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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난치병·생활고에 ‘빚 독촉’ 유령 생활…사회는 ‘수원 세 모녀’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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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에 건강 악화·생활고 비관 내용
어머니 암 투병·두 딸 희귀 난치병
국가 복지서비스 밖 ‘외로운 죽음’


경향신문

A씨 등 3명이 사망한 채 발견된 경기 수원시 권선동의 한 다세대주택 앞에 22일 경찰통제선이 설치돼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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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했던 가족이었는데 어쩌다가 그런 상황까지 갔는지 참 안타까워.”

경기 화성시의 한 작은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22일 ‘수원 세 모녀’ 사건을 전해 듣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세 모녀는 수원으로 이사 오기 전 이 마을에서 17년간 살았다.

전날 경기 수원시 권선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는 A씨(60대)와 A씨의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신원 확인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건강 악화와 생활고를 비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A씨 가족은 원래 5인 가구였지만, 수년 전 A씨의 남편과 아들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은 세 모녀는 2020년 화성을 떠나 수원의 작은 다세대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마을 사람들은 A씨 가족이 사업 실패로 큰 빚을 떠안게 됐는데,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도망치듯 마을을 떠났다고 했다.

마을을 떠난 뒤에도 이들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A씨는 암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았다. 두 딸 역시 각각 희귀 난치병 등을 앓아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병원비 문제로 보증금 300만원에 40여만원인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하는 때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 가족은 수원에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빚 독촉을 피해 다니느라 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류상으로는 원래 살던 화성시의 다른 집 주소를 빌렸다. 화성시에 거주하는 주민 B씨는 “그 집(A씨 가족)이 하도 어렵다고, 제발 좀 주소 등록 좀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해서 우리집에 사는 것으로 해줬다”면서 “평소 교류가 자주 있던 사람도 아니었고 연락처도 몰랐지만, 사정이 너무 딱해 도와줬다”고 말했다.

A씨 가족은 이처럼 외부에 집안 형편 등을 알리지 않은 채 고립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원시 권선동 다세대주택단지 주민들은 A씨 가족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이날 만난 한 주민은 “작은 마을이라 대부분 아는 사이인데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A씨 가족이 ‘유령 생활’을 이어나가는 사이 행정기관은 이들의 행적을 파악하지 못했고 비극을 피할 기회를 놓쳤다. 수원시와 화성시 등에는 A씨 등이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상담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박모씨와 두 딸이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공과금 체납과 단전, 단수 등 33가지 항목을 정해 ‘위기 가구’를 정하고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A씨 역시 상당 기간 건강보험료를 체납해 현장 조사 대상에 포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거주지가 특정되지 않은 탓에 도움을 받지 못했다.

서류상 주소지였던 화성시는 A씨 가족이 16개월분의 건강보험료 27만원을 체납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3일 현장(B씨의 집)을 방문했다. 다만 실주거지가 아니었던 탓에 A씨 가족과 연락이 닿지 못했다고 했다. 화성시 관계자는 “살고 있던 분이 자기는 연락도 안 되고 연락처도 모른다고 말씀하셔서 가정 형편 등을 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수원시는 전입신고가 되지 않은 탓에 이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전입신고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시에는 아무런 행정 기록이 없다”면서 “어려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원을 했을 텐데 이번에 사고가 난 뒤 파악이 됐다”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원 세 모녀의 사건이 알려진 대로) 주소지와 거주지가 달라 발굴이 어려웠다면, 담당 공무원이 어디까지 그 사람들을 찾아나설 수 있는 지 분명한 기준을 담는 등 매뉴얼을 보강을 할 필요가 있다”며 “매뉴얼이 보강되더라도 실효성이 있으려면 이를 실행할 지자체의 사회복지 담당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전날 “문이 잠긴 세입자의 방에서 악취가 난다”는 건물 관계자의 112 신고를 접수, 현장에서 A씨 등으로 추정되는 시신 3구를 발견했다. 외부 침입 흔적이나 외상 등은 없었으며, 경찰은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과 사망 추정 시간 등을 밝힐 계획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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