2018년 정부 차원에서 ‘외로움 방지’ 보고서를 내고 대규모 사례관리인력을 양성하고, 공동공간 확보 등 공동체 인프라 확충을 하고 있다.
국내에선 고독사 예방 사업이 이제 막 첫발을 뗐다. 지난 4월 고독사 예방법이 시행됐으며, 보건복지부가 이달부터 9개 지자체와 함께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위기가구는 지자체 발굴시스템 외 이웃이나 자선단체 등 공동체를 통해서도 공적 복지망 연결로 이어질 수 있으나, 수원 세 모녀는 그러지 못했다. 한국사회가 저출생·고령화, 사회관계망 단절 등의 인구·사회문화의 변화 속에 고독사(고립사)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보사연의 ‘사회 참여, 자본, 인식조사’(2021년) 결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한국 19~59세 81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갑자기 큰돈이 필요할 때’ 도움받을 곳이 있지만 도움받기를 원하지 않는 집단이 8.61%, 도움받을 곳도 없고 도움받기를 원하지 않는 집단이 13.07%였다. 5명 중 1명(21%)은 위기 시에 ‘도움을 희망하지 않는 집단’인 셈이다. 연구진은 복지 신청주의 특성상 이들이 사각지대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짚고, 이들에 대한 심층 연구 및 수요자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복지체계를 주문했다.
정재훈 교수는 “한국의 복지제도가 강화된 것이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복지 경험이 낮은 수준이고, 따라서 개인들이 위기 때 정부로부터 복지 서비스를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권리로서의 복지’에 대한 인식이 낮은 수준”이라며 “독일 등 해외 사례를 보면 복지제도의 확대와 공동체 의식이 함께 상호작용해서 복지국가를 형성해가는데, 한국은 복지제도가 확대되기 전에 공동체 의식이 약화했기 때문에 그나마 있는 복지제도가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동주민센터 외에 고용복지센터와 같은 곳에서 사례 발굴을 위한 상담을 병행한다면, 접근성이 조금은 높아질 것”이라고 봤다. 남찬섭 교수는 “오프라인 전달체계가 잘 작동하려면 민간 복지관들과 지자체가 협력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복지부는 23일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2014년 이후 지속해서 확대해 온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를 재점검해 안타까운 사례를 조기에 발견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보완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이날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오는 24일과 26일엔 관련 전문가 간담회와 전국 시·도 복지국장 간담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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